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7 15:52최종 업데이트 23.09.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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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과 오찬 뒤 청와대 소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한 때 청와대 비서관이었다고 말하면 첫 번째로 받는 질문이다. 내 답은 대체로 이렇다.

"20개월 모셨을 뿐이고, 바로 옆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대통령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요즘 친구들 말로 '찐으로' 일합니다."


대부분 "에이"하고 실망감을 드러낸다. 뭔가 뒷이야기를 기대했을 터. 그런데, 거기까지다. 문 대통령은 남을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더 가까이서 보좌한 이들은 생각이 다르려나.

2017년 청와대가 꾸려지고 조금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제1부속실에서 연락이 왔다.

"비서관님, X일 점심 약속이 있어요?"
"없는데요."
"그날 점심은 비워두세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제1부속실은 대통령을 곁에서, 물리적으로 보좌하는 곳이다. 보나 마나 대통령과 점심 식사다. 당일 몇몇 비서관이 모였다. 문 대통령은 일정이 없으면 집무실 옆 회의실에서 점심을 들었다.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리는 그곳이다.

근무에 어려움은 없느냐는 둥 소소한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내 예전 버릇이 나왔다. 기자는 질문한다.

"대통령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텐데 어떻게 푸시나요?"

다른 비서관들도 궁금했나 보다. 다들 대통령 입을 쳐다봤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참지요."

재미없는 답변. 다들 소리 내지 않고 입매로만 웃었다.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또 물었다.

"참아도 스트레스가 안 풀리면, 어떻게 하세요?"

문 대통령은 이번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도 참지요."

이번엔 살짝 웃음소리가 났다. 문 대통령은 여성 비서관들에게는 일과 가정 양립 문제를 물었다. 식사가 끝나갔다. 다시 물었다.

"대통령님, 그래도 스트레스가 남으면요?"

문 대통령은 이번엔 나를 잠시 쳐다봤다. 지청구라도 들으려나?

"뭐…."

답이 나오려나 보다. 술, 등산, 독서, 수다?

"참지요."

재미없는 답변. 거듭된 질문에도 같은 답을 줬다. 문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참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술을 마신다. 등산과 독서는 마니아 수준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양껏 해보지 못할 게 뻔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는 스트레스 해소 대안을 찾지 못한 듯했다.

5년 뒤 문 대통령은 임기를 마쳤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로 갔다. 2023년 1월 중순 인사차 사저를 찾았다.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시절을 회고하다가 관저에 일감을 가져갔던 이야기가 나왔다. 일에 시달리던 때였다.

"저 양반이 (관저에서) 가끔 와인이나 한잔하지, 술도 안 마셨어요. 다음날 일정 있으면 와인도 안 하고요."

최종 책임은 제가 집니다
 

2020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청와대


'고구마 화법'. 문재인 대통령에게 쏟아진 지적이다. 정치인으로서는 장점보다 단점으로 부각된다. '신중하고 처신이 무겁다'보다 '느리고 답답하다'로 받아들여진다. 일과 삶의 리듬이 과거보다 급해진 요즘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원시원하게 외치는 정치인이 돋보인다. 제기된 이슈에는 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돌아본다. 주의·주장이 선명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내세울 주장이 생겨도, 자신을 향한 부정적 의제가 제기돼도 재빨리 대응하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는 답을 묵히는 듯했다. 상대가 지칠 때쯤 반응하는 때도 있었다.

2016년 12월 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김어준씨가 "문재인은 느리고 모호하고 답답하다"라며 "문재인은 고구마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장점으로 치환하려고 했다. 그는 "나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한다. 특히 당하고 보조를 맞출 필요도 있고. 그만큼 책임이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라고 덧붙였다. 당 대표를 지냈던 그다. 답변은 개인이 아닌, 당과 같은 궤여야 한다는 뜻이다.

고구마 같은 화법은 대통령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 말마따나 무거운 책임 때문이다. '결정은 신중하게 한다. 말을 했으면 책임을 진다. 약속은 지킨다'.

문 대통령은 아침에 눈이 충혈돼 출근한 적이 많았다. 새벽까지 보고서를 읽은 날이다. 사람 능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시간, 체력, 정신력을 배분해야 한다. 참모들은 대통령이 밤마다 서류에 매달리는 걸 걱정했다. 한번은 문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통령님, 관저에서 밤새 보고서를 읽으신다던데…."

문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골백번 들은 듯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는 투로 말했다.

"저는 마지막 결정을 합니다. 여러분이 결정한 건 다른 사람이 바꿀 수 있지요. 수석(비서관)이나 장관이 한 것은 제가 바꿀 수 있고요. 그런데 제 결정은 그렇게 못합니다. 대통령이 한 결정은 바꿀 수 없어요. 돌이키기 힘듭니다. 그러니 결정하는 게 힘들지요."

대통령은 행정에 관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식언은 금물이다. 그러니 노심초사하고,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읽게 된다는 것이다.

책임과 권한은 한 동전의 양면이다. 무게가 같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사연을 전해 들으면서 느낀 바다.

고려대 교수였던 장하성 실장은 18대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도왔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측근을 학교 연구실에까지 보내 설득했다. 장 교수는 '도의가 아니다'라고 거부했다.

대선 승리 이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장 교수 영입을 타진했다. 장하성 실장은 나중에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정책실장직을 수락하고 난 뒤 대통령과 만나 차를 마셨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대통령이 그러더라고. '대체로 알아서 하시구요, 의견이 다르면 제 의견이 우선입니다'라고 말이야."

문 대통령은 최종 결정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고 못 박았다. 이 말이 동전 앞면이라면, 뒷면은 이렇다. '최종 책임은 제가 집니다.' 사람이 좋다고 좋은 리더가 되지 않는다. 선을 명확하게 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권한과 책임이 제대로 행사된다. 조직도 제대로 돌아가고.

그가 한 말은 관철된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에 공개되는 외부 행사를 부담스러워했다. 2019년 1월 티타임에서 그 이유를 듣게 됐다. 당시 새해 부처 업무보고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문 대통령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뭔가 탐탁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업무보고를 줄일까요?"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장관 업무보고가 부담되지는 않는다. 제일 큰 부담은 카메라 앞에 서는 (다른) 행사"라고 말했다.

의아했다. 3·1절, 8·15, 정상회담, 유엔 연설 등 대형 행사가 아니라 소소한 행사에 가는 게 부담이라니. 보고 받고 덕담하고 사진 촬영에 응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소규모 행사를 이렇게 준비한다고 말했다.

"가서 (행사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다. 메시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많은 부담이 간다. 신동호 (연설) 비서관이 (써준 인사말과 내 말이)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지만 다소간 손을 봐야 한다. (행사) 콘셉트를 잡으면 전반을 봐야 한다. (보고서) 글을 뒷받침하는 여러 자료를 보고. 내 평소에 아는 분야도 있지만, 모르는 분야는 지식도 없고 자료로 공부해야 한다.

역대 정부에서 이렇게 많이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 참여가 필요한 부분, 돌파해야 하는 것도 있다. 국민께 직접 호소하고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려고 참모들도 자꾸 대통령이 찾아가는 현장을 만들려고 한다. 그게 장기적으로 옳은가. 대통령만 보이고 '청와대 정부'라는 말 들리는데, 행사를 지금처럼 가야 하는지 길게(봤을 때) 의문이다. 갑자기 줄일 수는 없지만."


충혈된 눈으로 출근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국정 과제가 아닌 잠깐 만나는 행사, 사진 찍고 악수하는 행사, 큰 행사 사이에 낀 작은 일정까지도 내용을 세세하게 파악하고서야 참석했다. 그런 자리에서 할 이야기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부처나 기관, 청와대 담당자는 대통령 발언을 메모하고 기억한다. 고치거나 개선할 내용, 폐기할 점을 찾아내 후속 작업을 한다. 대통령이 따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오너나 기관장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어수선해?', '저 사람 아직도 저기 있느냐?'. 그 뒤에 야단법석이 난다. 소식은 금세 전체에 퍼진다. 지나가는 투 말이라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발설한 말은 정부 전체에 인장(印章)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발언에 스스로를 맸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말은 관철된다'. 말을 뒤집게 됐을 때 전후 사정을 설명해 양해를 구했다. 필요하면 사과도 했다.

나는 2003년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대면했다. 그가 참여정부 민정수석 비서관 때였다. 난 청와대를 들락거리는 기자였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국내에 남은 기자들에게 수석비서관들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샀다. 민정수석이 밥을 산다니 기자들 대부분 점심 자리에 갔다. 나는 문 수석 앞 왼쪽 45도쯤에 앉았다. 제대 군인처럼 깎은 그의 머리에는 새치가 살짝 섞여 있었다.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점심에 술을 꽤 마셨다. 잘나가는 고위직들은 '양폭'을 마셨다. 17년산 스카치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양주 폭탄주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 친구"라고 한 청와대 수석, 그것도 권력기관을 담당하는 민정수석. 고위직 중의 고위직이다. 그런 그가 내는 점심이었다. '소폭'이 나왔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주 폭탄주.

한 기자가 물었다.

"수석님은 양폭 안 하십니까?"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다.

"예, 전 안 합니다."

그게 다였다. 이유도 없었다. 물어본 사람이 머쓱해졌다. 나중에 청와대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노동, 인권 분야에서 주로 활동한 변호사잖아. 부산, 경남 쪽 시국사건을 도맡다시피 하고. 양주는 자기에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듯하던데. '나는 소주야', 뭐 그런 식이지."

숙명과 소명 의식의 접점
 

2009년 5월 23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공식 발표하기 앞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 연합뉴스


또 다른 자리에서 문재인 수석에게 총선 출마 의향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전 정치 안 합니다."
"지금 청와대에 계신 데, 그게 정치 아닙니까?"
"청와대에 두 종류의 일이 있는데, 하나는 정치고, 하나는 행정입니다. 전 행정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라고 생각 안 합니다."


아, 정치를 싫어하나, 아니면 정치는 못 한다고 생각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앞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의한 청와대 민정수석을 수락하면서 2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치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생각대로만 되지 않는다. 나중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다. 정치 안 한다더니, 정치에 '입문 당했다'. 결국 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그도 야인으로 돌아갔다. 오래 가지 못했다. 2009년 5월 23일 TV를 통해 전 국민이 그의 발표를 들었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오늘 오전 9시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대통령님께서는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기셨습니다."

그 사건과 그 발표가 없었으면 그는 부산에서 변호사 일을 계속했을 수도 있다. 하나,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서거했다. 문 대통령은 그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는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라며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라고 적었다.

여의도로 가서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했다. 2012년 대선에 나서며 그는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이라는 책을 냈다.
 
"이른바 직업 정치에 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렇지만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의 영역도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는데, 꼭 직업 정치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시민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여전히 공유하는 집단이 또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더 이상 시민의 정치는 설 자리가 없고, 권력의 일방통행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결국은 현실 정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0~21쪽)

이 대선에서 그는 패배했고, 권토중래(捲土重來)했다. 2017년 정치 정점인 대통령이 됐다. 정치라는 게 그래서 어렵다. 누구는 아등바등 노력하지만, 발도 못 디딘다. 둘러보면 이런 사람이 대부분이다.

반면 누구는 떠밀리듯 무대 위에 서게 된다. 숙명과 소명 의식의 접점이 생겼을 때, '하필 그렇게 될 때' 등판하게 된다.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문재인 (지은이), 퍼플카우콘텐츠그룹(2012)


문재인의 운명 - 참이 거짓을 이기는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꿈꾼다

문재인 (지은이), 더휴먼(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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