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연대와 함께한 시민 활동가 대담-"성과도 한계도 우리의 것, 첫 마음으로 새길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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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416act)등록 2023.11.24 15:43
"성과도 한계도 우리의 것, 첫 마음으로 새길을 내자"
[특집] 4.16연대와 함께한 시민 활동가 대담
박희정 
세월호 10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노란리본이 말하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호 참사로부터 그 긴 세월이 흐르고 있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시간은 영겁과도 같고 쏜 화살 같기도 한 이상한 것이었다. 일상의 어떤 부분은 멈춰버렸지만,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의 시간은 미처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아득한 거리가 바로 이 사회에서 피해자가 놓인 현실을 웅변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곁에서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동분서주한 시민들 또한 길고도 짧은 시간을 함께 살아냈다.
세월호 10년을 향해가는 길목. 이제 한 호흡 고르며,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다. 우리는 왜 이 싸움을 시작했을까. 어떤 어려움과 한계에 직면했으며, 무엇을 일궈냈는가. 그 시간을 통과해온 우리는 지금 어떤 몸과 마음으로 여기 서 있는가.
사월십육일의약속 편집위원회는 기억, 약속, 책임을 마음에 품고 투쟁의 장을 지킨 시민들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싸워온 지난 시간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8월 22일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한 대담을 정리해 전한다.
 
대담
정기열|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오혜란| 4.16안산시민연대
유주호| 수원4.16연대
이경숙|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한유미| 대구4.16연대


대담 참여단체 소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2014년 4월 17일, 도봉 주민들이 '실종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창동성당 앞에서 촛불을 들면서 시작됐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돌아왔어야 할 금요일을 실천일로 정해 창동역 광장에서 서명전과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4주기부터 매년 4월을 추모의 달로 선포하고 문화제, 다큐멘터리 상영, 가족 간담회, 리본나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4.16안산시민연대
안산 지역의 56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활동은 물론이고, 지역 특성상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친다. 참사 이후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대구4.16연대
대구 지역 82개 시민사회단체가 대책위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단체회원 중심에서 2019년에 개인회원까지 포함하는 형태로 조직구성을 전환했다. 현재 82개 단체와 200여명의 개인회원이 활동한다. 대구 시내 3곳에서 '약속지킴이'들이 매주 서명전과 피켓팅을 진행하고,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에서는 대구4.16연대 차원에서 서명전을 펼친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2014년 6월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으로 출발했다. 가족 곁에서 힘이 되어 주자는 뜻으로 '시민상주'를 자처했다. 참사 후 3년이 지나면서 장기적 활동을 모색하며 이름을 지금과 같이 바꿨다. 모임 안에서는 모두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상의 실천활동과 더불어 팽목 기억공간을 조성하고 지키는 활동에도 함께한다.
 
수원4.16연대
수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세월호참사 수원시민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3주기 이후 세월호참사에 집중한 활동을 위해 조직구성을 전환했다. 2019년 '수원시 4·16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안전사회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첫 사업으로 수원역 앞에 '4.16 세월호 참사와 304명의 희생자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이 담긴 표지석을 설치했다.
|첫 번째 주제| 4.16운동을 이룬 힘
 
외면할 수 없는 일

이경숙: 세월호참사 때 큰애가 고1이었어요. 가을에 수학여행을 가게 됐는데 너무너무 불안한 거예요. 들떠있는 애를 붙잡고 "무슨 일 생기면 너 절대 친구들 구한다고 구명조끼 벗어주면 안 돼. 너만 생각하고 어른들 말 절대 듣지 마라" 이런 말을 계속하는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저는 참사가 일어나고도 한동안 회사에만 다녔어요. 뒤늦게 세월호참사 문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소식을 찾아봤어요. 차갑고 어두운 배에서 마지막까지 "엄마-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힘들었어요. 내 아이를 지키려면 집회에 나가서 머릿수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광화문에 나가게 됐어요. 그러다 도봉모임을 알게 됐죠. 모임에 가보니까 다 엄마 아빠였어요. 저처럼 죄책감이 크시더라고요. 탈출하면 살 수 있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희생된 거라 더욱 참혹한 마음이지 않았나 싶어요.
 
정기열: 저 역시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예요. 저는 2006년부터 가톨릭 스카우트 지도자로 활동했어요. 청소년들과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어요. 게다가 저희 큰애가 1997년생이거든요. 희생된 아이들과 같은 나이죠. 부모로서의 아픔에도 크게 공감했어요.
 
한유미: 저 또한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큰아이가 고3이고 작은 아이가 고1이었어요. 그 공감의 힘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동력이었죠. 좋은 세상 만들겠다며 스무 살 때부터 시민사회 활동가로 살아왔는데, 세월호참사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더라고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활동가로 제대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서로를 지킨 마음
 
오혜란: 지난 시간을 버티게 해준 힘이라면 첫 번째는 단연코 세월호 가족들이죠. 가족들이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정의롭지 않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꿋꿋하게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저에게 또 하나의 힘은, 함께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엄마들이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며 투쟁의 장으로 뛰쳐나왔어요. 저는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안산에서 30년간 지역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저조차도 처음 만난 엄마들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10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싶어요.
 
이경숙: 저는 여기 계신 분들이 계속 그 첫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9년 넘도록 활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우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우리 뭔가 해보자." "이런 건 어떨까?" 그렇게 주저하지 않고 자기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계속 힘을 얻고 있어요. 오혜란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피해 당사자가 앞장서서 험난한 길을 계속 헤쳐나가고 있다는 점도 정말 큰 동력이죠. 가족들한테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임을 지켰어요.
 
정기열: 처음에 '3년상을 치르는'이라고 모임 이름을 붙일 때만 해도 3년 정도면 이 사건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거라 생각했죠. 막상 3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게 됐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완성할 때까지 가족 곁에 있는 게 우리 목적임을 다시 확인했어요. 그렇게 서로서로 이끌어주며 어떤 일을 이뤄나가는 모습에서 많은 힘을 받았죠. 시민상주모임을 하면서 놀랐어요. 광주 안에 이렇게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있구나.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셨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걸 배워가고 있어요.
 
유주호: 앞선 말씀에 다 동의해요. 성균관대역 앞에서 피케팅하시는 분들은 같은 교회에 다니세요. 신도수가 5천명이나 되는 큰 교회죠. 이분들이 처음 피켓을 들었을 때, 교인들이 악의적으로 무시했어요. 그래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죠. 세월이 흘러 목사님도 바뀌고 정권도 바뀌면서 3주기 때는 그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세월호참사 추모행사를 여는 걸 보게 됐죠. "저희가 한국 교회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부모님들께 죄송합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수원 매탄촛불에 이번에 이태원 참사 가족분들이 오셨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다른 때보다 시민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날이 더우니까 생수도 얼려오시고. 근처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은 시원한 음료를 30잔이나 나눠주셨어요. 사실 그 지역이 상가라 촛불집회를 연다고 민원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매탄촛불을 여는 분들이 송년마다 떡을 해서 상인들에게 나눠주셨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감동을 주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연결된 삶
 
한유미: 저는 대구 4.16연대 활동은 꾸준히 리본을 받아가고 서명에 참여해준 대구 시민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 관심에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만 해도 세월호참사로 인해서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다시 본 사람이거든요. 희생자가 많아서(192명) 대구 시내에 관련된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서명하시다가 "대구지하철참사도 있었는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있어요. 달서구에서 서명받을 때는 반응이 확실히 달라요. 거기 상인동에서 지하철 공사 도중에 가스 폭발 사고가 난 적이 있었거든요. 인근의 영남중고 학생들이 많이 희생됐어요.
대구 4.16연대를 지탱한 또 하나의 힘은, 가족협의회 '2학년 3반'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점이죠. 책 속에 나오는 피해자, 텔레비전에서 나온 피해자가 아니라 정말 가까운 이웃으로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이 싸움이 저희한테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 번째로, 대구는 대책위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82개 중에서 8개 단체가 활동가를 파견해 집행위원회를 꾸렸어요. 지역 단체들이 큰 의지를 낸 거죠. 예를 들어 교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부채감이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전교조에서는 총무국장인 저를 이 활동에 매진하라고 보냈어요. 앞에서는 부모님들이 싸워주시고, 이 문제를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시민들이 함께한 가운데,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이 투쟁의 장을 계속 펴는 거죠. 저는 이것이야말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운동'이 지닌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주제| 우리는 무엇을 했고, 어디에 와 있을까
 
흩어지는 힘
 
이경숙: 문재인 정권 탄생하고 민주당이 180석의 압도적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성역없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안전사회건설을 완벽하게 이루어낼 거라고 기대했죠. 배신감이 너무 컸어요. 세월호 가족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사참위가 만들어졌는데, '왜 침몰했고, 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니. 그렇게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다 지난해 이태원참사까지 일어났죠. 우리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닌가라는 무력감이 증폭됐던 것 같아요.
활동의 동력이 옅어지는 문제는 지금 모든 지역의 고민일 거예요. 저희도 카톡방에 200명이 훨씬 넘는 회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90명 있거든요. 우리는 계속 서명만 하고 피켓만 들어야 하나, 제자리걸음만 하는 게 아닌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앞으로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활동을 지속하려면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 설득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까. 답답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함께 있죠.
 
한유미: 말씀하신 대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안 된 상황이 제일 힘들죠. 세월호 가족들도, 시민들도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은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인데,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운동을 만들어낼 것인가. 지금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가들도 나이를 먹었어요. 지치고 힘이 들어요. 세월호참사 막 났을 때 대구에 '유모차부대'가 있었어요.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1만 명의 특별법 서명을 받아주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 유모차를 이제는 다 폐기했겠지요. 그 애들이 다 컸을 테니까. 4~5년 전쯤 보니까 그 유모차에다가 피켓을 싣고 다니시더라고요. (웃음) 그런 분들도 여러 이유로 활동을 중지하기도 하니까 동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건 맞아요.
 
오혜란: 참사 후 모두가 큰 충격을 받은 상태로 이 문제에 거의 올인해 활동해오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친 면이 있어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경험이 생기기도 하고요. 모두가 알고 계시겠지만 안산은 세월호참사의 기억과 추모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요. 그 사람들도 나름의 조직력으로 단단하게 뭉쳐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보다, 함께 해왔던 동지들이 한 명 두 명 떨어져 나가면서 이 운동의 힘이 빠지게 되는 거잖아요. 10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할 만큼 했다. 이제 나는 내 할일하러 돌아간다'로 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함께할 사람들을 단단히 붙잡을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봐야 할 시점 같아요.
 
우리가 일궈낸 것
 
오혜란: 그런 한계 속에서도 우리가 대단히 많은 일을 이루어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할 거예요. 지역 차원에서도 그렇고 전체 4.16운동 차원으로 봐도 그렇고,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성과가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세월호참사를 통해 이 세상을 알게 된 사람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정기열: 광주 세월호시민상주모임은 보통의 조직과는 달리 대표가 없어요. 특정 단체를 대표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요. 그러면서도 긴 시간 큰 탈 없이 조직을 이어와서, 사회 활동의 신선한 사례로 주목받았어요. 내년 10주기를 앞두고 포럼을 열어서 이 의미에 대해 짚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고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향해 갈 수 있게 서로서로 이끌어왔어요. 이러한 선례를 만들어낸 것도 성과죠.
 
이경숙: 도봉 역시 거창하지는 않지만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지역에서 인정받는 4.16 운동의 주체로 자리매김했어요.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시는 분들로부터 지원 요청이 가끔 들어오거든요. 올해만 해도 전북 순창과 경기도 양주에서 리본공작소 활동을 준비하시는 분들로부터 연락받고 약간의 도움을 드렸어요. 미약하나마 운동을 확산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유주호: 수원 매탄촛불은 빠지는 사람도 많지만 새로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빈자리가 채워지는 일은 꾸준히 그 자리에 서 계신 분들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요.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만들까. 그 지역 시민의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4.16연대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총회나 모임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어요. '저렇게 열심히 하시네.' '우린 왜 저거 못했을까.' 그런 깨달음이 있는 자리였죠. 특히 세월호 제주기억관 신동훈 위원장님 활동이야기는 정말 최고였어요. 제주기억관의 활동을 통해 올해 4.16운영위원회에 제주 청소년들이 들어왔잖아요. 감동이 크죠. 하반기에 10주기 활동을 준비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또다시 이야기 듣는 자리를 만들려고 해요.
 
한유미: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4.16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활동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 그리고 그 곁에서 이렇게 함께하는 '4.16시민'이 형성되었던 점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특별법을 만들고 국가적인 차원의 조사기구가 활동하게 했다는 점은 우리가 정말 자부심을 크게 느끼고 자꾸 이야기해야 하는 성과다. 사람은 그런 자부심에 근거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힘을 주는 경험이 꼭 필요해요.
 
성과를 역사로
 
정기열: 상주모임과 팽목순례팀이 7월에 제주 평화기억관에 다녀왔어요. 제주는 청소년 모임이 다양하고 활발해요. 학생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 학교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참 중요하더라고요. 광주에도 청소년촛불이 있거든요.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다보니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청소년과 함께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더 고민하게 돼요. 한유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성과를 낸 부분,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될 점이 자꾸 이야기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변화할 계기를 만들어야 해요. 청소년들이 그걸 보면서 이러한 활동이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걸 보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오혜란: 이 운동의 성과를 '역사'로 만들어야 해요. 각 지역의 활동이 기록으로 남겨지면 좋겠어요. 안산 4.16연대도 안산시에서 지원받아 안산시민활동백서를 추진했는데, 안타깝게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방법을 찾아봐야죠. 4.16연대 차원에서도 시민활동기록을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 주제| 기어코, 길을 낸다
 
지금 무엇을 할까
 
오혜란: '10주기'라고 해도 그동안 매해 지나왔던 '4월 16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동안 우리가 신발 끈 꽉 조여 매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 멀리, 길게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죠. 우리 애썼어, 고생했어, 앞으로 또 같이 잘 가보자. 그렇게 서로 다독이고, 서로를 살피고,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쉼을 제공하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또 새로운 배움과 앎의 시기를 보내고. 그렇게 재충전하는 일을 시스템적으로도 만들 필요가 있어요.
 
한유미: 그 말씀에 크게 공감해요. 부모님들, 활동가들 모두 회복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 책임자처벌 진상규명은 우리가 절대 놓을 수 없는 핵심이고,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사참위 종료 후, 이제는 책임자처벌 진상규명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우리가 새롭게 찾아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무엇이든 해야지요.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위험사회로 가면서, 생명과 일상을 지키는 일이 시민의 중요한 요구로 더욱 대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명존중 안전사회라는 문제를 전면화하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동력을 새롭게 형성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숙: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나름의 방법을 찾아봤어요. 제가 직장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법과 제도를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점수를 매겨서 공개하는 일에 참여했어요. 이 점수가 낮은 기관은 국정감사 때 크게 문제가 돼요. 공공기관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거든요. 여기에서 착안해, 사참위 권고 대상 기관들이 권고를 어느 정도 이행했는지 수치화해서 공개하는 운동을 4.16연대에 제안드려요. 이행률이 낮은 기관에는 압박행동을 이어가는 거죠. 제대로 질문하고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도봉에서는 '사참위 보고서 읽기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한번 시도해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다른 지역에서 성공 혹은 실패 경험을 공유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유주호: 행동하지 않는 추모와 기억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의문이 들어요. 수원은 '4·16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안전사회를 위한 조례'를 안산 빼고 처음으로 만들어봤잖아요. 참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민주당 의원들도 관심이 없었어요. 시민 모금으로 수원역에 표지석을 만들 때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역 상인회까지 동원해서 큰 난리가 났었어요. 시의회가 국민의힘 다수로 바뀐 지금은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 와중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어요.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만들자고 하잖아요. 만들면 달라질까요? 책임져야 되는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못하도록 막고 있잖아요. 이런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아요. 길이 보여야 신이 나서 가잖아요. 10주기 앞두고 수원 4.16연대 차원에서 이 고민을 좀 깊이 나눠보는 자리를 가져보려고 해요. 그 논의를 바탕으로 4.16연대에 제언할 수 있는 하반기를 만들 계획입니다.
 
서로의 길이 되자
 
오혜란: 길은 우리가 함께 만드는 거잖아요. 4.16연대가 그 길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4.16연대가 그 길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회원들이 함께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편으로 4.16연대는 지역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지역의 목소리가 서로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정기열: 지역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오래된 고민일 거예요. 이걸 4.16연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의견도 많이 나왔었죠. 지역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만들어지고 활성화될 방법을 지금도 아마 많이 고민할 거예요. 한계라는 것도 결국 우리의 한계고, 그 한계를 돌파할 계기도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유미: 활동이 어려울 때 활동가들도 자기 생각이 강해지는 경향이 생겨요.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만나고, 그러다 전체를 해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안전사회건설 운동을 지금도 놓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는 지역 활동가들이 참 소중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지지하면서 우리 힘을 자꾸 넓히는 방향으로 운동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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