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 문학의 역할은 향기와 조명을 주는 것

스무개가 넘는 직업을 거치며 우뚝선 소설집 출간한 이명훈 소설가 인터뷰

등록 2023.11.26 14:50수정 2023.11.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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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 소설가 소설집 수평선 여기 있어요 ⓒ 윤솔지

 
"시와 소설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동시에 생계를 위해 지금까지 거쳐온 직업이 스무 개가 넘는데요. 바닥 인생을 보게 된 사회의 여러 가지 단면들, 특히 그늘, 부조리,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해 저의 근본인 문학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막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11월 마지막 토요일(25일), 20여 년 만에 세 번째 소설집 <수평선 여기 있어요>을 출간한 이명훈 작가를 마포 광흥창 어느 낭독회에서 만났다. 코듀로이 재킷에 코발트색 머플러를 두른 반백의 이 작가는 아주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듯한 수줍은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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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여기 있어요 표지 ⓒ 이명훈

 
  
- 소설집 제목이 '수평선 여기 있어요'예요. 어떤 의미일까요?


"옛날에 한번은 늦은 밤 출출해서 24시간 김밥 집에 들어서려는데 묘한 상상이 떠올랐어요. '김밥 한 줄 포장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수평선 한 줄 포장해 주세요'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그 말에 김밥 집 안주인이 빙긋 웃으며 '수평선 여기 있어요' 하며 김밥 한 줄을 주는 상상해 봤어요. 그 상상을 촉매로 수평선에 대해서 골몰하게 되었는데요.

수평선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데아라던가 좋은 기억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다 허상일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허상만 쫓다 보니까 엉뚱하게 당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속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중시하고 존중하면서 현실에서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회, 저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 장대송 시인은 이번 소설집이 '대충대충 황망하고 가벼움이 주를 이루는 세상에서 이명훈의 소설은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혀서 우뚝하다'라고 표현하는데요. 무슨 뜻일까요?

"(웃음) 아마도 소설집에 담긴 8편의 이야기가 모두 저의 체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네요. 마흔다섯 살의 도비공, 투기거래자의 한 부류인 데이 트레이더, 보험설계사, 정수기 판매원, 일용잡부 등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흔히 말하는 '밀려난 사람들'인데 실제로 제가 그 사회에서 일원으로 체험한 이야기이거든요. 저는 '을' 쪽으로 밀려있으면서 인식이나 저항, 세계를 보는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개혁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의 삶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봐요."

- 하지만 이들은 모두 출구 없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버거운 상황에 처해져있는데요.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아요.


"맞아요. 어떻게 이 주인공들이 이 일들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직장과 현장에서 동료와 친구를 만나고 상처를 받죠. 나의 의지와 꿈은 그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만큼 그들은 나를 생각해 주지도 않죠. 나는 그저 세상과 사람들과 현재가 아름답기를 바랄 뿐인데. 어찌 보면 '나'들은 꿈을 내려놓지 못하는 꿈을 꾸는 사람이어서 세상과 불화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오히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저는 무엇보다 돈 많은 권력가들이 타자들을 수단과 도구로 삼는 사회에서 그런 참담함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렇게 자본주의가 상실해버린 영혼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인간 존재, 특히 사회적 약자나 그늘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 그들을 위한 치열한 논구가 필요한데 지식, 지성 계층에서 제대로 못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것들을 글로 바로잡아보고 싶었어요. 작가는 사회를 외면하면 안 되고 문학은 일종의 지렛대역할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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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회에서 이명훈 소설가 오른쪽에서 두번째 ⓒ 윤솔지

  
-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싶다고 하셨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우선 문제 제기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서점에 가면 반말투의 책들이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안에도 모종의 상술, 즉 자극적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려는 것이 작동을 하는데 그 이면에는 표피적으로 자극해서 처세술, 주식, 자기 계발 등의 이름으로 고객들의 지갑을 열죠. 반말투,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자본주의의 교묘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간과하는 수가 많아요. 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모독인데 말이죠. 모독을 당하면서도 지나가고, 심지어 웃으며 선물까지 하죠. 작은 예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이미 깊이 파고든 자본주의를 잘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이기도 하죠."

- 작가님의 선택은 문학이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정의하는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가치를 잃어버린 세계에 향기를 주는 것, 작은 존재에도 조명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인 것이고 저는 사회와 세계의 미세한 그늘을 바닥에서 보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세계화라는 거짓 환상 속에 일그러지고 상처받는 존재들, 자칫 간과되는 부조리 및 출구 탐색을 위해 나름의 치열함으로 임한 이번 소설집이 그렇게 향기와 조명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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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지 장대송시인과 함께 이명훈 소설가와 장대송 시인 ⓒ 윤솔지

 
장대송 시인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명훈은 굴곡 깊은 체험으로 삶의 다양한 풍경을 겪어왔다. 문학이라는 통과의례를 그는 오래도록 치르고 있으며, 어쩌면 고통 가득한 그 여정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매일 문학으로 죽고, 매일 문학으로 살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한다.

문학이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명훈 작가는 지금도 창작촌에서 글을 쓰며 작가들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일상이다. 그의 '을'이자 '을의 친구'로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나운 것들에 차갑게 대적하는 본질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문학인으로의 여정이 담긴 시와 소설을 통해 길목마다 새겨지는 이정표와 같이 독자를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명훈 작가는 1961년 청주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과 졸업, 2000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2003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걸음을 옮겼다. 이후 장편소설 <꼭두의 사랑><수저를 떨어뜨려 봐>를 펴냈다.
#이명훈 #소설가 #장대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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