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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마을 꽃 시인들의 작품, 뭉클합니다

말랭이동네글방 학생 자작시화전시회... "너무 대단하고 자랑스러워"

등록 2023.12.03 11:12수정 2023.12.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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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내린 흰 눈이 마을 앞 꽃무리에 남아서 햇빛에 촉촉이 반짝입니다. 양손에 동네글방 어머님들 시화 전시회용 플래카드를 들고 바삐 계단을 오르는 저를 잔설들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네요. 뭐가 저리 또 바쁜 일이 있나 하는 눈치였어요. 말랭이 골목잔치 마지막 행사를 앞두고, 동네글방의 하이라이트 '시화전시회' 작품을 내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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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시화전시회4 봄빛따라 움튼 한글 씨앗으로 꽃 시인이 탄생되었어요 ⓒ 박향숙

 
올 3월부터 10개월 동안 마을 어머니들과 문해공부를 한 '동네글방'. 지난달 정규 수업을 마치면서 시낭송잔치(2023.10.30)를 통해 어머님들의 공부 발표를 했었지요. 이제 당신들께서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전시할 거라고 마지막 활동 계획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스케치북과 노트에 쓰여진 당신들의 공부 흔적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어느 작품을 전시할까. 어느 분은 글은 좋은데 그림이 서운하고, 또 어느 분은 그림은 멋드러진데 글이 아쉽고요. 1주일간의 검토기간에 보충을 하시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습니다.

"어머니, 이 미싱 그림 정말 잘 그리셨어요. 예전에 제 엄마가 이런 미싱 사용했는데, 아마 저희 집도 어딘가에 이 물건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옆에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 한 줄 정도만 더 쓰시면 어때요? 그 마음이 시예요." (박흥례 어머님 '드레스 미싱' 작품) 

"어머니는 최고의 꽃 시인이에요. 어쩌면 그림이 이렇게도 화사한지. 대한민국 최고 잉꼬부부의 마님 맞다니까요. 그런데 글이 없으면 이 꽃밭이 엄청 서운하겠죠. 길지 않아도 돼요. 써 보실래요?" (백대순 어머님 '내 마음의 꽃밭' 작품)


한 분 한 분 그동안 수업 내용을 살피다보니 정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올해 한 해 '정말 내가 잘한 일'의 으뜸으로 동네글방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늘의 뜻을 새기라는 나이 오십 '지천명'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지난 시간에게 감사했어요. 모두가 '덕분에, 덕분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있었음은 참 행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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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시화전시회1 시화플래카드 중 당신들의 작품을 찾는 어머님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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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시화전시회2 항암치료중인 강성심(78세)어머님의 아들과 며느리가 작품감상 ⓒ 박향숙

 
마을 주무관과 남편이 플래카드를 걸 때마다 마을 어머니들의 눈길이 바빴어요. '내 작품은 언제 걸리나?' 하는 기다림에 노란 서리국화가 만발하였고요. 어느새 마을 정원에 꽃 시인들이 가득했습니다. 한 사람이 2작품씩, 말랭이 골목길 따라 난간마다 플래카드로 시화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아이고, 노트랑 도화지에 있던 글이랑 그림이 저렇게 큰 그림으로 인쇄되니까 내 글이 아닌 것 같어. 신기하고만."


"이렇게 전시하는 건 줄 알았다면 더 이쁘게 그리고 글도 좀 신경 써서 쓸 걸 그랬네. 우리 작가님 정말 고생했어요."

"이렇게 걸어놓으니까 우리가 진짜 마을 주인 같어. 방문객들에게 좋은 볼거리 하나가 생겨서 우리도 기분 좋고만 그려."


작품들을 걸고 나서 기념사진 찍었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강성심 어머니는 항암치료 중이어서 작품을 내기만 했는데, 전시장에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가 왔습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픈 엄마의 눈빛과 공부할 때의 두려움과 기쁨 어린 해맑은 미소가 눈에 선하여 제 마음을 그대로 두 자녀분께도 전해드렸습니다.

글방공부를 함께 지도한 김정희 시인과 서은경 선생도 기뻐하며 어머님들의 시화를 감상했습니다. 그제서야 동동거리며 시화 작품을 전시했던 제 마음에 시원하게 투명한 겨울 바람이 스쳐 지나갔지요. '이제 내가 책임지고 할 일을 끝냈다. 약속을 지켰네.'

말랭이 잔칫날은 엄청 부산하지요. 방문객 모두에게 어머니들은 파전을 대접하고요, 입주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활동부스를 열고요. 올 한 해도 3월부터 참 부지런히 재밌게 잔치를 함께 주관하면서 말랭이를 문화마을로의 초입에 든든한 디딤돌 하나를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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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시화전시회3 동네글방을 함께 지도한 김정희시인, 서은경 선생님과 감상 ⓒ 박향숙

 
"마을 분들의 시가 겨울 바람에 수줍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갑자기 왼 손가락이 쑤셔서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 괜찮으려나 했는데 통증이 가라앉지 않네요. 오른손으로 자꾸 감싸줘 봅니다. 그래 고맙다, 네 손 덕분에 잘 살아냈다." 가장 고령이신 김방자 어머니(87세)의 <손>이라는 작품평을 해주신 방문객의 말입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작은 씨앗들이 있구나. 응어리일까요. 그걸 곱게 다듬어 세상으로 내놓으니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추억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벚꽃> 시를 보면서 언제나 옆에 묵묵히 있어주는 벗도 생각이 났어요. 시화전을 보는 내내 내 어머님의 모습이 보여서 마음도 아렸습니다." 강성심 어머니(78세)의 <벗꽃> 시를 관람한 방문객의 평입니다.

"우리 엄마 평생 고생만 했는데, 공부하고 싶어 하시더니 글방 반장 맡았다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시까지 쓰신 걸 보니 너무 대단하시고 자랑스럽네요." 가장 어린 이덕순 어머니(71세)의 아들이 남긴 한 마디입니다.

시화전시장을 쭉 돌아서 공예방에 들어가니, 앞으로 또 같이 살게 되었다고 너무도 좋다고 대환영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물어보십니다.

"작가 선생님, 우리 내년에는 또 무엇을 배울랑가 궁금허네. 많이 가르쳐주소이~~"

평범한 제 존재 하나가 마을 어른들의 글빛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포근합니다. 내년에 무엇을 할지 제 머릿속에 담긴 계획을 실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어른들의 말씀을 잘 모아서 마음 주머니에 토닥토닥 챙겨놓았습니다.

하늘빛이 왠지 대설을 가득 품고 있는 듯 잿빛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군요. 그러나 어머님들의 마음 하늘은 다를 거예요. 아마도 당신들 스스로를 '봄빛에 뿌려졌던 한글 씨앗으로 말랭이 마을에 등단한 꽃 시인'으로 불러주기를 바랄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불러드립니다.

"말랭이 꽃 시인님들, 다음 작품 기다리고 있어요!!"
#말 #시화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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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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