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수'가 먹고 싶다

시장 볼 때 살 물건을 가족끼리 미리 이야기하는 것도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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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rhjeen0112)등록 2023.10.13 08:20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구입한 임연수 ⓒ 이혁진

 
백수가 된 지 제법 오래됐다. 꼬불쳐둔 예전 명함을 찾으려는데 도대체 어디 두었는지 묘연하다. 스스로 퇴출된 것은 아니지만 후일 재기하기 위해 명함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니 참으로 야무졌다.
   
그러나 직장명함 대신 나를 반석 위에 올린 직함은 '전업주부 남편'이다. 이제는 그 위치를 확실히 매김하고 있다. 아내와 가족에게 인정받고 무엇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도 되찾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직장이다.

주부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특기는 음식 만들기와 설거지다. 집안 청소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분야는 아내가 오래 맡아 귀찮해 하는 것들이라 인수인계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아내가 만들어 내는 일부 찬과 국을 제외하고는 각종 찌개는 내가 전담하다시피 한다. 특히 찌개는 재료만 어느 정도 구비되면 30분 이내에 맛있게 만들어 식탁 위에 올릴 자신이 생겼다.  
    
내가 만든 찌개를 아버지와 아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우쭐해진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찾을 때까지 잠시 침울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장 보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내가 즐기는 것 하나가 시장 가는 것이다. 나 스스로 고르는 것은 아직도 두부나 콩나물, 조금 나아가면 계란 정도지만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왠지 소꿉장난하듯 재미있다.

아내와 함께 시장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걸 잊지 않는다. 그때 아내는 보통 "먹고 싶은 맛있는 걸 사 오라" 말한다. 그때마다 재량을 발휘해도 나는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있다.

결국 아내를 위해 사 오는 것은 만두나 순대인데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그럴 수밖에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딱히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내도 시장을 볼 때 무엇을 살지 내게 묻는다. 나는 거의 "그냥 오세요".라고 답한다. 아내 또한 나처럼 헤맬지 모르지만 내 딴엔 아내의 수고를 생각해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내에게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사 오는 것이 하나 있다. 아내가 남대문시장이나 명동으로 진출할 때 젊은 시절 즐겨 먹던 통닭을 사 온다. 이것은 내가 조용히 집을 잘 지킨 대가이기도 하다.  
    
연로한 아버지에게도 시장에서 무엇을 사다 드리면 좋을지 여쭈는 편이다. 아버지는 대부분 잘 다녀오라는 답 외에는 특별히 하시는 말씀이 없다. 내가 불편해할까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는 길에 물었는데 단번에 '임연수'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나는 반가움에 메모지에 임연수를 재빨리 적어두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해답을 얻은 듯 나는 시장을 뒤졌다. 1층 좌판 시장에서 임연수를 숨바꼭질하듯 찾았지만 그 넓은 수산시장에서 흔히 파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참소라 등 생물가게 ⓒ 이혁진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요즘 일본 핵 오염수 배출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에 흔한 호객행위도 거의 사라졌다. 간 김에 참소라와 새우, 낙지까지 한 다발 구입했다.  
   
매일 사러 오고 싶을 정도로 싸고 싱싱한 생선들이 많았다. 생선을 구입한 대금의 약 30%를 환급해 주는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가 상인과 소비자들에게 인기였다.

임연수 맛은 고등어 식감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임연수 찌개와 구이를 자주 해드렸다. 아버지가 임연수를 떠올린 것도 그 옛날 추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업주부 남편들은 시장보기가 가장 쉽다 말할지 모른다. 내 생각은 정반대다. 장 볼 물건만 구입하고 냉장고에 넣을 것을 최소화하는 알뜰 장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장 본 신선한 재료로 바로 조리하는 것도 절약하는 요령이다.  
    
주부가 시장을 볼 때 가족들이 살 물건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도 일종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이는 아무거나 막 쇼핑하는 걸 막아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드실 임연수는 팔뚝만 한 크기의 세 마리가 만 8천이었다. 양이 푸짐해 구이와 찌개로 두 번 해 먹어도 충분하다. 아버지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찬사가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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