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밤실 둘레길에서 행운을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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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환(2iron)등록 2023.05.31 11:41
 

돗밤실 둘레길 두시간 코스 돗밤실 둘레길은 아기자기하다. 풀과 나무를 보면서 그늘을 걷을 수 있다. ⓒ 이보환

한낮 기온은 어느새 여름이다. 햇볕이 뜨거운 5월21일 일요일 오후 그늘길을 찾아 나섰다.
경북 영주의 돗밤실 둘레길이 떠올랐다. 길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추천 코스가 늘어난다. 여기도 그 중 한 곳이다.
뻥 뚫린 고속도로의 파란하늘이 나를 파일럿이 되게 했다.
한적한 도로를 활주로 삼아 힘껏 날아오르는 상상만으로 벌써 즐겁다.
돗밤실 둘레길은 영주시 이산면 행정복지센터가 출발점이자 도착지다. 
행정복지센터 뒷편으로 널찍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에 꿀밤나무가 많아 돗밤실이 됐다고 전해진다. 옛날 사람들은 꿀밤을 '돼지밤'이라 했고, 돼지의 옛 이름 '도야지'에서 '도'자를 따 '돗밤실'이 됐다고 구전(口傳)된다.
조선 시기에는 저율곡방(猪栗谷坊)이라고 했다는데 억지 한자식 조어같아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저율(猪栗)'을 순우리말로 하면 '돗밤실(꿀밤마을)'이 된다.
'돗밤실 둘레길'은 망월봉-약수봉-흑석쉼터-제비봉-송천교-명학봉-묘봉에서 원점 회귀하는 5.6㎞로 2시간 가량 걸린다. 
시골마을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흙집 앞에는 잘 일군 텃밭이 있다. 그 위를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보니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진다.
 

행복의 종 장수, 건강 등을 가져다 준다고 하니 오르는 사람들은 종을 한번씩 치곤한다 ⓒ 이보환

울창한 숲 초입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행복의 종>이 맞아준다.
행복의 종은 1950년대 말 이산치안센터에서 소화 또는 수방사태시 의용소방대를 소집할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산면사무소에서 보관하던 종은 돗밤실둘레길이 완공되면서 '행복의 종'이란 새이름으로 이 곳에 이주했다.
한 번 울리면 장수,
두 번 울리면 건강,
세 번 울리면 부자,
네 번 울리면 출세,
다섯 번 울리면 자손번창.
재미있는 안내글에 나도 모르게 종에 매달린 끈을 잡고 종을 치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다섯번의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솔솔 산바람에 잠자던 숲이 기지개를 켠다. 뻐꾹 뻐꾹 울음은 예전 우리집 뒷동산에서 들리던 그 소리다. 울창한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에 나무와 풀이 빛난다.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는 산짐승을 배부르게 하고, 싹을 틔워 나무로 성장하면서 숲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초록 빛깔 가득 담은 오솔길에 노란애기똥풀이 수줍게 피어있다.
이름과 달리 독초로 구분된다고 하니 함부로 꺽으면 안되겠다.
큰 나무 사이로 잠깐 비치는 태양이 강렬하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흙길을 식혀준다. 
산등성이는 낮지만 밤나무, 참나무, 소나무의 쭉쭉뻗은 모습이 힘차다.
나무를 따라 어깨를 쫙 펴고 보폭을 넓혀 걷는다. 수목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청량하다.
야트막한 곳에 망월봉 안내판이 액자 모양을 하고 있다. 각 봉우리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림이 재미를 더해준다. 망월봉을 지키는 '달로 간 토끼'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가보시라!
걸으면 걸을수록 길을 만들고 관리하는 분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길목길목 만나는 약초와 야생화, 나무는 이름표를 달았다.
"정말 잘해놨다. 명품길이네"
혼잣말이 입밖으로 크게 나왔다. 
땀이 나려고하면 곧바로 바람이 살랑인다. 바람에 실려온 푸릇한 솔향기가 가슴 깊숙히 전해진다.
약수봉을 지나자 봉우리를 잇는 출렁다리가 흔들흔들 움직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요즘 유행하는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출렁다리가 아니다. 둘레길을 연결하다보니 도로를 안전하게 건너게 할 요량으로 조성됐다. 가는 곳마다 엷은 빛의 들꽃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출렁다리와 흑석쉼터를 지나 흑석사로 이동했다. 
깊숙한 숲길에 설치된 안테나가 문이 달린 커다란 티브이를 떠오르게 한다. 비바람치면 치치~소리와 동시에 물결치던 티브이 화면도 머리를 스치며  미소짓게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좁은 숲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주택이, 왼쪽으로는 흑석사가 나무틈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흑석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간간히 우는 새소리가 조용한 사찰의 적막을 깨운다. 
 

마애삼존불 고운사에 있는 마애삼존불은 경북 문화재다. ⓒ 이보환

마애삼존불상은 경상북도 문화재다. 마애불(磨崖佛)은 자연상태의 바위에 새겨놓은 존불(本尊佛)과 좌우협시보살상(協時 菩薩像)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천히 사찰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흑석사 석조여래좌상 및 마애삼존불상 전경을 사진으로 남기며 아쉬움을 달랬다.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해가 길어졌음을 실감한다. 급할게 없으니 마음이 여유롭다. 맥문동, 바위취, 수호초, 꽃잔디,아까시나무, 진달래, 산초나무, 돌복숭아, 리기테다소나무. 숲을 이루는 친구들의 이름표를 보며 하나하나 불러봤다. 몇번씩 봐도 나무이름, 풀이름은 기억하기 쉽지 않다. 
수풀우거진 곳에 또 하나의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돗밤실길은 갖가지 나무와 약초, 오르막, 사찰, 바위 등 큰 산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췄다.
도착지가 가까워지자 숲길 초입을 장식했던 노란애기똥풀과 맥문동이 만발하다. 
이산면 치안센터를 지나자 마을을 보살펴준다는 커다란 사모(紗帽)바위가 등장했다.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하산길에 지나치지 말고 들러 행운까지 잡았으면 좋겠다. 
돗밤실 둘레길은 사람에 치이고 일에 볶였던 이들에게 권한다. 시원하게 걷고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 척박했던 마음밭이 기름져 있을테니까. 

사모바위 양반이 쓰던 사모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방문객들이 한번 들러갔으면 좋겠다 ⓒ 이보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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