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자에겐 1년이 14개월이라고?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정하고, 바쁠 때 스스로 몰아서 일하고, 휴가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생활? 그 다음은 개인사업자라며 도급계약 쓸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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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ilevel)등록 2023.03.28 17:09
윤석열의 장시간노동은 노동자가 휴가와 일을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상은 사장이 법적 면죄부까지 내세워 '이제 일할 수 있으니, 하라!'가 될 것이다.

영화산업은 한 때 어느 직종보다 불규칙적이고 장시간노동이 판쳤던 곳이다. 이젠 지겹기까지 한 무박 몇일을 '좀비'처럼 일했던 수십 년의 무수한 사례를 들지는 않겠다. 그 시절을 지나 영화만큼 타의에 의해 장시간노동을 강요당한 많은 산업노동자와의 연대 그리고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현재 영화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맞았다. 시민사회의 관심만큼 자본가에게 크지 않았던 산업 규모 탓일 거라 추측한다. 여객, 운송 그리고 보건 등 사회의 큰 축을 담당하는 너무나 많은 노동자가 여전히 특례업종에 놓여있다. 1주 40시간을 원칙으로 하는 노동시간을 악용하는 행정해석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많은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1주일이 5일이었던 세상을 살아야 했다. 이제 겨우 1주 7일을 살 수 있겠다 싶었지만, 불과 얼마전 귀신처럼 장시간노동의 그림자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 확대로 되살아 났다.

세상의 모든 연구가 장시간노동이 노동생산성을 저해한다는데, 이놈의 한국의 아마추어 사용자(자본가)들은 '생산성'보다 자신의 덜떨어진 노무관리 능력을 수시로 보완하는 '편의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노동자를 고무줄처럼 '유연하게' 늘였다 줄였다 하며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고무줄 노동자가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최첨단은 '자유로운 해고'이다. 애초 '노동자'도 아닌 개인사업자라 취급하며 그때그때 쓰고 버린다.


영화노동자는 이런 고무줄과 개인사업자 취급에 익숙하다. 회사는 1주 7일 40시간에 연장근로까지해서 1주 52시간에 맞춰 계획적인 촬영일정을 짜야하지만, 1주일 중 갑작스런 촬영 취소와 없던 촬영이 생기는 일은 한국영화 태생 이후 여전히 변화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촬영 참여를 계약하면 영화노동자는 그 기간 내에 모든 생활이 '영화'가 중심이 된다. 안정적인 사회관계와 휴식은 이런 불규칙한 일정에 내몰려 차순위가 되기 십상이다.

법적으로는 쉴 수 있다지만 연차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작품이 끝나버리는 '사용자의 노동자 휴식권 선구매'가 고착화되고 있다. 최근 주휴일이라도 '규칙'적으로 확보하여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를 만나고 그리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회사(제작사)의 변경 요청에 대해 거부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 영화스태프는 사실상 미사용연차휴가수당을 고정급처럼 추가하여 월 임금액을 계산한다.

영화현장에서 '계약 기간 끝나고 맘대로 개인시간을 쓰면 된다'는 건 윤석열식 휴가사용법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3개월 그리고 길게는 6개월 동안 소식을 끊었다가 관계(사회생활)를 복원하는 것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다. 장시간노동이 개인의 삶에 도움될 것처럼 떠드는 윤석열식 휴가사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영화스태프라면 다 아는 얘기다.

회사(제작사)는 다양한 돌발상황에 대해 1주 52시간을 법기준을 어기면서까지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지만 이것에 만족하지 못한고 급기야 고용한 스태프를 개인사업자로 바꾸고 있다. 이렇게하면 근로시간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입맛에 맞지않게 장시간노동 등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스태프를 손쉽게 계약해지로 갈아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해고'의 최첨단 버전이다. 애초 '근로자성'을 부정하며 '해고'조차 필요없다는 위탁, 위임 그리고 각종 도급계약서로 이를 현실화 하고 있다. 영화산업 내 스태프의 3년에 걸쳐 얻은 '근로자성 인정 대법원판결'과 '근로표준계약서' 사용하여 만든 '내용도 좋고 과정도 좋은 영화'에 대한 선례기사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COVID-19 감염증 기간 및 OTT 플랫폼 확대를 거쳐 영화‧영상(드라마) 제작현장은 후퇴하고 있다. 더디게 개선되던 드라마 제작현장의 이전 악습인 도급 및 위탁 계약이 오히려 영화산업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하는 실제와는 달리 근로자가 개인사업자(프리랜서)가 되고 4대보험(근로계약)이 예술인고용보험(도급계약)으로 바뀌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담당 정부부서는 예술인고용보험 가입급증이 (근로계약‧4대보험의 후퇴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제도 마련에 따른 성과라 오판하며 홍보물을 찍어내어 영화산업 내 노동조합 사무실 등 단체에 한아름 보내 온다.

2022년 한국행정연구원의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 시간 규제 현황 비교」(2021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실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평균 1,716시간보다 199시간을 길게 일하고 있다. 실노동시간 비교이니 우리나라 노동자가 한 달 이상 더 일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1,490, 독일 1,349, 영국 1,497 그리고 일본조차 1,607시간이다. 어지간한 주요 국가에 비해 2달 정도 더 일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노동시간 대비 1년을 13~4개월로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유연한 노동의 예로 삼았던 독일도 1일 최대 노동시간이 10시간이며, 영국은 1일 8시간 주당 최장이 48시간이다. 프랑스도 1일 최대 10시간과 주당 48시간을 원칙으로 2002년 주당 35시간 또는 연 1,600시간을 법정 공식화했다. 일자리 감소 시대에 일자리 나눔을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각국 노동시간은 1일 또는 1주의 단위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며 노동시간법제를 개정해 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노동자는 실질근로시간이 확연하게 길고 일단위 또는 주단위 한계시간 또한 더 높은 과노동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윤석열식 장시간근로는 노동시간법제의 기준을 1일 또는 1주가 아닌 월단위, 연단위로 늘이는 방향으로 후퇴하고 있다. 장시간노동을 줄이는 개선책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긴 노동시간마저도 더 탄력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고무줄이나 실리콘이라도 된단 말인가? 유연하게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식 노동이야말로 세계 모든 전문가들이 밝히는 건강에 유해한 첫 번째 이유인 '불규칙적인 노동'이다. 불규칙한 노동에 더해 특정 기간 내 몰아서 일하는 장시간노동 강화방안까지 제안하며 노동자를 은유가 아닌 진짜 '사지'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변화 그 어디에도 경영자 또는 사용자의 계획적 노무관리와 책임에 대한 내용은 없다.

윤석열식 월단위, 연단위 노동시간제도의 기존 유연근로시간제와 같은 임금삭감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영화영상산업 내 스태프들은 작품 기간 동안 출퇴근 시간 포함 16시간 가량 집 밖에 머물러야하고, 남은 8시간 동안 밥 해먹고, 씻고 그리고 자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렇게 한국영화 100년을 지켜왔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스태프는 생계와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2005년 이후 산업 내 노사정 합의로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등을 보장받으며 좋은 일터 만들기에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식 노동시간제가 퇴행이 자행된다면, '자유'롭고 '자율'적인 노동환경으로의 개선은 커녕 최근 조금이나마 안정화되었던 전문 영화스태프 인프라마저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등 전세계에 휘몰아치는 K콘텐츠도 단명에 그칠 것이다. 1주일에 69시간을 일하는 처지라니, 대감댁에 메여 자고 먹는 머슴만 못한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장시간노동을 추진할 게 아니라, 자신부터 제때 출근이라도 하며 국민의 머슴부터 되길 바란다. 그리고 고용구조와 노동시간의 경직성 따위를 따지며 노동조합 활동 자체가 불법인 것처럼 분위기 조정하기에 몰두할 시간에 근로계약 미작성과 무수한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에 대해 사용자 책임부터 제대로 묻는 '공정'을 먼저 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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