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_개도 배운다.

배우고 성장하는 개 이야기

검토 완료

이선민(2sanman2)등록 2023.07.06 12:45
복주 어려서 반려견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토라는 백구가 있었다. 그 개는 다른 개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홀로 수돗가 물그릇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목을 축이러 물 마시러 오는 개들한테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며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다. 이런 토토의 행동은 마치 막다른 골목길에서 주먹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통행료를 뜯어가는 깡패처럼 보였다.

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수돗가에 가 토토가 지키고 있던 물그릇을 냅다 발로 차버렸다. 그러자 토토와 토토의 보호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후 나는 수돗가에 토토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토토 때문에 꼬리를 말고 한쪽 구석에서 풀 죽어 웅크리고 있던 우리 복주와 친구들은 토토가 수돗가를 지키기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신나게 뛰어놀았다. 예상치 못한 상대에게 분위기를 역전당한 토토와 토토보호자는 그 후 아무도 모르게 운동장을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다. 우리 복주가 글쎄 이날 이후로 토토가 하던 짓을 고대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설마 아니겠지 했다. 한데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복주 하는 짓이 영락없는 토토였다. 그뿐 아니었다 우리 복주는 토토의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어 다른 개들들 괴롭혔다. 토토처럼 대놓고 수돗가를 지키는 게 아니라 운동장 한 곳을 맡아 앞발로 두어 번 긁어 은근슬쩍 맡아 놓고 그 자리를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시비를 거는 식이었다.

처음엔 나도 안 믿었다. 내 개가 이런 짓을 "배워서"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아니다. 개들도 서로 보고 배운다. 사실 이 일이 아주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누차 얘기했듯 개들의 인지 능력은 인간 아기 두 살과 같다고 하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하는 게 노상 남 따라 하는 거니까.

그뿐 아니다. 우리 개들은 둘 다 암컷이다. 종에 상관없이 보통의 암컷들은 대부분 앉아서 소변을 본다. 하지만 우리 개들은 아니다. 수컷처럼 한쪽 다리를 야무지게 들고 싼다. 처음엔 우리 개들도 앉아서 오줌을 쌌다. 이 역시 어디서 배워 온 것이다. 물론 우리 개들이 다른 개들에 비해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나다던가 개들의 성평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이러는지도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 개들은 일반적인 다른 암컷들과 다르게 다리를 힘껏 올려 멋지게 오줌을 갈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나는 개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행동을 모방하고 학습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개가 학습한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이 정도로 열심히 배운다는 걸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한테 '앉아 '라고 하면 개가 앉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포천에서 구급차를 부른 적 있다. 당시 복강(배) 안에 염증이 있어 복통으로 허리를 펼 수도 없고 스스로 한 발짝도 뗄 수 없어 할 수 없이 구급차를 불렀는데

오밤중에 난데없이 구급대원들이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자 당황한 우리 개들이 그들을 향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한 구급대원이 우리 개들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 앉아 ' ' 앉아 '라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개들은 앉기는커녕 목이 터져라 짖어댔다. 당연하다. 개들에게는 지금 자신들의 무리 중 하나가 그것도 가장 힘이 세고 큰 놈을 왠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나타나 데리고 갔으니까 누가 앉으란다고 해서 앉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그가 대단히 훌륭한 간식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 일이 있고부터 우리 개들은 이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을 보면 무조건 경계한다.
      <참고로 이런 개들의 학습능력은 브라이언헤어와 바네사우즈의 공저 "개는 천재다"라는 책에 매우 자세하게 나와있다. > "과학자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고유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연구했다. 인간 유아는 생후 9개월이 되면 엄마가 보고 있는 것, 엄마가 만지고 있는 것, 엄마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핀다. 엄마의 의사소통적 의도(communicative intention)를 이해하고 엄마의 마음을 읽는다(이를 '9개월 혁명'이라 부른다).

책에서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는 실험을 통해 침팬지도 인간과 하지 못하는 소통을 개는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예컨대 두 개의 용기 한 곳에 음식을 감추고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눈짓이나 손짓으로 단서를 주고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들이 인간과의 소통능력에 대단히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https://m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584240623 ​(참조)

복주를 훈련시킬 때 나 역시 이들이 말하는 의사소통적 의도를 도입했다. 복주가 앞발을 들어 허공에 휘휘 저으면 복주가 원하는 모든 걸 주며 명령어로 '주세요'를 입력했다. 그러자 복주는 이 마법의  "주세요"를 요긴하게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식으로 사료를 받아먹었고 그 후로는 간식을 그다음엔 산책까지 나갔다. 그러자 복주는 신나서 종일 "주세요 "를 남발했다.

하지만 함께 사는 해탈이의 경우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 가르친 건지 녀석의 성격이 급해서 그런 건지 해탈이는 내 손과 내 눈의 방향을 대부분 무시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 사이에 문제 될 일은 전혀 없다. 해탈이 와 나 사이엔 복주라는 놀라운 통역자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탈이도 나름 학습한다. 다만 해탈이가 배우는 건 복주와 내용이 다르다. 예컨대 마당에서 놀다 잡히면 방에 들어와야 된다는 것, 사료를 안 먹고 버티면 사료 위에 닭고기나 소고기 토핑이 올라온 다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역시 배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개들과 나는 이런 식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소통한다.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지만 만족할만한 교감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들은 내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눈으로 말하고 나는 들어주거나 무시한다. 이렇게 개들과 함께 산지 햇수로 3년이 지니자 나는 얼추 우리 개들의 얼굴과 몸짓을 보면 개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도 안다. 이건 마치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몸짓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못 하는 아이의 감정은 그 아이를 가장 오래 지켜본 양육자만 알 수 있다. 아이들의 행동엔 일종의 패턴이 있고 패턴을 파악하면 아이의 욕구를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어느 하루에 갑자기 되지 않는다. 또 할머니들처럼 살면서 많은 아이를 본 사람들은 태어나 처음 아이를 보는 사람보다 아이들의 별거 아닌 울음 속에서도 훨씬 많은 정보를 읽는다. 개의 언어를 읽는 방법도 형식은 비슷하다.

그 때문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남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개 돼지'라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에게 욕 하는 걸 보면 불편하다. 돼지야 모르지만 개를 키우고 보니 개는 그런 식의 비유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개들은 인내심이 강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해마다 배우고 성장한다. 때로는 개들이 인간보다 현명하다. 그중 하나는 사람과 다르게 개들은 절대로 위험감수를 하지 않는다. 개들은 폭우가 예상되는 장마철에 계곡옆에 텐트를 치지 않는다. 아니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되려 외출을 자제한다. 또 개들은 어둠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운전하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오토바이를 봤다. 그는 빨리 달렸고 바뀌는 신호를 보고 급 브레이크를 잡았다.

아마 그에게 누군가 빨리 오라고 했으리라. 그때 생각했다. 어쩌면 어떤 게 중요한지 모르고 사는 우리는(sapiens) 개들보다 영리하지 못할 수 있다고, 현생 인류는 그저 운이 좋아 쪽수로 밀어붙인 하나의 종(Device) 일 뿐이라고, 만약 개들이 우리만큼 많이 번식한다면 우리는 전부 나무 위로 올라가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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