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그림책에 기대어 울고 웃습니다.

그림책테라피 수업에서 내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살아갈 힘을얻습니다.

검토 완료

이유미(yumi05)등록 2023.06.25 14:28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정신없이 들른 도서관, 우연히 마주한 게시판의문구에 빠르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림책 테라피 수업 수강생모집, 날짜: 매주 목요일 3시  대상: 누구나 비용: 무료"
 테라피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주저없이 휴대폰 잠금번호를 풀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16명 정원에 15명 신청완료. 클릭하는 동안 간발의 차이로 마감될까 노심초사하며 재빠른 손놀림으로 신청완료 버튼을 눌렀다. 신청완료 문구에비로소 마음을 놓고 가던 길을 향했다.

 그 후 바쁜 나날에 허덕이며 신청사실마저 까맣게 잊고지내던 어느 날.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구내염으로 인해 고열에시달려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하고 휴가를 낸 뒤 내내 병수발을 들고 있었다. 왠종일 아픈 아이가 내뿜는 부정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다 받아내야했고, 수시로 열체크를 하며 물수건을 받치고 죽을 끓이고 엉덩이 붙일 새 없는 시간을 보내던중이었다. 

그러다 띠링 하고 온 문자알림음에 오늘이 그림책 테라피 수업 당일임을 알게되었다. 그림책 테라피 수업에 참여하고 싶은 나 자신의 열망과 아픈 아이 옆을 지켜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마음. 양가감정이 복잡하게 얽히어 싸우고 있었던 와중, 때마침 남편이 일찍 조퇴를 하고 온다는 메세지에 급히 나갈 준비를 했다.

 가는 내내 아픈 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렸지만 하루종일 시달렸던 내 자신도 치유가 필요했다. 내가 그림책 테라피 수업에서 받은 치유의 힘으로 아이의 병 치유도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위안하며 헐레벌떡 도서관의 5층 시청각실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그곳엔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분들이 모둠을 이루어 앉아있었다. 나는 대충 눈으로 스캔해 나와 비슷한또래로 보이는 3명의 여성분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그들에게 어색한 눈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살포시 엉덩이를 얹었다.

  수업은 강사님이 그림책을 읽어주신 후 , 그림책의 주인공의 마음에 대입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식의 수업이었다. 말 그대로 그림책으로 치유하는 수업. 그림책의 주제와 관련된 두세가지의 질문에 답하고, 모둠을 이룬 사람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이었다. 

그날의 수업은 고정순 작가의 "가드를 올리고" 라는 책을 읽고 나자신의 위치를 알고 내가 가진 두려움 바로보기" 였다. 강사님이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책장넘기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목소리가 공기로 울러퍼지자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가 안온하게 바뀌어감을 느꼈다. 교사로서 매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입장에서 듣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귀가 말랑말랑해졌달까.

 책의 주인공은 복싱선수이다. 맞는 것이 두려워도 링안에선 벗어날 수 없다. 무섭다고 도망간다면 복서로서 생명을 다하는 것이니까. 가드를 올리고 맞고 또 맞으며 시합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그림책에 나오는 몇 안되는 문장 중에 주인공이 수없이 맞는 것을 반복하고 쓰러지며 허공을 향해 내뱉은 "여기가 어디지? 나는 뭘하는 거지?라는 구절에 한참을 머물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며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서있는 자리를 잊어버린 삶. 

그날 수업의 질문은 "나는 링안인지 링밖에 있는지, 내가 가진 두려움이 무엇인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무엇인지." 세 가지였다.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 모인 수강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에 힘주어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펜을 든 손에 힘을 실어 풀어나갔다.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내 이야기가 궁금했던지 강사님이 내곁으로 다가와 굳게 닫힌 내 입을 살포시 열게해주셨다. ​​​​나는 그런 강사님의 온기어린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밖으로 내얘기를 꺼냈다.

 "저는 링안에서 육아와 일을 하며 고군분투 중입니다. 책 속 주인공처럼 육아에서 퍽 한대 맞고, 직장에서 퍽 한대 맞아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펀치를 향해 가드를 올리고 고군분투하며 저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가드를 내리고 링밖에서 제가 하고싶은 글쓰기를 마음껏 하고 싶어요. 하지만 만약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지금의 육아와 일을 놓아버렸을 때 가족들이 입게 될 타격이 두려워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맘껏 해보자며 억누르고 또 억눌르며 육아와 일을 향해 가드를 올립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게서 딱 붙어있던 독서와 글쓰기가 점점 멀어져갔고, 그것을 못하면서 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컸다. 하고 싶은 글쓰기를 억누르며 풀리지
못한 욕구를 품은 채 우울한 하루를 보내는 게 요즘의 나였다.

 그말을 들은 강사님은 아련한 눈빛을 내게 던지며 말했다.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놓을 수 없었기에 평소기상시간보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 매일 글을 썼어요. 조금이라도 하며 쌓아오니 지금 책을 세편 내게 되었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중심을 잡을 수 있었어요. 물론 건강은 조금 잃게 되지만요.. 하루에 몇줄이라도 좋으니 시간을 정해 글쓰기를 하며 온전한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강사님의 온기품은 눈빛과 나를 향해 던지는 힘있는 격려의 말은 우울감으로 검게 물든 내 마음에 탁 하고 스위치를 켜주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향한 지지의 눈빛을 보냈고, 그 눈빛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마음 속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내 이야기를 그런 따뜻한 이들에게 풀어놓으니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과 함께 문제가해결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강사님은 온기품은 그 눈빛을 내게서 돌려 우리 모둠의 아들만 셋을 둔 수강생에게 비추었다. 강사님의 그 눈빛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녀는 세 아이의 육아로 자신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갑작스레 눈물을 쏟았다. 여기저기서 휘둥그레한 눈빛들이 허공에 흩어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진심을 꺼내놓은 그녀의 용기에 비로소 그 눈빛들이 하나로모여 그녀를 향해 온기를 쏘아주었고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아침에 아이들때문에 너무 힘든 일이 있었는데 링안에 있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늘 제자신을 잃고 퍽퍽 맞는 삶을 사는 제가 문득 불쌍해졌어요. 누구에게도속시원히 하지 못한 그런 제 마음을 이야기하는 데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지네요. 여기선 온전히 내 자신이 된 것 같아 꾹꾹 눌러온 진짜 감정을 내놓게 되네요"

 그 말을 뒤에서 가만히 듣던 50대로 보이는 수강생이 갑자기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며 "나는 문제없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노랫자락에 나와 나머지 수강생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누군가에 대한 위로가 담뿍 묻은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온몸으로 그녀를 향해 지지를 보냈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은 서툰 노랫자락이었지만 잔잔한 그 울림이 나를 비롯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듯 했다.

 그녀의 울음을 지켜보며 자신을 잃고 산다는 그 문제가 비단 그녀의 문제만은 아님을 알았고, 그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살포시 포개보았다. 타인의 슬픔을 통해 비로소 내 슬픔도 함께 들여다보았고 우리는 그 순간 슬픔이라는 감정의 연결고리로 하나로 묶이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들려온 나는 문제없어 노랫자락하나로 감정의 응어리를 함께 풀어갔다. 생면부지의 누군가들과 그 순간 공감이라는 감정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수업의 말미엔 수업 전과는 다른 공기가 흘렀다. 마음을 녹이는 훈훈한 온기가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그림책 테라피 수업"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만날 인연이었던 것 같다. 엄마로서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 우리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며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못한 꽁꽁 숨겨둔 내 슬픔과 두려움을 풀어놓을테니 내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그리고 공감해달라고..
 각자의 사연을 마음에 품고 저마다의 길에 서있던 우리가 그림책 테라피 수업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그런 같은 감정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물길을 따라 이곳에서 만난 것이 아닐까?

 앞으로 그림책 수업에 기대어 공감의 연대를 맺은 사람들에게 마음껏 내 아픔을 드러내며 함께 치유해 갈생각을 하니 든든한 방패막이 생긴 느낌이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양손 불끈 쥐고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내 두려움의 무게가 한결 덜어져 비로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라 밎는다.

 이번 수업을 계기로 그 용기의 크기만큼 치유의 힘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고 ,그 이야기를 매개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기댐받으며 각박한 세상에 단단히 발딛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한시간 반여의 수업이 끝난 뒤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개운해져있다. 우리는 여기서 받은 공감과 지지의 힘으로 또 한 주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힘듬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음 수업에는 어떤 선물 같은 그림책이 우리 마음에 다가올까?기분좋은 기대감을 마음에 품은 채 내일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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