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강이 만나는 곳인 핵심 생태 구간으로 문제의 보도교 교량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의 보도교가 완공돼 저곳으로 수시로 사람이 다니게 되면 산과 강의 생태계는 완전히 단절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벌이는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사업은 민가도 거의 없는 곳에 총 길이 3.77㎞의 기존 5m짜리 제방을 폭 7m짜리의 슈퍼제방으로 변경하는 사업과 원래 길이 없던 산지 절벽 앞으로 1.54㎞에 이르는 교량형 보도교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나뉜다. 총 공사비가 367억 원에 이르고, 논란의 핵심인 보도교 건설사업에만 1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환경부가 17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민혈세로 대구의 3대 습지로 일컬어지는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 구간에 새로운 길을 내려고 하면서 환경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낙동강유역환경청도 지난 2월까지는 환경단체와 같은 입장이었다. 환경단체인 대구환경운동연합과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이하 금호강 공대위)로부터 이 사업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를 받은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지난 2월만 하더라도 '금호강 공대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게 "제방 공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보도교 사업은 내가 봐도 문제가 있는 사업이라 생각되고, 어류와 조류 전문가 자문의견을 들어봐도 문제가 있다 해서, 보도교 사업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던 난동강유역환경청장은 지난 5월 말 느닷없이 입장을 번복했다. 그렇게 분명한 입장을 견지했던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왜 갑자기 입장을 번복했을까? 지난 2월과 5월 사이에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 주민설명회장 강당을 가득 메운 주민들. 그러나 이 주민들은 팔현습지를 찾는 진짜 주민들이 아닌 이날 주민설명회를 위해 동원된 '가짜 주민'들로 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랬다. 그 사이인 지난 4월 6월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그 주민설명회는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에서 보도교 사업이 팔현습지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설명하는 주민설명회 자리였다.
그러나 필자도 참석해본 그 주민설명회는 시작부터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 주민설명회의 성격을 어떻게 알았는지 주민설명회장인 수성구 고산2동 행정복지센터 강당으로 올라가는 입구 계단에서부터 한 사람이 "미꾸라지보다 인간 안전이 우선이다"라고 씌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고 3층 강당 입구에는 수십 장의 동일한 피켓이 제작돼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손에도 비슷한 피켓이 들려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조직적으로 동원된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주민설명회의 주체들인 그 주민들이라는 것이다. 강당 입구에 놓인 참석자 참석 확인 명단을 봐도 그렇고, 직접 물어본 바도 그들은 수성구 고산동과 만촌동 주민들이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업이 진행되는 수성구 고모동 팔현습지 현장과는 6~7킬로미터 이상씩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업의 그 주민이란 것이다.
하여간 이날 발언권도 얻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마이크를 들고 고성을 내지르며 난동에 가까운 행패를 부리는 주민들 때문에 그 주민설명회는 파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를 받아든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그 후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환경부 본부로부터도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환경영향평가까지 통과하고 예산까지 잡힌 사업을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왜 마음대로 사업을 변경하려 하느냐며 추궁을 당했다는 것이다.
'가짜 주민'들에게 농락당한 낙동강유역환경청장
이런 과정 끝에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승리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금호강 공대위' 박호석 대표의 주장처럼 "동원된 '가짜 주민'의 승리"인 것이다.
▲ 팔현습지를 찾는 주민들에게 팔현습지 망치는 보도교 공사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제천간디학교 아이들. 지난 6월 3일 서명전 모습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주민들을 '가짜 주민'들로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보도교가 놓인다는 현장에 가보면 그들이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가짜 주민'들이란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팔현습지에 가서 가만히 살펴보면 안다. 팔현습지를 찾는 부류는 단 두 부류란 사실을. 한 부류는 주로 수성구 사람들로 파크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주로 강 건너 동구 동촌과 방촌쪽 사람들로 팔현습지가 좋아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이다.
즉 강 반대편인 수성구 쪽에서 산책을 위해 팔현습지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극소수란 것이다. 왜냐하면 수성구 쪽에는 민가가 팔현마을이란 아주 작은 마을만 있고, 제대로 된 마을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주민들이 사는 곳은 6㎞ 이상 떨어진 수성구 시지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 멀리서 굳이 이곳까지 산책을 나올 수성구 주민들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보도교가 놓이면 사라지게 될 산지 절벽 바로 아래 왕버들 숲에 들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이곳에 교량형 보도교를 놓으려면 이 아름드리 왕버들 숲을 모조로 베어내야 하는데, 과연 이 왕버들 숲에 와본 수성구 주민들이 있기나 할까란 의심이 들 정도로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란 사실이다.
▲ 팔현습지 왕버들 숲. 문제의 보도교 사업이 진행되면 이 아름드리 왕버들 숲이 모두 사라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즉 이곳은 원래 길이 없는 곳이다. 왜? 이곳은 산지 절벽과 강이 만나는 곳으로 사람의 접근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이리로 길을 낸다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다. 이런 곳에 지금 그 주민들이란 사람들이 새길을 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호석 대표의 말처럼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불려 나온 사람들"이란 것을 위 사실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사업의 찬반을 물어볼 '진짜 주민'들을 만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진짜 중요한 것이다. '진짜 주민'들은 누군가? 바로 팔현습지를 실지로 찾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짜 주민들인 것이다.
매주 토요일 팔현습지를 사랑하는 '진짜 주민'들을 만나러 팔현습지를 찾는다
따라서 주민설명회를 하려면 그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고, 이 사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보려면 그들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호강 공대위는 6월 10일부터 그 진짜 주민들을 만나 보기 위해서 서명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팔현습지를 사랑하여 그 습지를 자주 찾는 바로 그들에게 이 사업의 찬반을 물어도 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 이 사업의 본질을 들려주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 한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우리의 입장도 다시 정리해보려 한다.
▲ 금호강 팔현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강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흘러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이른 아침 금호강 팔현습지를 찾은 백로 한 마리가 물고기 사냥을 위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러나 그들은 문제의 보도교 사업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팔현습지라는 아름다운 습지가 좋아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기에 이 습지를 훼손하는 공사를 찬성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6월 10일부터 매주 토요일 팔현습지를 찾는다. 팔현습지를 사랑하는 '진짜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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