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마을 서산, 해 지는 마을 서산

부석사 일몰 속에는 내일의 태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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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문(treet)등록 2023.06.25 14:17
일요일 오후, 차를 달리고 산을 올라 서산 부석사에 올랐다. 나는 일출보다 일몰을 좋아한다. 해가 질 무렵 산부터 시작하여 들판을 뒤덮는 황혼. 그리고 찾아오는 어둠. 그 어둠 속에 내일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서산 부석사에서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 최장문

    

운거루. 구름이 머문다는 뜻으로 절벽에 기둥을 세워 만든 누각. 운거루에서 바라보는 천수만 일몰의 황홀함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 최장문

  부석사의 산사다운 고즈넉함은 가히 문화재급이다.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 있는 세분의 동자승 표정과 몸짓은 발길을 머물게 한다. 한 동자승이 합장을 하고, 뒷 짐 진채 명상에 잠겨 있는 동자승, 봄 기운 쏘이듯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동자승이 있다.아름드리 고목과 철 따라 피고지는 야생화도 지천이다. 가을날 가만히 벤치에 앉아 바람만 느껴도 좋다. 운이 좋으면 천수만 바다와 안면도 너머로 지는 황혼의 일몰을 맛 볼 수도 있다.  

세 동자승 ⓒ 최장문

  

승탑 ⓒ 최장문

 
절 뒷편에는 선묘낭자를 모신 누각과 낭자도가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 창건 설화와 똑같이 의상대사를 흠모해 서해의 용이 된 선묘낭자가 의상의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뜬 바위, 부석(浮石)으로 물리쳤다는 그 선묘이다.
 
그런데 경북 영주와 충남 서산에 절 이름부터 창건 설화까지 꼭 닮은 절이 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산 부석사엔 또 다른 창건 내력이 전해 온다. 고려 말 충신 유금헌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여생을 보냈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이 별당을 사찰로 변형하여 절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의상 창건설보다 700년 늦은 시기이다.
 

선묘각 안에 있는 선묘낭자도. 선묘가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책은 의상대사가 창시한 화엄종의 경전이다. 그림 왼쪽에는 죽은 선묘가 용으로 변하여 의상이 탄 배를 신라로 이끌고 있다. ⓒ 최장문

  
우리 절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대부분 불탔다. 절이 약탈 대상이기도 했고 승병들의 근거지였던 탓도 있다. 그런 뒤로 많은 절을 일제히 새로 지으면서 절의 역사를 더 빛나게 하겠다는 생각에 창건 설화를 윤색했을 가능성도 있다. 원효, 의상 대사가 세웠다는 절과 암자가 전국에 수백 곳이나 된다는 사실이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굳이 서산 부석사의 의상과 선묘낭자 창건 설화를 부인할 것까지도 없을 듯하다. 당진 문화원에서 세간에 내려오는 전설을 모아 발간한 <당나루의 맥락(전설편)>에는 원효와 의상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신라 최치원의 <의상본전>과 <원효대사 행장>에 의하면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려고 했던 해안이 당진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해안이 경기도 남양만 부근이라는 다른 주장도 있다.'
 
서산 부석사는 서해 건너 중국을 마주보고 있어 소백산맥에 들어앉은 영주 부석사보다 선묘낭자에 얽힌 창건 설화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영주 부석사엔 대웅전 바로 왼쪽에 부석이 있다. 서산 부석사에도 유난히 기암들이 많지만, 부석은 서해 앞바다에 뜬 '검은여'로 남아 있다. 여는 우리말로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너럭바위를 말한다. 서산 부석면 사람들은 이 검은여에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석사 일주문에 걸린 현수막.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제자리 봉안을 간절히 발원합니다”라고 씌여 있다. ⓒ 최장문


서산 부석사는 고려 관음불상으로 전국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2년 문화재 절도범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관음불상을 홈쳐 한국에 들어와 적발되었는데, 그 불상이 서산 부석사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과 정황들이 많았다. 불상을 둘러싼 부석사와 일본 관음사 소유권 공방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해 뜨는 서산 로고(서산 시청) ⓒ 최장문



부석사를 내려오면서 문득 서산시 로고가 생각 났다. '해 뜨는 마을, 서산'.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서산'하면 해가 지는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해는 뜨고 그 지역의 서쪽에 있는 산(서산)으로 진다. 서산시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에 강조점을 두고, 전진하는 파도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뱃길을 열고, 서해안의 물류 허브로 성장하는 서산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해 뜨는 마을 서산에서, 해 지는 부석사 일몰을 보았다. 해가 천수만을 넘어 안면도 뒤로 넘어 가자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이 누구에게는 불안이 될 것이고, 누구에게는 내일에 대한 기다림이 될 것이다. 부석사 일몰을 보기 위해 부석사를 3번 찾아왔다. 그러나 황혼의 일몰은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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