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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학원비 생각하면 더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요

[N잡러 노조하다⑥] 일하는 시간 늘리자는 대통령, 몰려오는 육신의 피로·영혼의 고단함

등록 2023.11.29 11:59수정 2023.11.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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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노동자로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편집자와 대리운전을 거쳐 현재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국 노동조합이냐고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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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중국경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줄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 픽사베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딸아이의 학원비를 생각하면 밤샘 노동이 아니라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연장근무가 줄어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사라진 1.5배 연장수당만큼 마음이 불편합니다."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A는 격주로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합니다. 그를 만나면 늘 아직도 주야 교대 근무를 하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를 묻습니다. A에겐 오래된 노동이라 인이 박였을 테지만, 밤낮이 뒤바뀌는 노동은 누구의 것이라도 육신을 갉아먹는 일이란 걸 잘 알기에 만나면 안부를 살피곤 합니다.

그는 최근엔 중국 경기가 안 좋아 (수출) 물량이 줄어 야간 잔업이나 특근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했습니다. 과거처럼 매주 52시간씩 노동시간을 꽉 채우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노동시간이 준 것이죠. 덕분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답니다. 그런데, 어딘가 행복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조금 넓은 집으로 옮기느라 빚(전세자금대출)을 낸 것도 걱정입니다. 기본급이 낮아 야간이나 밤샘 노동으로 벌충해야 하는데, 일감이 줄어든 탓에 타격이 큽니다.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딱 그만큼 시름은 깊어졌습니다.

배달 일을 하는 박세진씨(가명)는 하루에 보통 14시간(식사 시간 포함) 정도 일합니다. 점심시간을 앞둔 오전 11시경 일을 시작해 새벽 1시까지 배달을 합니다. 세진씨는 몇 해 전까지 작은 가게를 운영하다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았습니다. 장사가 잘될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엔 빚을 안고 처분했지요. 빚더미까진 아니지만, 현재의 배달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빠듯합니다.

한 건에 4000~5000원, 1시간에 대략 3~4건의 콜을 탑니다. 만약 하루 8시간, 주당 5일(40시간)의 통상적인 노동을 한다면 월 수입은 대략 250만 원 선입니다. 여기서 세금과 수수료, 각종 보험료, 주유비와 차량유지비 등 비용을 모두 제하고 나면 한 달 손에 쥐는 돈은 200만 원 남짓입니다. 그러나 세진씨의 실제 수입은 보통 이보다 많습니다. 평균적으로 매월 350~400만 원을 버는데, 한 달에 이틀 이상 쉬지 않고 하루 14시간씩 일한 덕입니다.

"어떻게든 빚이라도 빨리 청산해야지 숨통이 트일 것 같아 쉼 없이 일합니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어떻게든 나가는 돈을 아끼려고 밖에 나오면 식사는 거의 편의점에서 해결해요."

세진씨는 현재 조건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대안은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길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떨 땐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장시간 노동은 사람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지요. 세진씨도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습니다. 쉼 없는 노동으로 고달프지만, 그는 오늘도 하루 14시간 노동을 감행합니다.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자"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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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사람 모두 빚을 안고 있습니다. 채무자 신세라 통상의 예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계부채가 1900조 원에 달하는 한국에서 두 사람의 사례는 그리 특별하진 않습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63.3%가 빚을 안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9170만 원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주택 마련 혹은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빚을 지고, 또 이를 갚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플랫폼 경제의 등장으로 세진씨와 같은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23년 상반기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143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기에 노동시간도 규율 받지 않지요. 게다가 플랫폼 산업은 정규노동 외의 시간에도 노동자들을 일하게 합니다. 덕분에 주변에서 '투잡족' 혹은 'N잡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미래를 위해 몸과 시간을 기꺼이 바치는 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시간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초 노동개혁을 목표로 '주 69시간제' 안을 발표했습니다. 현행 '주 52시간제'(주당 40시간+연장 12시간)의 경직성을 타파하기 위해 주당 최대 69시간(휴일 근무까지 포함하면 주당 최대 80.5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보겠다고 했습니다. 초과근무 관리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 또는 연 단위로 바꿔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바쁜 주에 더 일하고, 한가할 때는 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요.

이는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2021.7.19. <매일경제> 인터뷰)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관을 그대로 반영한 안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해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여론도 싸늘했지요.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핵심은 한국의 노동시간은 현재도 길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깁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OECD 국가들(평균 1601시간)보다 약 20% 더 일합니다. OECD 국가 중 가장 짧게 일하는 독일(1349시간)에 비해선 50%가량 깁니다.

'근로자'가 아니어서 공식 통계에서 제외되는 세진씨와 같은 특수고용직을 포함한다면, 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겠지요. 현행 '52시간제'에서도 OECD 최고 수준으로 장시간 일하는 와중에 노동시간을 더 늘리겠다고 했으니, 반발은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노동시간이 OECD 최장인 국가에서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자"는 대통령을 보고 있자니 다소 현실감이 없지만, 노동시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그리고 투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이윤 창출을 위해 어떻게든 노동시간을 늘리고자 했습니다.

영국에서 노동시간을 규율하는 공장법이 만들어진 1800년대 초까지 노동자들이 하루 15시간 일하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동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저항은 곧 노동시간을 표준화하고 단축하려는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제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의 투쟁도 그러했지요.

끊임없이 더 일하게 하는 기이한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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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3일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인 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 시간이 적혀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노동은 건강을 해칩니다. 장시간 노동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에서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심야 노동은 인간의 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노동하다 피로로 죽는 산업재해를 우리는 과로사라고 부르지요. 이 '과로사'라는 말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죽도록 일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비극적 풍경입니다.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한 최소 조건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 등 일자리 문제의 대안도 됩니다. 아직도 다수 정치세력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을 주되게 제안합니다만,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가 다시 도래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향후 저출생에 따른 (노동)인구 구성의 변화, 그리고 장기적 저성장을 점치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또는 나누기)은 실업 문제의 현실적 해결책입니다.

이외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기후 위기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도 제시됩니다. 더 많이 일하는 사회는 더 많이 생산하는 사회이고, 더 많이 생산하는 사회는 (자원을 포함해) 더 많이 소비(소모)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쉼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사회일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지구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연쇄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 불평등과 노동 빈곤이 문제라지만, 어쨌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삽니다. 이 풍요한 시대에 우린,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버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본가들의 탐욕과 착취의 문제를 제쳐두고 노동자가 먼저 양보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성장에 관한 우리의 욕망을 잔잔히 성찰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이 소비하려는 욕망의 수레에선 내려와야겠지만, 그렇다고 끊임없이 더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기이한 체제를 그냥 둘 순 없는 노릇입니다.

집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자산이 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집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질 것이고, 또 이 부채를 갚기 위해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이나 돌봄이 상품이 되는 사회에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혹은 부모를 부양하려면 더 구매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노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인간적 존엄조차 유지할 수 없는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몸을 움직여 제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데도 법과 제도론 포괄되지 않아 최저임금도,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들은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세진씨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50여 년 전, 한 달에 단 이틀만 쉬며 하루 14시간씩 노동했던 전태일과 다른 처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심야 노동에서 벗어난 A는 육신의 피로함은 풀린 듯했지만, 쪼들리는 살림에 영혼은 고단해 보였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현재의 생존과 안락한 미래를 위해 언제라도 제 몸과 시간을 갈아 넣을 요량인 듯했습니다. 우리 사회 많은 노동자가 A나 세진씨처럼 장시간 노동을 합니다. 강제노동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이를 과연 온전한 의미의 자발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육신의 피로함과 영혼의 고단 사이에 선택을 강요하는 이 체제를 바꿀 사회적 노력이 절실합니다. 진지한 집단적 숙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120시간을 바짝 일하는' 사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노동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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