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몰이해와 모욕적인 시선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나 자신을 보는 나의 못마땅한 시선과 타인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보들레르는 "타인의 시선이 독립적 자아에게 던지는 폭군적 위협"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밤에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보는 것이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보는 것이 나의 정신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감각기관 중 시각이 가장 많은 정보를 나에게 실어다준다. 또 시선에는 감정, 생각, 취향 등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눈이 마음의 창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말 안 해도 통하는 사이에는 말 대신 시선이 많은 것을 읽어낼 것이다. 보들레르는 여러 번 '인간의 얼굴의 횡포'를 불평했다. 또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얼굴보다 더한 유혹은 없다"고 했다. 폭력적이면서도 달콤할 수 있는 동일한 얼굴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는 것인가. 그러나 보들레르는 여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야만적인 여인과 사랑스러운 애인>라는 시에서 그는 여성이 무자비하게 자신을 피곤하게 한다고 불평한다. 여성의 한숨은 늙은 거지 할머니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그런 과장된 몸짓으로 사랑을 갈구한다고 표현했다. 여성의 의존성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근대 이후 사회에 진출하고 참여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독립적인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관계 지향적이고 섬세하다. 어느 시대나 가정을 무론하고 희생과 봉사와 헌신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위대함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늘 회자되어 오지 않는가. 그러나 보들레르라고 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철저히 외면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머리카락 속에 반구>라는 시를 읽으면 여성의 향기 나는 머리카락 속엔 추억들이 맺혀 있고 돛과 돛대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바다로 시인을 데려가준다. 머리카락 속 바다, 머리카락 속 어둠에서 보들레르는 열대 지방 무한한 하늘의 빛을 바라본다. 가을은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우울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보들레르는 다른 사람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군중과 쉽게 결합할 수 있는 시인은 기쁨에 사로잡힌다. 모든 직업, 즐거움, 고통을 두루 탐색하고 자신의 것으로 꼭꼭 씹어 삼킨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벗어나 도처에 포진한 집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삼을 수 있는 보들레르는 삶을 끔찍이 사랑하는 프랑스인이다. 물론 늘 성공적일 수는 없다. 시인은 <마음을 털어놓고> 시에서 "사랑에서나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나 진정한 이해란 오해의 결과일 뿐이다"라고 한탄한다. 때로는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포기해야만 했다.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고,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보들레르도 "자신의 고독을 채울 줄 모르는 자는 분주한 군중 속에서 홀로 존재할 줄도 모른다"라고 <마음을 털어놓고> 시를 통해 고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자칫 허무해지기 쉬운 가을이지만 허무함 속에서 오히려 영원한 시간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건 인간의 숙명이지만 무한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와 집념을 가졌던 보들레르처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가을에 만나는 시집 #산문시 #혼자 또 함께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