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의 아이러니

제작사로써 MBC는 진실의 눈으로 세상을 담을 수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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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원(wonland)등록 2023.03.02 11:10
우리는 어느 시대 보다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힘의 이동 또한 매우 빠르다. 매스 미디어를 대표하던 지상파 방송국의 경우 한때 언론고시라 불릴 만큼 선망의 직장, 직업으로 여겨졌고 많은 청춘들이 꿈을 키웠었다. 
 
지상파는 가장 파워풀한 매체와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작사가 합쳐진 형태로 그 자체로 '힘'의 중심이었다. 자율적인 Gate keeping을 통해 아젠다를 설정할 수 있고, 그를 통한 여론을 주도할 힘이 충분했고, 때로는 이슈를 이슈로 가릴 수 있었고, 있는 이슈를 없앨 수도 있었다. 
 
공룡처럼 변화에 뒤쳐진 오늘의 지상파의 모습은 어떤가? 우선 프라임 타임 뉴스로 뉴스를 소비하는 비중이 무의미할 정도로 줄었다. 아젠다 세팅 기능을 포탈과 온라인이 완전히 장악했다. 최고의 K-드라마나 예능을 만들던 제작 역량은 연예 기획사들의 산업화와 초대형 OTT의 등장으로 예능의 일부 포맷을 제외하고는 화제성을 거의 상실했다. 캐스팅 능력이나 제작비의 규모, 제작 과정의 투명성에서 모두 열세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미디어 산업을 둘러싼 환경의 추가 기울어져 버렸다. 매스 미디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 별처럼 많은 양질의 콘텐츠들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       
 
이런 미디어 빙뱅속에서 올해 들어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콘텐츠는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이다. MBC에서 PD수첩, 먹거리 X파일 등 탐사보도 전문 PD의 예능 기획이 신선했고, 제작사로서 MBC와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신선했다. '아 말이 되겠다. 기획력은 여전히 살아있고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붙어준다면 괜찮은 인공호흡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넷플릭스에 일면식도 없었던 장PD는 21년 10월 18일에 넷플릭스측에 기획안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고, 안목이 있었던 넷플릭스에서는 2주만에 프로그램 제작을 결정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콜롬버스의 달걀인가? 공룡처럼 힘을 잃어가던 패기 넘치는 지상파 다큐PD가 기획서 한장으로 세계 최대의 가시청을 보유한 네플릭스와 손을 잡는 것. 이 자체로 시골 맛집의 강남 사거리 진출과 같은 괜찮은 울림이 있었다.
 
피지컬 100은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날짜를 기억해 시청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몰입감을 주었다. 추성훈, 윤성빈, 양학선, 심으뜸과 같은 셀렙형 스포츠 맨들과 태어나서 처음보는 경륜선수들, 레슬링 선수들, 스트롱맨들을 피지컬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강한 몸'에 대한 철학, 음악, 비주얼 디렉팅과 선수들 개개인의 진성성은 기존의 스포츠 예능들 보다 한층 세련되고 몰임감있게 잘 연출되었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콘텐츠로 꼽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적어도 마지막회(9회)에서 대망의 상금 3억원 최종 우승자 선정이 되기 전까지는...
 
우승 후보들이었던 전직 레슬링선수 남경진, 아이언맨 윤성빈 등이 중도 탈락하며 최종 Top5에 들지 못했다. 그 정도로 매 경기 치열하고 놀라운 피지컬의 대향연 이었다. 대망의 Top 5는 경륜선수 정해민, 자동차 딜러 조진형, 루지 국가대표 박진용, 산악구조대원 김민철, 크로스 핏 선수 우진용. 모두 대중들이 잘 모르는 무명의 선수들이 차지했다. '최고의 몸'을 뽑는 피지컬 100답게 인지도와 상관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오직 현장의 결과만으로 파이널 퀘스트를 치렀다. 
 
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몸의 대 향연의 화룡정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정해민과 우진용의 무한 로프 당기기에서 나왔다. 우승후보 1순위 윤성빈을 꺾고 올라올 정도로 피지컬이 탁월했던 거구의 정해민은 초반 스퍼트가 압도적이었다. 굵은 줄을 끝없이 당기는 경기의 특성상 체격이 큰 정해민이 유리해 보였다. 중간 중간 기존의 피지컬 100과는 달리 다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몇번의 편집이 이어지더니 경기는 크로스핏 선수 우진용의 승리로 최종 마무리되었다.

기막힌 기획과 8회까지 이어오던 멋진 반전들이 피날레 순간에서 오히려 매우 빈약했지만, 그렇게 결과를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아 이 우진용 선수가 체구는 작아도 지구력이 대단하구나. 경륜선수는 역시 상체가 조금 약하구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요 며칠 이 결승 결과를 두고 시시비비가 제법 시끄럽다. 2위로 마감한 정해민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결승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상대선수의 항의와 제작진의 오디오 문제로 경기가 두차례 중단이 됐었고, 그 상황에서 경기 재개에 대한 이런 저런 부담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이 논란을 두고 연예 대통령 이진호, 뻑가 등 대형 유튜버들의 부정적인 리뷰가 시작됐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장호기PD가 SNS를 통해 "최종 결승에서 수차례 재경기가 있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온몸을 바쳐 땀 흘렸던 지난 1년을 잘 지켜내겠다. 거짓은 유명해질 수 있어도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 감사하다."며 결승전 의혹을 에둘러 부인한 장면이다. 
 
예전처럼 편성시간에 쫓겨 쪽대본을 쓰던 제작 환경이라면 몰라도 넷플릭스의 사전제작 시스템에서 이해 해주기 어려운 장면이다. 인생을 걸고 자신의 피지컬을 겨루는 무명의 출연자들의 진정성을 지켜내기 위해 이슈 상황을 조금 더 사려깊게 대응하는 것은 욕심일까?  오히려 이런 일련의 사고에 가까운 이슈 상황을 장호기PD의 전문 영역인 다큐 방식으로 오픈하여 참가자와 시청자들의 의구심을 풀어주며 피지컬 100만의 리얼리티를 지킬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로운 방식의 결승을 치를 패기는 있을 수 없었을까? 현장 상황은 연출자와 작가, 출연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더 잘 알 수 없다것에 이견은 없다.
 
최종 결승에 오른 선수들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유명한 셀럽들이었다면 PD와 제작진은 같은 판단을 내렸을 지 궁금하다. 그 고된 경기의 중간에 두번의 맥을 끊고 탈진한 선수들에게 경기를 재개해 달라는 요구를 이번처럼 할 수 있었을까? 농구 경기에서 승기가 오른 팀의 기세를 누르기위해 작전 타임으로 끊어주는 것, 야구 경기에서 어필을 통해 경기를 흐름을 바꾸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모두가 한계를 넘어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선 보다 세심한 판단이 필요 했었다.  
 
기획보다 더 빛났던 100명의 출연자들의 명 장면들을 20세기 제작 방식 수준의 판단력으로 큰 오점을 남긴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전성기 때 지상파처럼 고유의 편집권을 주장하며 출연자들의 의견을 묵살한 것이 안타깝다. 오히려 편성 시간 제한이 없는 OTT의 특성상 10부 못다한 이야기로 풀어주거나, 보다 진성성 있는 결승전을 위한 리얼리티를 더 살린 연출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피지컬 100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지상파의 한계를 돌파해볼 수 있는 좋은 시도였다. 한 여름 밤은 꿈처럼 아름답게 유종의 미를 거둘 것 같던 최고의 피지컬 드라마는 PD의 SNS와 유튜버들 사이에서 21세기 형 진실게임으로 얼룩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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