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온화하고 밝은 그림, <첫걸음>을 감상하며

-나의 첫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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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화(angelwin33)등록 2023.10.16 15:04

고흐의 <첫걸음>은 그가 권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해(1890)에 그린 그림이다. 자른 귀를 붕대로 감고 그린 고흐의 자화상을 볼 때, 까마귀 떼가 불길하게 겨울 들판에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고흐는 불행한 화가로 기억한다.
 
이 그림은 고흐가 얼마나 행복을 열망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고흐가, 이렇게 밝고 사랑과 희망이 깃든 그림 속 주인공이 얼마나 되고 싶었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즐거운 우리집>을 지은 음악가는 평생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따뜻한 집을 그리워했을 그가 명작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간절한 열망을 이길 수 있는 창작 에너지가 또 있을까.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랑 없이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여자가 없으면 난 얼어붙을 것이다.
 
나의 야망은 사랑에서 나왔고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따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만 내 안에 평온, 순수한 조화, 음악이 존재한다. 신념과 사랑으로 작은 창밖 풍경을 그린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나는 이 그림을 보며 나의 삶에서 첫을 붙일 만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나의 첫 모습을 당연히 나는 알지 못한다. 부모님이 말씀해 주신 적도 없다. 다만 아버지가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인 여주를 떠나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2살인 내가 아버지 무릎 위에서 응애, 응애 하고 울었다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나의 둘째딸의 처음을 기억한다. 첫째 딸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로 낳았기 때문에 첫째 딸의 첫 모습은 여러 사람들을 거친 후에야 내게로 왔었다. 둘째 딸은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로 낳았기 때문에 딸을 뱃속에서 의사가 꺼냈을 때 나는 깨어 있었다. 둘째 딸을 꺼냈을 때 배의 묵직한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둘째 딸의 첫 울음을 기억한다. 둘째 딸의 첫 울음은 야생 짐승의 새끼 울음 같았다. 날카롭고 낯설고 싱싱했다. 한마디로 날것의 울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첫은 소중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첫은 눈처럼 더럽혀지기 쉬워서 더럽혀진 눈에서 처음 눈의 모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첫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 아름다운 기억을 지닌 것만으로 그만큼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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