부자간도 나누지않는다는 권력

나보다 더 뛰어난 후계자에게 느끼는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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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naeelum)등록 2023.01.30 09:45
궁궐에서부터 30키로 이내에 있다는 왕릉을 찾아서
쉬는 날이다.  평소 잘 먹지않던 아침밥과 연이은 점심까지 속이 더부룩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동구릉이라도 가보자며 얼른 채근을 해본다. 
답답함도 풀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도 걷고싶었다.

동쪽에 9개, 동구릉
서쪽에 5개, 서오릉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 외는 잘 모르겠다만 18개의 장소에 50개의 조선왕릉이 있단다.
궁궐에서부터 30km이내에 있어야한다는 왕릉의 규칙때문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에겐 소풍때 왕릉을 여러 번 가보았다는 게
혜택아닌 혜택이었겠다.
초등학교 시절 매번 가보던 왕릉을 
당시에는 봉분에 오르내리고 미끄럼틀도 타고
그야말로 놀이터였다.
애들은 애들이라고 그렇다치지만 선생님들도 관리인들도 그 중요성을 몰랐을까싶다.


 
구리에 있는 동구릉은 태조 건원릉이 제일 안쪽에 있고 9개의 능은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서 제법 걸어야 모두 볼 수 있는 구조다.
티켓을 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제실이다.

제를 준비했던 사람, 당시에는 나으리정도 되지않았을까?
제가 주된 일인데다 왕이 행차하는 행사니 얼마나 긴장했을지 또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지 가늠이 된다.

그 제실을 지나 향로와 어로를 지난다.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라
일반인들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었다는 어로를 걸어야 한다.
산자와 죽은자의 길이라고도 표현했던 기억이다.

정자각의 지붕 추녀마루위에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를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잡상이 있다.
악귀를 물리쳐주는 의미로 당나라 태종이 귀신이 기와를 던지는 한마디로 꿈자리가 사나워 이를 막기위해 시작한게 우리나라까지 건너왔다고 한다.

행여 피해가 있을까싶어 비닐포가 덮혀져있는 봉분,
지금은 감히 오르지못하는 저 곳을 내 어릴 때는 수십번도 오르내렸으니 철이 없어도 정말 없었다.

어른이 된 내 눈에도 여전히 그 봉분이 그 봉분인 것 같지만
한 곳  한 곳 둘러보며 평소 관심이 적었던 왕과 왕후의 이름을 읽어보는 게 시간여행처럼 느껴진다. 


동구릉에는 왕이나 왕비가 각각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이 있는가하면
왕과 왕후의 각각의 능이 나란히 놓인 동원이강릉
둘을 하나의 능에 조성한 합장릉
왕과 두 왕후가 나란히 놓인 삼연릉이 있다.

역사공부를 하러 온 어린 친구나 단체를 위함인지 왕의 숲길이나 전래놀이장등 테마존도 마련되어있다. 
어린 시절의 왕릉은 미끄럼틀타기에 딱 좋은 잔디밭이었는데 그 잔디밭 주인들은 손주뻘되는 어린아이들의 재롱을 과연 좋아했을까 아니면 이 놈 했을까 궁금하다. 

영화 사도세자를 리콜하다

조선왕조 500년에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이 있는데
어질고 이것 저것 만들어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대왕이 있는가하면 옥체를 보존해야한다는 이유로 줄행랑을 치거나 백성은 나몰라하던 폭정과 폭군도 있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왕이라 서열 1위이었겠지만 
자라면서 왕이 되지못할 운명이나 왕이 되지못할 인성등의 역사이야기는
사극의 메인양념이기도 했다. 


어떻게 돌다보니 어느 덧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앞에 서있다.
하고 많은 왕중에서도 누적관객수 600만이 넘은 영화 "사도세자" 때문인지
다른 왕보다 더 익숙한,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란 말처럼
영조는 아들을 질투하고 권력에 유독 집착한 듯하다.  

실제로 그의 군림은 52년에 달했다고 한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배경에 -후에 탕평책이란 제도를 만들게 된 계기-지긋지긋한 당쟁이 있었다고도 하다만
수 없이 본 사극과 영화만 봐도 영조는 사도세자를 그닥 신임하지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미운 털이 박혀도 제대로 박힌 듯하다. 

첫 아들을 잃고 42살에 얻는 늦둥이 아들인데다 첫돌에 63자를 해독할 정도로 총명하한 자식, 보고 있기만해도 아까웠을텐데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은, 한 마디로 한 가정의 가장인 이십대의 아들을 왜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해야했을까 의문이다.  
지금도 영조로 분한 송강호가 수렴청정을 한다면서 매번 세자역의 유아인뒤에서
"쯧쯧쯧" 혀를 차며 한심해하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나쁜 말을 들으면 귀를 씻는 일명 '귀씻는 물받이' 로 사도세자를 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십대부터 이십대까지 줄곧 무서운 아버지밑에서 숨 한 번 제대로 못쉬고 살았으니 궁궐과 왕자란 신분이 무슨 소용일까 
아버지로써 아들을 먼저 보내고 가슴아파하는 영화속 장면에서 공감 1도 안 된 이유는 영조란 인물은 아버지이기전에 권력이 우선이었던 선입견이 강했던 것 같다.


영조의 재임 50여년은 일관성있는 정책으로 많은 성과도 보였겠지만
아들도 잡아 죽일 정도의 두려움과 고인물과 같은 답답함도 가졌음직하다. 

은퇴를 못하고 평생 결제하는 수장이라면
사도세자 본인도 불행한 인생이지만 영조는 어떠했을까?
일은 아랫사람이 다 한다고 해도 50여년을 결제해야하는 막중한 자리, 책임자의 자리에서 은퇴하지못하는 상황이 행복만 했을까?

내가 CEO나 수장이 되어보지못했으니 그 권력을 알 리 만무하다. 그러나  나이앞에 장사없다란 말처럼 피곤하고 고되다란 말이 자주 나오는 나이가 되니 일에서 해방되고 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잘 모르는 권력욕을 유지하는 것보다 간절해진다.
어느 때가 되면 쉬고싶은 마음, 사람이라면 분명 가져봄직하다.

마땅한 후계자를 세우지못해 백발이 되도록
여전히 현역으로 산더미같은 결제판에 눌려 
"내가 아니면 일이 돌아가지않으니...내가 언제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하나"
란 생각,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
선거철이 되면 꼭 나오는 이 말은 영조와 사도세자나 정치인들에게만 국한하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나은 후임이 왔을 때
그 후임이 인기가 높을 때
나보다 더 잘한다란 평가를 받을 때
내가 아직 살아있음에도 뒷방 늙은이 취급할 때
메인인 나를 제치고 마이너가 더 영향력을 줄 때
회사에서도, 정치에서도 하다못해  작은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당혹감.
그 당혹감이 질투까지 이어지면 진짜 문제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브런치에도 올라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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