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하려는 마음이 삶의 돌파구가 되다

4.16가족나눔 봉사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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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416act)등록 2023.05.03 16:54

성북03 마을버스가 비탈길을 내달린다. 버스 안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걸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버스 차창 너머로 연탄 무더기가 보인다. 오늘의 일감이다.
입춘이었던 지난 2월 4일, 4.16가족나눔봉사단(가족봉사단)의 연탄 나눔 봉사활동이 있었다. 가족봉사단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 내 소모임 중 하나로, 봉사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곁에 선다. 이날 서울시 성북구 북정마을을 찾은 가족봉사단은 이른 아침부터 연탄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3천 장 연탄에 담긴 마음
마을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먼저 와 있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일할 채비를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목장갑을 낀다. "겉옷은 벗으시는 게 좋을 텐데…." 롱패딩을 입은 채 앞치마를 두르려는 필자를 향해 충고가 쏟아진다.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연탄은 피우면 따듯하지만 나르면 더운 법. 안에 춥게 입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첫 집부터 땀으로 흠뻑 젖었다.
3.6kg짜리 연탄을 두 장씩 날랐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어르신이 여기를 어떻게 다닐까 싶을 정도로 길은 멀고 가파르다. 생애 첫 연탄 봉사에 호기롭게 나선 필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신다. 배달을 마치고 두 손 가볍게 내려오는 가족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거친 숨소리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오르막길 중턱에는 어느새 '등산객들의 쉼터'가 마련됐다. 손에 힘이 빠져 두 장 대신 한 장씩만 나르는 사람들도 나온다. 그래도 배달 행렬은 끊이질 않는다. 그 속에 가족봉사단 단장, 은정 엄마 박정화 씨도 있다.
박정화 씨는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몸 사리지 않는 일꾼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원동력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꼽는다. 가족봉사단의 출발 자체가 그랬다.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게 봉사였다. 참사 초기, 자원봉사자들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 곁을 지켰다. 그때는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냥 정부에서 나와서 도와주는 줄 알았어요." 국가의 공백을 시민들이 메꾸고 있던 줄은 안산에 와서야 알았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으나 일일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받은 봉사를 사회에 나눠주기로 했다. 참사 이듬해인 2015년부터 시작된 연탄 봉사는 가족봉사단이 설립되며 본격화됐다. 재작년부터는 가족협의회 모금을 통해 연탄을 직접 사서 배달하고 있다. 올해는 북정마을에 한 가구당 200~300장씩 총 3,000장을 기부했다.
 
연탄은 시작일 뿐!
첫 집 배달이 끝나고 곧장 다음 집으로 넘어간다. 이번엔 내리막길이다. 릴레이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다. 사람들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본 채 일렬로 서 있다. 쉬지 않고 허리를 돌리며 연탄을 나른다. 최혜원 가족협의회 간사의 아들 이태희 군이 큰소리로 연탄 개수를 센다. "여든일! 여든이! 여든삼…!"
몇 집을 더 거쳐 드디어 마지막 집이다. 이태희 군이 씩씩하게 앞장선다. 엄마, 아빠들도 남은 힘을 불태운다. 마지막 연탄을 창고에 쌓는 순간, 흐르던 땀방울이 환한 미소에 고인다. 연탄을 깨뜨리면 벌금 내기로 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가 집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모두 모인 가족들은 까매진 손바닥을 활짝 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봉사가 끝났다.
그동안 가족봉사단은 연탄 봉사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꾸준히 해온 김장 봉사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직접 담근 김치를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나눠줬다. 한부모가정에 4.16공방의 엄마들이 뜨개질한 장갑과 목도리를 전해주는 활동도 해왔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복장을 하고 안산의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안산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는 '줍깅'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 산불이나 물난리를 겪은 지역으로 달려가 이재민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고 가족봉사단은 느낀다. "우리는 여전히 100%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도움받은 것의 100분의 1이나 보답했을까 싶어요." 박정화 씨가 말했다.
늘 모자란다고 느낀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이날처럼 힘을 쓰고 온 날에는 집에 들어가 이틀은 몸져눕곤 한다. 투쟁하며 시멘트 바닥에서 한뎃잠을 잔 세월이 긴 터라, 몸이 안 아픈 부모들이 없다. 같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못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후원으로 마음을 보태곤 한다. 그런 부모들을 보며 박정화 씨는 다시 힘을 얻는다.
 

눈물과 한숨 대신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봉사가 엄마, 아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곤 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 생각에 견디기 어려웠는데,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몸을 쓰니 웃을 일도 늘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부모들과 함께한다는 점이 가장 큰 위안이 됐다. 봉사 전날 밤에도 딸 생각에 잠 못 이뤘다는 박정화 씨는 "부모들이 봉사를 통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치유를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봉사의 장점을 또 하나 꼽았다.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싸워나갈 힘을 얻어간다는 것이다. "진상규명이 안 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봉사활동같이 돌파구가 있으니까 그나마 좀 견디지, 아니면…. (한숨) 진상규명이 되기를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는 거예요. 자꾸 봉사도 하고 그래야 원동력이 생기는 거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가족봉사단이 봉사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4.16봉사단 안산시 어르신 김장 및 방한용품 나눔사진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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