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무용가가 우주 같은 공간에서 우아하게 춤을 춘다. 그 무용가가 커다란 TV 모니터로 변신한다. 예술에 대한 나의 호감과 사랑이 상품의 이미지로 옮겨간다. 나는 그 광고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광고에 대한 경계심이 생긴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사게끔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메시지를 내게 반복적으로 전하는 것 같다. '나(물건)를 사랑하세요. 나는 예술적인 물건이에요. 나와의 관계는 안전하고 확고해요. 사람은 당신을 실망시켜도 나는 당신을 만족시킬 거예요. 나를 믿어요.' 그런데 이 예술적 상품이 더 진화해 예술적인 인간, 아티스트의 지위를 누린다. 젊은 사람들은 덜 복잡하고 덜 까다롭고 감정 기복도 없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생성형 AI를 사랑한다.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사랑받는 것과 비슷하다. 가상인간 한유아는 21살이고 취미는 독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이다. 유명한 유튜버이자 음원을 발매한 가수, 공동 저자로 <다정한 비인간>을 출간한 작가, 저서에 본인의 그림을 삽화로 수십 장 넣은 화가이다. 광고는 종교성을 상품의 이미지로 차용하기도 한다. 광고의 술병들은 보석이나 성물처럼 전시되는 것을 많이 봤을 것이다. 고귀한 술병을 소유하면 당신의 삶이 고귀해진다고 설득하는 것이 아닐까. 광고는 소비자의 정서적 반응을 고려해 성스러운 상징을 사용한다. 닐 포스트먼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에게서 가장 숭고한 이미지를 강탈해가는 문화적 강간이다. 상품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소비량도 그에 맞춰 늘려야 했다. 상품만 대량 생산이 아니라 소비 욕구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심리학 연구와 정서적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매일 같이 광고를 수십년 접하게 된 우리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냉소주의는 광고의 가장 악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과대광고에 노출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품들에 대한 실망이 누적되면 냉소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어린이들조차 광고에 너무 노출되면 냉소주의에 빠질 수 있다. 광고의 폭력성도 문제이다. 조너선 디에 의하면 광고의 진정한 폭력은 단어를 어떤 의미로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어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어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말에 기대지 않고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은 사회 결속에 필요한 접착제가 없는 셈. 신뢰할 만한 의사소통이 없는 사회는 교감도, 공동체도 없다. 대중으로부터 점점 고립되는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리처드 폴레이 요즘에는 조깅 등 온갖 사소한 행동이나 습관에 중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심각한 중독이 가져오는 비참한 결과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 광고를 통해 중독을 경험하지 않기란 어렵다. 대개 사소하게 취급하지만 음식 중독은 심각한 문제다. 폭식하거나 충동적으로 먹는 사람들에게 음식은 그들의 정신과 삶에 알코올이나 마약과 똑같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경계심을 갖지 않고 이 정도쯤이야 하고 허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여기에도 해당된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부정적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음식 중독은 다이어트 중독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운동 중독으로 갈 수도 있다. 날씬한 것이 심장에는 좋지만 다이어트는 누구에게나 해롭다.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의 95%는 5년 후에 다이어트를 하기 전보다 더 뚱뚱해진다고 한다. 모든 중독에는 현실 부정이 관련돼 있다. 중독돼 있으면서도 중독성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중독은 특히 여성들이 평등을 추구하고 힘을 키우는 것을 방해한다. 중독은 절망감을 유보하고 절망감을 에너지로 쓰지 못하게 만든다. 중독 치료는 현실 부정을 깨뜨리고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해지도록 한다. 인식 능력과 자부심이 올라간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과 삶의 에너지를 바라게 된다. 치료 과정에서 중독자들은 중독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모든 것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독이 그들에게서 탈취해간 것들을 찾게 된다. 광고는 판타지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변화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내게 닥칠 것만 같다. 즉각적인 변화를 믿는 것은 중독의 특성이다. 대부분 상품 광고를 할 때 삶은 지루하고 불쾌한 것이니 벗어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게 만든다.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로버트 콜스는 허세와 자기도취의 심화, 냉소적인 무관심과 방어 본능, 외모와 섹스에 대한 집착를 중독의 특징으로, 미디어 비평가인 스티븐 스타크는 여기에 도전적이고 적대적인 분노'를 더했다. 중독자들은 자신들을 사춘기 시기인 것처럼 느꼈으며 중독에서 탈출하고자 했을 때 그것은 어른이 되겠다는 결심과 같은 말이었다. 자신이 쓸모없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과 대면하는 것이 괴로운 남성 중독자들에게 허세가 방어 전략이다. 허세는 자기혐오의 감정과 닿아 있다. 중독자는 비중독자보다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치가 낮다고 한다. 이 두 물질은 행복, 슬픔, 즐거움, 의욕을 조절하는데 중독자들이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려면 상황을 굉장히 강렬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중독의 뿌리는 고독이고 슬픔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독자는 중독 물질이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맑은 정신으로는 슬픔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을 술 권하는 사회로 표현하기도 한다. 술자리는 어른이 되는 관문에서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와 같고 사회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술은 완벽한 약물이다. 술은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면서 친밀함의 환상을 준다. 그 환상을 광고가 공격적으로 이용한다. 어쩌면 중독은 영리한 생존 전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오래 전부터 수치심 속에 산다. 학대당한 아이들은 남녀 관계없이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어린이가 학대를 이해하려면 자기가 학대받아 마땅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학대 받은 아이는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수는 없기 때문에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된다. 이런 개인은 자아를 몸에서 이탈한 것처럼 느낀다. 몸이 자신의 존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무수한 물건 중 하나라고 느껴진다. 몸은 진짜 자아의 핵심이 아니라 거짓 자아의 핵심이 된다. 육체에서 이탈한 내면의 진짜 자아는 거짓 자아를 다정하게, 재미있다는 듯, 증오심으로 바라본다-<분열된 자아>, R.D.랭 가짜 자아와 진짜 자아의 간격은 고통을 준다. 중독의 핵심은 소외이기 때문에 중독을 치유하는 힘은 다정한 인간관계가 된다. 광고와 중독은 나르시시트의 길로 이끌기 때문에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결책이다. 작가인 마가렛 불릿-조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두려움이었고 다시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건 사랑이다." 광고가 이끈 중독의 세계에 잠시 도취되었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 그 현실 속에는 두렵고 고통스러운 기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기억들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서로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라고 작가는 권한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진 칼본 #광고와 중독 #광고와 냉소주의 #중독 치료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