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하는 中央亞 일대일로, 이제 사람까지 수출한다

- 우즈베키스탄에 등장한 '인간' 일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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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림(uyghurshunos)등록 2023.10.02 17:46
필자는 작년 8월 송고한 기사 "탈레반이 중국 코털도 못 건드리는 이유(링크)"에서 그간 중국과 중앙아 국가들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맡았던 위구르족이 사라지고, 투르크 언어·문화에 익숙한 신장 출신 한족들이 전면에 대두되는 현상을 보고한 바 있다. 이번 기사 "확장하는 中央亞 일대일로, 이제 사람까지 수출한다"에선 같은 현상을 보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수십 명 중국인 유학생 동시 입학, 현지 반응 "놀랍다"

최근 사마르칸드주(州)의 지역거점대학인 사마르칸드국립대(Samarqand davlat universiteti)에는 23명의 중국인 유학생이 동시 입학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과거에도 석·박사 혹은 교환학생 등으로 해당 대학을 찾는 유학생들이 있었지만, 그 규모는 국가별로 서너 명 정도라 딱히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9월부로 입학한 23명의 중국인은 모두 4년제 정식 학부(bakalavr) 과정으로 입학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현지에서조차 "중국이 우리보다 교육수준이 높을텐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필자는 지난 5월에도 타슈켄트 국립대에서 우즈베키스탄 법학을 전공하는 두 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중국인이 왜 우즈베키스탄 법을 배웁니까?" 그들은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하는 중국 회사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다고 답했다. 지난달에는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에서 유학 중인 네 명의 한족 대학원생을 만났는데, 이들은 모두 중앙아시아 지리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 조우한 다섯 명의 한족 중앙아 연구자들은 각각 페르가나 지역史, 부하라·사마르칸드 지역史, 중앙아 교통발달史, 중앙아 경제史, 중앙아 외교史 등 그 역할과 전공분야가 지역 및 시대별로 세분화돼 있었다.

 

지난 달 타슈켄트 언어문학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신(??) 박사 중국 신장 출신인 다 박사는 중국인 유학생으론 처음으로 러시아어가 아닌 우즈베크어 논문을 통해 학위심사를 통과했다. 현재 중국에는 상해외국어대, 중앙민족대, 북경외대까지 세 곳의 대학에서 우즈베크어 전공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 AN Podrobno.uz

 

- 위구르 빈 자리에 보따리 푸는 한족들

필자는 지난 7월 타지키스탄 제2의 도시 후잔드에 체류하며 현지연구를 수행했다. 필자가 과거 신장에서 만난 타지크족 유학생들은 모두 후잔드 공자학원 출신이었을 정도로 중앙아에서도 친중파를 다수 배출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거리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필자를 중국인으로 오인해 '니하오'를 외치기 일쑤였다. 동양인을 보면 늘상 '안녕하세요' 혹은 '곤니찌와'로 인사하는 사마르칸트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후잔드 일정 마지막 날에 '아투쉬 시장(Atush bozori)'의 존재를 확인한 필자는 급히 해당 장소로 향했다. 아투쉬라 하면 위구르족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거상(巨商)들을 다수 배출한 신장의 대표 상업도시로, 최초의 투르크-무슬림 군주 사툭 부그라 한이 영면한 성지(聖地)이자, 서양식 축구 같은 서구문물이 처음으로 대중화된 위구르 계몽운동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아투쉬 출신 위구르 상인들이 터를 잡고 장사하는 곳임이 틀림없었다.

 

아투쉬 시장 아투쉬 시장은 후잔드 시외에 위치하며 주로 의복, 커텐, 양탄자 등 직물 상품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하다. ⓒ 송호림

 

이윽고 도착한 아투쉬 시장은 주변에 위치한 사만 시장(Somon bozori)과 견줘도 손색 없는 규모였다. 시장 내부를 둘러보니 어림잡아 최소 200개 이상의 점포가 성업 중이었다. 그런데 위구르 사람의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한 명의 위구르인을 만났는데 그는 스스로를 아투쉬가 아닌 우루무치 출신으로 소개했다.
 
"여기 위구르 사람들이 많다던데요."
"아, 다들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비자가 만료됐거든요"
 
필자가 한국인임을 밝히며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는 대화를 거부하며 시선을 피했다. 이후로 다른 상점을 지날 때마다 점주들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위구르 억양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위구르어로 말을 걸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타지키스탄에도 우즈베크인이 상당수 살기 때문에 그들의 억양과 말투는 위구르인과 구별된다) 그러나 십중팔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휘휘 손을 내젓곤 했다. "난 당신과 할 말이 없소." 그들은 평소 필자가 아는 '낯선 이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위구르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장 입구에서 20년 동안 과일을 팔았다는 타지크족 막수다(Maqsuda) 할머니는 "5년 전만 해도 입구부터 끝까지 위구르 사람들로 꽉 차 있었거든. 그런데 이젠 50명도 채 남지 않았어"라고 귀띔해 주었다.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정식회원국인 타지키스탄 정부가 분리주의 및 테러리즘을 명분으로 현지 위구르족 대다수를 본국으로 추방시킨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아투쉬 출신의 대표적인 거상 무사바요프 형제 1995년 아투쉬 근교의 익삭 마을에 건립된 해당 동상에는 “위구르 근대교육의 아버지(The Founder of Uyghur Modern Education)”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무사바요프 형제는 구식 이슬람 교육을 개선하고자 사재를 출원해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고 오스만 제국에서 교사를 초빙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당 기념물은 위구르족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7년에 철거되고 말았다. ⓒ 송호림

 

  - "신장은 중앙아시아가 아니야!" 

필자는 추석 명절을 맞이해 상술한 다섯 명의 한족 중앙아史 연구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다양한 주제가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섬서성 출신의 박사생이 이렇게 물어 왔다.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큰 도시는 타슈켄트겠지요?" 그래서 필자는 아무렇지 않게 "예전에는 타슈켄트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루무치가 제일 크지 않나요?" 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다섯 명의 연구자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요. 신장은 중국이지 중앙아시아가 아니예요!(你说的是不对。新疆不是中亚, 是中国!)"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
 
필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날이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목전(目前)의 한두 푼이 아쉬운 중앙아 사람들에게 중국은 경계의 대상이 아닌 최고의 파트너이자 귀한 손님으로 비칠 뿐이다. 물론 현지의 호감도는 여전히 중국보다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나, 실질적으로 중앙아와의 인적·물적 교류에서 이득을 보는 쪽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일 수밖에 없다.
 
 

지난 달 유엔총회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 최근 윤석열 정부는 우즈베키스탄과의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을 통해 희소자원의 공급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 척을 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나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만큼이나 그 실익이 불투명한 ‘예산낭비’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우즈베키스탄과의 물적 교류는 중국과 러시아 어느 한쪽을 거치지 않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까닭이다. ⓒ 외교부

 

지난 6월 서안에서 열린 중·우즈베키스탄 정상회의에서 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 발전계획(2023-2027)'을 수립했다. 마치 지난 2019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체결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연상케 한다. 다시 말해,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선 득이 된다면 어느 쪽이든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아프라시얍 벽화 속 고구려 사신도'의 환상에 젖어 우즈베키스탄을 중국에 맞서는 '돌궐 형제' 쯤으로 착각하는 몽상에서 벗어나, 멀디 먼 중앙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한계를 인식하고 국익 우선의 외교정책을 수립할 시점이다.
 
  

지난 5월 중국 서안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순간, 윤석열 정부가 우즈베키스탄과 추진 중인 공급망 확대사업은 불시에 무산될 수 있다. 이미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의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외국 인사들을 여럿 추방한 전력이 있다. 또 한중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중앙아 국가들이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자 중국의 손을 들어줄 것은 자명한 일이다.? ⓒ gazeta.uz

 




 
덧붙이는 글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구르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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