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눈물

애완견 미미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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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호(protch)등록 2023.05.11 10:17
미미의 눈물 / 최종호
 
"미미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지난 목요일, 동물병원에 간 아내가 울면서 전한 소식이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최근 들어 뇌수막염을 앓고 있던 녀석의 발작 주기가 짧아졌다. '보낼 준비를 해야 하나?'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갈 줄은 몰랐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치료받고 집에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뭘 잘못 먹었는지 밤새 토해서 거실 여기저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기력이 너무 없어 병원에 맡겨 두고 올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불안감도 없진 않았다. 그런데 결국 치료차 간 그곳에서 생을 다했다.
 
사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유기된 동물만 처리해 준단다. 일단 집으로 오라고 했다. "깜순아, 미미가 죽었대. 이제 너 혼자 어떻게 사냐?" 등에 얼굴을 대고 흐느끼며 혼잣말을 했다. 녀석은 영문을 모른 채 눈만 말똥말똥했다.
 
10년 가까이 정들었는데 홀연히 떠나 버렸다. 둘이는 자매로 어려서부터 함께 지낸 터라 혼자 남아 상실감이 클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시골 형님 댁 밭 가장자리에 묻은 다음 나무 추모비라도 세울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화장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애완동물 장례식장이 완주에도 있었으나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여서 임실에 전화를 걸었다. 언젠가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더니 그곳이 더 가까웠다. 직원은 친절했다. 화장은 도착하는 즉시 가능하단다. 비용도 생각보다 쌌다. "수목장처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이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처리하는 장소가 있다며 돈을 더 내면 된단다.
 
그사이 아내가 네모난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녀석은 옆으로 누워 있었다. 만져보니 온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깜순이가 와서 냄새를 맡더니 죽음을 알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낑낑거렸다. 미미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급하게 부르더란다. 의사가 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어 그만두라고 했단다. 근근이 견디던 기력이 다 빠져 발작을 일으켜 쇼크로 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아내는 말했다.
 
소식을 듣고 큰아들도 직장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완도에 사는 대학 선배 집에서 녀석들의 어미를 집으로 데리고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2년 6개월 전에는 발작하는 미미의 동영상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적지 않은 검사비를 기꺼이 내주었다. 그 은혜를 아는 듯, 어쩌다 집에 오면 녀석은 무척이나 반겼다.
 
화장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구했다. 아내와 아들도 내 뜻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은아들도 점심시간을 틈내서 미미를 보러 왔다. 계란 프라이 두 개로 점심을 때우고 나는 복지원으로, 아내와 큰아들은 깜순이를 태우고 동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더 우울했다. 녀석이 죽기 전에 아파서 고통스러워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사하려고 냉장고와 냉동실에서 꺼낸 음식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두었는데 입을 댔던지 다음 날부터 심하게 토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노란 위액을 쏟아 내더니 나중에는 탈수증에 시달리는지 물을 몽땅 먹고는 그조차 여기저기에 게웠다. 아내는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찹쌀과 북어를 끓여 주사기로 먹였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병원에서 이렇게 된 것이다. 죽음을 예감했더라면 배웅이라도 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해 서운했다. 복지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전달 받았다. 그곳에서 사체 처리 과정을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내 온 것이다. 작은아들도 직장에서 도서관에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 녀석의 병이 깊어져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되니 빈자리가 크다. 자꾸 그 녀석이 엎드려 있던 자리에 눈길이 머문다. 깜순이도 기운이 없어 보인다. 가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가 하면 소파 밑을 두리번거리며 미미를 찾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지금껏 둘이서 시샘하고 장난치며 모든 걸 함께해 왔는데. 말 못 하는 녀석이 그저 안타깝기 만하다.
 
한 줄기 연기와 한 줌 재로 변해 버린 사진을 보니 덧없게 느껴진다. 녀석은 영영 떠났지만 나와 우리 가족의 마음에서 떠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내리는 비가 미미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미미야! 너와 함께하는 동안 행복했단다. 부디 잘 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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