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는 나쁜 여자일까?

당신의 인생영화- (1) 500일의 썸머

검토 완료

허보람(blackshine)등록 2023.05.19 10:18
 

500일의 썸머 포스터 ⓒ 20세기 폭스

 

첫 번째 소개할 영화는 '500일의 썸머(2009)'다. 500일의 썸머는 남자 톰이 여자 썸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완전히 이별하는 500일의 과정을 톰의 시점에서 다룬 영화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톰은 사랑에 대한 운명론자, 썸머는 사랑에 대한 현실론자다. 톰이 다니던 회사에 썸머가 새로 입사하면서 둘은 만나게 되는데, 그때 톰이 썸머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다. 둘은 대략 200여 일 정도의 연애를 하고 헤어진다. 나머지 기간은 톰이 썸머를 잊어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썸머는 나쁜 여자인가?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이 궁금해할 주제는, '썸머는 나쁜 여자인가?'라는 점이다. 특히 이 영화는 철저히 톰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썸머가 나쁜 여자로 보일 수 있다. 썸머는 톰에게 연애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라고 말한다. 톰의 입장에서는 명확히 관계를 안 해주는 게 불안해했고, 실제로 질문까지 했다. 

하지만 썸머를 옹호하는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썸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의 상처 때문에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고, 불안정한 사람인데, 운명론자인 톰은 썸머에게 확신을 주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틀에 가둬서 생각했기 때문에 썸머가 이별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썸머의 불안정한 상황을 톰에게 다 말했으면 톰이 썸머의 불안을 없애줄 만큼의 확신을 줬어야 했는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이 생각한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톰이 오히려 불안해하고,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처음부터 썸머가 능동적이었다. 만남을 시작하는 말도 썸머가 했고, 썸머는 톰의 관심사나 잊힌 꿈들을 지지해준 반면에 톰은 썸머를 운명의 상대로 이해했지 썸머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았다. 

#썸머는 다시 만난 기차에서 왜 여지를 줬나?

영화를 본 많은 남자들이 썸머를 나쁜X로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담긴 장면이다.  영화의 종반부, 헤어진 썸머와 톰은 직장동료의 결혼식에 가는 기차안에서 만난다. 거기서 썸머는 톰에게 인사하고 둘인 결혼식장을 가는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결혼식에 가서도,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본인의 집에서 여는 파티에 초대까지 한다. 

썸머를 아직 잊지 못했던 톰은 썸머의 이런 태도 때문에 재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해서 썸머의 파티로 향한다. 여기서 감독은  톰이 기대했던 파티의 장면과 실제로 벌어지는 파티의 장면을 화면을 분할해 함께 보여준다. 톰이 느꼈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그래서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썸머는 애초부터 톰과 잘해볼 생각이 없었던 것인데, 그렇다면 왜 기차에서 말을 걸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톰이 이 질문을 썸머에게 하자 썸머는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썸머는 상당히 자유로운 영혼이라 그때 당시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본인 감정에 충실했을 수도 있다.

결말에서 썸머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걸 보여주지만, 그 당시에는 연애 중인지, 결혼을 약속했는지 알 수 없다. 썸머의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말은 반대로 썸머도 감정이 남아있었고, 그래서 당시에 톰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아직도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인생영화라고 불리는 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입체성 때문이다. 톰의 관점에서 영화를 봤을 때, 썸머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을때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고 보는 관점에 따라 톰이 '나쁜 X'가 될 수도 썸머가 나쁜 X가 될 수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처럼 생물학적-사회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남자와 여자가 그 차이를 뛰어넘고 사랑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 둘 사이의 수많은 미묘한 감정과 오해를 500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연애를 통해 함축해 보여준 500일의 썸머는 먼 훗날에도 꾸준히 사랑받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재편집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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