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7 15:52최종 업데이트 23.09.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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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무원이 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 3분의 1일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그때 보고 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기록으로 남긴다. '왜 문재인 대통령은 새벽까지 관저에서 보고서와 씨름했나? 왜 그는 말 한마디도 곱씹어 했나? 왜 그는 잘 알지 못하는 교수를 방통위원장에 앉혔나? 왜 그는 임기 내내 일본과 충돌했나?' 이런 물음에 답이 됐으면 한다. [기자말]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2017년 5월 어쩌다 공무원이 돼 청와대에 들어갔다. 2019년 2월 나왔다. "책을 써보라"라는 권유를 받았다. 안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진행형이었다. 정부는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평가는 시작도 안 됐다. 그 시점에서 쓴 글이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랬느니, 저랬느니 써봤자 부질없다고 여겼다.


2022년 문재인 정부가 끝났다. 야당이 집권했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세력이 바뀌면 전임 정부를 부인한다. 지난 정부 일은 옳지 않다고 치부된다. 못마땅해하다가, 지우려고 한다. 소위 '살부(殺父, Patricide) 정치'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평가는 끝났다, 실패였다"라는 견해가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대선은 가채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판 시험에서 무를 수 없는 점수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선거 종류별로 평가 대상이 다르다. 총선은 과거를 평가하고, 대선은 미래를 선택한다. 그간 그래왔다. 대선 후보들은 앞으로 뭘 하겠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다 보니 현 정부에 대해서는 잘못한 일, 나쁜 일 위주로 공방이 진행된다. 가장 종합적 변수인 경제 지표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여권은 방어에 치중한다. 잘한 점을 내세웠다가는 역풍을 맞는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는데 딴소리한다'라고 비판받는다. 역대 모든 선거에서 그랬다. 여당 후보도, 현직 대통령을 마냥 옹호하지 않는다. 선거에 유리하지 않다. 정부에 대한 본격 평가는 선거 포연(砲煙)이 잦아든 한참 뒤에나 시작된다.

김영삼 정부는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다. 15대 대선과 정권 교체 직후 측근 비리와 외환위기 등 실정만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한국 현대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공을 세웠다. 군정 종식, 금융실명제 실시, 평화적 정권 교체, 하나회 척결 등이다.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의 것

참여정부만큼 가채점과 본 채점 점수가 다른 정부도 드물다. 정권 교체 직후 모든 걸 부정당했다.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정부가 했던 정책만 빼고 뭐든 다 괜찮다). 같은 당에서도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이들이 있었다.

15년이 흘렀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굽히지 않고 싸웠다는 점은 여든 야든 부인하지 않는다. 권위주의 타파, 권력기관 개편, 국민 참여 증대도 업적으로 꼽힌다. 정치적 반대파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과거 그토록 물어뜯던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설파하는 장면을 목도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본 채점은 가채점과 비슷할 수도, 180도 다를 수도 있다. 다른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책 진단과 분석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공정한 잣대와 실력을 겸비한 분들 몫이다. 시야가 하루나 한 달 단위가 아니라 몇 년, 한 세대쯤 되는 분들 말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도 조밀한 평가가 시작되는 즈음이다. 이맘때 내 경험 몇 조각을 내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이 연재를 쓴 계기다.

대통령 뜻은 말과 글로 전달된다. 토론을 거쳐 정책으로 수립해 시행한다. 홍보 기획비서관 때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 회의에 대부분 참석했다. 연설 기획비서관 때는 여기에 더해 아침마다 열린 티타임에서 대통령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대통령 말과 글이 어떻게 국정에 반영됐는지 남보다는 조금 더 접한 셈이다.

연재 '문재인의 말과 글'은 누군가를 찬양하는 위인전이나, 삶을 반추하는 평전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이젠 관광지처럼 된 청와대에서 보낸 20개월의 기록이다. 넓게 보면 인물 관찰기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말과 글을 담았다. 국정 기록의 일부다. 그래도 전체 그림을 조망하기에 약간의 도움은 될 듯하다.

빛 샐 틈 없이 객관적으로 썼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내가 비서로서 보좌한 인물을 다룬 글이다. 감정 일체를 배제한 채 그를 연필깎이나 커피잔처럼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내 한계로 치자.

문 대통령을 거론하는 일이 많다면
 

2022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인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도보로 퇴근을 한 뒤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희훈


혹자는 문재인 참모들이 왜 반성하지 않느냐고 질타한다. '뻔뻔스럽다'라고도 한다.

나는 반성한다. 영어 가정법 과거분사 표현인데, 그 자리에 있을 때 더 잘해야 했다. 더 잘하지 못했다. 내 몫뿐만 아니라, 전체 정부의 일부분으로서도 반성하고 있다. 다만, '네 죄를 고하라'거나 '문 대통령을 비난하라'라는 식의 요구는 사양하겠다. 십자가 밟기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요구할 생각도, 강요당할 생각도 없다. 

정치에는 뉴턴의 운동 제3 법칙이 적용된다.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히고 싶어 했다. 그의 뜻대로 됐다면 현 정부가 잘한다고 봐야 한다.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맞아 함포고복(含哺鼓腹)한다면 흘러간 대통령이 무에 상관이겠나. 

문 대통령을 거론하는 일이 많다면 그 반대다. '이게 모두 전 정부 탓'이라거나 '당신이 정권을 넘겨줘 이렇게 됐잖소'라는 비판도, '당신이 그립다'라는 목소리도 같은 상황에서 비롯된다. 작용과 반작용이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개인, 시민 문재인'보다는 '헌법기관 대통령 문재인'에 주목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연재도 '대통령'에 주목한다.

이 글에서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으로 표기했다. 제20대 대통령을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때 일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 문 전 대통령, 문재인 당시 대통령, 문 당시 대통령으로 쓰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읽는데 걸리적거린다. 다른 이들도 대체로 그때 현직으로 표시했다. 독자 제현의 양해를 구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최우규는 24년 동안 한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홍보기획비서관, 연설기획비서관 일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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