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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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숙(dschoi5007)등록 2023.07.08 17:24
온 산과들이 녹음으로 짙어가는 오월 어느날 50년간 고부간으로 맺어졌던
우리는 저승과 이승으로 갈라섰다.
96세를 일기로 한많은 세상과 작별한 어머니! 
이제 당신을 보냅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6남매의 장남(4남2녀)에게 오직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그의
순결한 진심만을 믿고 예물로 아무것도 선물받지않고 시집을 갔다.
오히려 총각때 해입은 단벌양복 할부금까지 빚으로 갚아야 했던 
마이너스의 출발이었지만 가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건 시집식구들의 무례한 행동들이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공허한 다짐만을 믿고 맹자의 가르침(무 수오지심 비인야 :염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과 정직하게 살라는 부친의 엄격한 교육아래 도덕적무장은 단단했지만 유복하게 자라 세상물정은 전혀 모르던 철부지였었다.
온실속의 화초와도 같이..
없는집에서 올곧게 살고 선한 결과를 잉태하고자 온몸을 던져 열심히
살았으나 한번도 내편인적 없던 그의 이기심과 친가에의 효도는
본인은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나 또한 처절하게 병마와 싸우게 되었다.
이혼을 수백번도 생각했으나 용기도 없었고 무엇보다  두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에 발목이 잡히곤 했다.
걸레가 얼어붙던 북향 문간방의 첫출발은 너무나 돈이 없어 신혼생활은 아예 없고 매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어둠만이 계속되었다. 시집에 돈부치고 최저생활비도
없었기 때문에.
고장잦은 조그만 TV가 유일한 낙이었지만 재미있을라 치면 어김없이 나가버려서 늘 황망하기만 했다. 
글을 쓰고 싶었고 저널리즘을 전공하여 행복하게 가정 이루고 싶었던 나는 유복하게 산 사람(내 부모의 노력덕분)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으로 갑중의 갑이었던 어머니에게 뚜렷한 이유없이 멸시당하고 살았다.
어머니는 세상에 대한 분노,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며  6남매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하지않고
하고 싶은대로  이기적으로 생활해 왔었다.
마치 아들을 통째로 빼앗은 내연녀를 대하듯이 본인이 누려야 할 모든것을 내가 독차지했다는 비뚤어진 생각때문이었을까?
교편을 잡고 청렴하고 강직했던 시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40대 중반에 혼자가 되신 당신의 막막하고 불우했던 처지를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으나 빈손에서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겨우 집을 사서 어렵게 
융자받고 이사하는 곳곳마다 패악질로 입에 담을수 없는 욕설로 (오로지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집늘려가면서 생활비는 더 안주나 싶었던지) 뒤집어 놓는 바람에 이웃들은 계모냐고 물어왔다.
별다른 연유도 없이 날벼락을 맞으며  "계모는 남의 눈이 있어 더 그러질 못하지."
생각했다. 결코 기센 어머니를 누구도 못이기고 모든 낭패는 오롯이 내몫 이었다.
그리하여 처녀때보다 몸무게가 20kg 늘어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공황상태였다.
얘들 어렸을때(아들5세,딸3세) 큰시동생을 무조건 부산에서 서울로 가방한개 챙겨
올려보내고 취직시켜서 사회생활하도록 2년 8개월 데리고 있었고 없는 살림에 여자친구 둘씩 만나는 시동생 용돈까지 댔지만 돌아가실때까지 "동생들 여럿 돌보느라 수고했다.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못들었다.
아침엔 한 시동생이 부산에서 상경하여 몇일 왔다가고 저녁엔 시어머니 서울나들이에 다음날 부산가실때 옆집 엄마에게 돈빌려 차비 해드렸더니 액수 적다고 투덜거렸다.
정성을 다해 시아버지 제사상 차리고 시골의 친척들 많이 들른 날 괜한 트집잡아 나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와 어머니가 격렬하게 싸우자 나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수 없다 싶어 무작정 집을 나와 다섯끼를 굶고(그 많은 제사음식 뒤로 한채)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해 보았다.
막상 집을 나서니 내 수중엔 만원도 없어 친구에게 빌리러 갔다.
곧 갚았으나 그때의 모멸감과 자괴감은 큰 상처로 오랫동안 남았다.
오랜 결혼기간 동안 시집일로 격렬하게 싸울 때 항상 마음에 응어리로 남는건
"내가 고통속에 시달리고 있을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이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깨달았던건 남편,나,시어머니사이의  분쟁중 가장 상처받은 이는 남편이라는 걸 알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대기업에서 성실하게 잘 나갔지만 월급쟁이인 우리가 부산(동생들 모두 부산살고 장남인 우리에겐 올생각 없다하여)에 작은 아파트를 사드렸다.
매번 월세를 제때 못내 주인과 싸우고 쫓겨 다니는 어머니께 큰돈 들여(우리 아파트를 줄이고) 집 사드렸지만 당신 복에 넘쳤던지 돈욕심을 내어 집값과 전세가 별 차이없던 그때 우리 몰래 전세금 몽땅 빼서 
야간도주 해버렸다.
큰아들내외가 힘들게 마련해준 집을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그렇게 아들내외의
진심을 짓밟아 버리자 그는 거의 미칠듯이 분노하고 좌절했다.
 모두가 형,오빠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어떤 동생들도 "그건 옳지못한 일이오.
그렇게 해선 안돼요."하고 바른말 하는 이는 비겁하게도 아무도 없었고 어머니는 들을 사람도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자식이 마련해준 집까지 챙기며 본인 하고싶은 일과 분에 넘친 사치는 하던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었다. 손주 과자한봉지도 안사줬던 비정한 할머니!
세월이 흘러 나는 병원의 도움을 받아 15kg~20kg을 빼고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공자의 "과유불급(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을 좌우명삼아
늘 궁핍한 생활속에 알뜰하게 살아왔고 아들,딸도 착한 심성들로 반듯하게
자라주어 40대 후반의 전문인이 되어 가정이루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살아가고있다.
평생을 가족들에게 시달려온 그는 지금도 거의 매일 밤마다 쫓기는 꿈을 꾸며
억압된 마음으로 평화스러운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시어머니는 8년전 갑자기 치매가 와서 당신은 큰아들과 이젠 안정적으로 사회인이 된 다른 
자식들과도 완전히 소통이 끊기고 말았다.
우리도 누구나 가야할 길인 죽음앞에서 사람들에게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모질게
대해서는 안되고 어떤 이유로든 자녀들을 소유물로 생각하여 괴롭혀선 안된다.
돌아가신 분들은 가슴속에 살아있으니까 오늘을 최선다해 기쁘게 살고 마음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쓰야한다.
비록 많은 아픔을 남겨줬던 당신이지만 내 남편의 어머니이고 내 자식들 할머니란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부디 좋은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나도 이젠 후회와 고통속의 오랜 방황을 졸업하고 남은 시간을 낭비하지말고
소중하게 아껴쓰려고 한다.
6남매중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았던 시집식구중 막내시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언니! 그간 고생많았어요. 오빠가 우리 식구들과 여러사람 도운줄 알았으나 아무도 어머니로 인해 그렇게 힘든줄 몰랐어요."
그리고 응어리져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걸 느꼈다.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 하다.
이제 온전히 당신을  하늘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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