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면 괜찮아질까요?' 학벌을 담보로 우울 주는 대학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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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연(milktea103)등록 2023.06.20 10:17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느새 150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수능이 가까워질 때마다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수험생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2022년 유기홍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5천여 명의 국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3.3%의 학생들이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렇다'라고 답변한 비율은 점차 높아졌다.

재수생 서모 씨(19·여)는 지원했던 대학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고 현재 서울 소재의 모 재수 종합학원에서 공부 중이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3년간 내신 공부와 교내 대회 참가를 병행하며 열심히 생기부를 채웠으나, 목표한 대학, 학과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1년을 더 투자하더라도, 하루만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수능 시험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녀는 "대학 진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대학의 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들의 시선은 느껴진다"며 "대학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곳보다는, 그저 성적이 높았다는 인증을 받기 위한 꼬리표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의감을 털어 놓았다.

|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대학 줄 세우기 문화,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펜트하우스>이다. 자녀를 '서울대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자극적인 스토리는 공개와 동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꿈을 위해 노력하지만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강박과 집안 분위기로 인해, 정작 입시를 치루는 학생들이 망가져가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학벌주의가 비단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성적순으로 우리나라 대학을 나열해 앞 글자만 따서 부르는 이 문구는 이미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겐 당연한 진학 기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튜브의 모 코미디 영상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서연고, 2학년 때는 서성한, 3학년 때는 중경외시를 목표로 잡는다'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내신에 맞춰, 목표로 하는 대학의 라인을 낮춘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당연하게 자리 잡았다고 해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학문의 소양을 기르는 대학이 성적만으로 개개인의 노력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전락하고, 수험생들에게 평생의 꼬리표로 남는다는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학벌주의,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
지난 14일, 이범 교육평론가와의 유선 인터뷰를 통해 학벌주의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이 평론가는 "학벌주의는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며 근본적인 원인으로 대학 간의 재정 격차를 꼽았다. 작년 8월,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4년제 일반·교육대학 194개교에 대한 '2022년 8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대학별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학교 4860만원, 연세대학교 3500만원, 성균관대 2840만원 등 줄 세우기 문화에서 상위권에 위치하는 대학일수록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교육비의 차이는 곧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으로의 진학에 집착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평론가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학벌주의를 없애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일까. 이전부터 한국 입시에서 '대학 평준화'는 꾸준히 언급되어 왔으며,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이미 대학 평준화를 실시해 전국의 대학에서 인재를 고루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대학 평준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학벌주의의 근본적 원인은 학교에서 투입하는 재정 격차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85%를 차지하는 사립대와 정부의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점 국립대만이라도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교육의 질을 고르게 만드는 방법도 있으나, 상위권 명문대학으로 일컬어지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중에서도 무려 8개 학교가 사립대인 만큼,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 수험생 스트레스, 해결할 방법은 없나요
한국의 대학 입시가 수험생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은 이미 자명하다. 그러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학벌주의는 시스템적인 문제로, 당장의 근본적인 해결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은, 어떻게 해야 이 시기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일까.
 
고등 온라인 강의 브랜드 '이투스(ETOOS)' 소속 방동진 강사는 매주 출강하는 학원에서 수강생들과 상담 시간을 갖는다. 성적에 대해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함으로써 최대한 공부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이다. 방동진 강사는 상담을 통해 파악한 수험생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았다.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목표와 꿈이 확실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호한 학생들일수록 공부에 당위성이 부여되지 않아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공부의 방향성은, 대학 입시가 끝난 이후에도 자신이 목표한 대학에 진학했는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진로를 이어 나갈 의지에 따라 대학 생활을 보내는 태도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꿈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가 갖고 싶은 '직업'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어떤 분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거나, 아직은 해결될 수 없는 학벌주의의 산물인 상위권 대학이 당장 나의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공부가 어디로 향하는 과정의 일부인지 알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노력이 헛되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수험생으로 살던 이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지금의 1분 1초가 후회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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