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요"

[탐방] 4.16약속지킴이도봉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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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416act)등록 2023.11.24 15:42
"변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요"
[탐방] 4.16약속지킴이도봉모임
 
이슬하

금요일 창동역에 가면
 2023년 8월 18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412일째 되는 날. 특별할 것 없는 이날에도 창동역 1번 출구 앞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였다. 4.16약속지킴이도봉모임(도봉모임)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이곳에서 피케팅과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등장한 김현석 도봉모임 대표의 두 손이 무겁다. 주변 노점상들과 같이 쓰는 창고에서 피켓과 탁자, 서명 용지 등을 꺼내오는 길이다. "먼저 온 사람이 준비해놓는 거예요." 현석 씨가 능숙하게 탁자를 펴고, 사람들을 맞을 채비를 한다.
뒤이어 퇴근하고 부리나케 달려온 활동가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인다. 이경숙 씨가 익숙하게 서명 탁자 앞에 선다. "이렇게 덥거나 추운 날에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곳에서 숱한 계절을 보낸 경숙 씨가 말한다. 2015년부터 함께한 경숙 씨는 도봉모임의 '아이디어 뱅크'다. 그는 올해 9주기 추모의 달 행사로 세월호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로그북> GV를 추진했다. 현재 진행형인 영화 속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랬다.
경숙 씨 다음으로 서연경 씨가 서명 탁자 앞에 선다. 1번 출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서명해달라고 소리친다. 연경 씨는 도봉구에서의 활동 경력이 길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이란 모임이 만들어졌다. 목요일마다 쌍문역에서 피케팅을 했다. 이 모임은 세월호 참사 이후 도봉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아직 해결된 게 없으니까 끝까지 가야죠." 결연한 연경 씨는 오늘도 멈출 수 없다.
 
미련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도봉모임은 2014년 10월, 전국에서 최초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다. 도봉구에 있는 카페에 둘러앉아 아무 이야기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그 자리에 최창덕 씨도 있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동갑인 아이를 둔 그는 국민 단식에 동참하며 세월호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창덕 씨는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했다. 2015년 9월에는 동거차도로 함께 내려가 인양 현장 감시 천막을 세웠다. 세월호가 인양돼 목포신항으로 떠난 뒤, 바지선도 철수한 망망대해를 몇 개월간 더 바라봤다. 지금은 우두커니 피켓을 들고 창동역을 지키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조용한 편이에요. 여기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소리를 다 해요. 그런 말들은 아무리 들어도 단련이 안 돼요.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활동하지만,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지칠 때도 있죠. 미련하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여기 창동역 1번 출구를 떠날 수는 없잖아요."
 
삶의 일부가 된 세월호
이날 창덕 씨 옆에서 피케팅에 함께한 정유라 씨는 세월호 이전에는 내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하루하루 아이들 챙기기에도 바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세월호를 만났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당장 거리로 나섰고, 광화문 세월호광장이 철거된 이후에는 도봉모임에 합류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도봉모임에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진행한 캔들라이트 낭독회를 그는 특히 좋아했다. 이제 유라 씨 가족에게 세월호는 삶의 일부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세월호 현장을 따라다닌 유라 씨의 아들은 도봉모임의 지난 9주기 문화제에서 멋진 랩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피케팅이 매주 금요일에 있으니까, 수요일쯤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해요. 제가 옷 장사를 하는데, 매장에서 있었던 온갖 일들을 좀 털어내고 마음을 곱게 단장해요. 벌써 금요일이 왔구나 하면서 그 시간만큼은 정말 정갈한 마음으로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해요. 일요일마다 교회 가시는 분들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출근길에도 피케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바쁜 시간에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동이 나도록 받아 가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제게 세월호는 지겨울 수가 없어요. 각자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그냥 저버릴 순 없잖아요."
현석 씨는 도봉모임이 세월호 기억순례 코스를 만든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웃는 모습을 볼 때 기쁨을 느낀다. "유가족들을 몇 년을 봤는데도 웃는 모습을 못 봤어요. 이 사람들이 천하의 죄인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체육대회를 열었어요. 즐거울 때는 웃을 수도 있어야 하잖아요. 체육대회를 계기로 봄마다 유가족들과 소풍을 가기 시작했죠. 저희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찾아요."
도봉모임이 창동역 1번 출구에 나타나면 옆에서 술빵을 파는 노점상 한 분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틀어준다. 그 오래된 풍경은 돌아오는 금요일에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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