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하면 안 되는 업무 ①

젊은 교사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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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kisone615)등록 2023.07.20 13:13
스물다섯의 젊은 교사가 자기 교실에서 목을 매 죽었다. 보호자의 민원에 시달렸다, 학폭 업무를 맡았다는 말도 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탈탈 털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교권보호위원회 업무를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들은 뉴스는 슬픔과 분노 그 자체였다. 23년차 교사에게도 교권이나 학폭 업무는 고되다.

학교 업무들 중 가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영역의 업무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문서와 공문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많은 법률과 매뉴얼을 살피며 긴장해야 한다. 거기에 관련자들에게 연락하고 통보하고 조사하는 일까지 겸하게 되니, 과정에서의 별다른 사고 없이 일만 처리하는 것도 상식을 넘는 업무량이다. 학폭이 일년에 몇건씩 열리게 되니, 학폭 실무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업무가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학폭 업무는 대개 새로 전입 온 교사들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의 인사내규 상, 기존의 멤버들에게 점수가 누적되어 학교 근무가 오랠수록 학년이나 업무 선택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 구성원들의 배려나 관대함이 부족하거나 공동체성이 낮은 경우라면 신규 교사가 업무를 담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학폭이나 교권 업무는 일반 교사에게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자들을 면담하고, 온갖 폭력적 언행에 노출된 응대를 하면서, 동시에 법제처를 들락거리며 법률과 매뉴얼을 수시로 정독해가며 생경한 어휘로 가득한 공문과 문서를 생산하는 일을 제한된 시간 내에, 주어진 수업과 생활지도를 병행하면서 해내도록 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폭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남들이 출근하기 한두시간 전에 출근하거나 초과근무를 하기 일쑤다. 경력 있는 사람들도 실수할까봐 겁나고, 최소한 너댓명의 관련자들을 만나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경찰관' 역할을 해야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다. 업무의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폭언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아무 얘기'를, 심지어 '공감하며' 들어줘야 하는 감정 노동을 강요 받으면서도, 수업은 수업대로 다 해야하고, '법률'로 정해진 처리 기한도 칼같이 지켜야 하는 살인적 노동에 내몰린다.

신규 교사에게 이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비논리와 비상식을 넘은 범죄행위에 가깝다. 이런 일들은 학교의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교장, 교감에게 부과되어야 한다. 그들의 연륜과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수없이 해왔을 행정업무 경력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영역이며, 일반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지도라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학폭법도 멍청한 구석이 천지이고, 요즘애들이나 보호자들이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법을 바꾸고, 척박한 사회를 나아지게 해야하는 멀고 먼 이야기이니, 지금 당장 학교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어떤 조처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뭔가를 바꿔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기득권 교사가 되어 접한 젊은 교사의 비보에, 이 바닥에서 살아 온 경력이 부끄럽고 참담했다. 비통하고 미안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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