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대립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세계 패권을 두고 전방위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미중경쟁, 그리고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들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외부적 요소 때문에 적어도 일본 정부는 웃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이 같은 외부적 위협이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오랜 숙원과도 같았던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해군기지 현황 ⓒ Geopolitical Futures
위 그림은 동아시아를 포함해 아시아 지역의 해역에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해군 기지 현황을 보여준다. 일본의 오키나와와 같이 전통적으로 미군기지가 위치한 곳도 있지만, 미국은 다양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으로 그들의 기지를 미군이 사용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국의 U-Tapao 기지는 미국이 임대한 것이며, 필리핀의 경우에는 상호 군사협력을 체결해 미군이 돌아가면서 필리핀의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위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 인도 등의 국가들과 협력해 중국이 해양으로 세력 확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노력은 반대로 중국이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부상은 소련의 붕괴 이후 30여 년 동안 미국이 지키고 있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의 맹주는 일본이었으나, 이제 일본은 중국을 감당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일본은 지난 2010년 경제 규모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더니 그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고사하고 이제는 미국도 혼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버거워 보인다. 이러한 세력균형의 변화, 변화에 따른 힘의 공백을 일본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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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우리나라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일본의 요시다 통합막료장의 Nikkei Asia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발언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본의 안보를 담보하기에 현재 일본의 국방력은 부족하다.
둘째, 현재 국제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중대한 안보위기는 특정 국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셋째, 일본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안보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발언을 분석해 보면, 일본은 미국과 중국처럼 세계 모든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향력의 한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국한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대한 안보위기는 이전처럼 미국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호주, 인도(그리고 가능하다면 한국도)와 같은 국가들을 끌어 들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본의 국방력이 부족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군대가 단순히 방어만 하는 자위대가 아닌 공격도 가능한 '보통군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국방비 증대 계획이다. 얼마 전 일본 국방장관은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군함과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위해 2023년 대비 무려 12%가 증가한 국방비 증액을 요청했다. 12%라는 수치도 놀랍지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이미 일본은 2022년 전년대비 5.9%가 증가한 460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했다. 이 규모는 일본의 GDP 대비 1.1%를 차지하는데, 이는 일본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변화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로 미국과의 안보조약에 의거해 앞서 이야기했듯이 방어만을 위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본은 1960년대 이후로 줄곧 GDP 대비 국방비를 1% 이내로 지출하였는데, 2022년 처음으로 1%을 돌파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국방부가 2024년에는 전년대비 무려 12%의 국방비 증액을 요청한 것은 2022년 12월 일본이 발표한 '신안보전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전략에서 일본은 중국, 북한, 러시아와 같은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군사적 역량을 보유하겠다고 분명하게 천명했다. 이는 일본이 지난 아베 총리 이후로 국방력 증대에 집중해 방어만이 아닌 공격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겠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의 이 같은 변화는 혼자서 중국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기질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계산은 알겠지만, 그렇다면 과연 일본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헌법 개정이 필요한 중대사안으로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일본 게이오대 쓰루오카 안보 전문가에 따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일본 여론이 일본의 국방력 증대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오랜 기간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능력의 강화를 일본의 안보위협으로 느끼고 일본 또한 국방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 또한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더욱 지지세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외부의 위협으로 인해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랜 숙원이었던 보통국가화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지금 국제정치는 변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의 힘의 균형이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변화를 기회로 인식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국방력 강화를,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승인 하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적인 안보회의체인 쿼드이며, 지난달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바, 중국을 견제하는 전선에 한국을 제도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 일본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하고 실질적인 변화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속되고 격화되는 불안한 대외 안보정세를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정부는 어떠한 전략과 대응을 보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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