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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를 죽일 건가 살릴 건가" 키신저의 대답은

'납치 사건' 계기로 인연... 국제적인 인사와 폭넓게 교류한 외교의 달인 김대중

등록 2023.12.04 15:41수정 2023.12.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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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9일 미국 외교계의 거목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타계했다. 키신저는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며 여러 차례 만남을 갖고 한반도와 국제정세에 관해서 폭넓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키신저는 김대중을 '훌륭한 비전, 훌륭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고 김대중은 키신저를 '세계적인 대석학'으로 평가했다. 이렇듯 두 인물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다.

그러면 김대중과 키신저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을까? 키신저가 백악관과 국무부에 재직하던 때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인데 이 시기에는 두 인물이 직접 만난 적이 없고 그럴만한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납치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훗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에 관한 사실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1983년 2월 김대중과 키신저가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2월 김대중과 키신저가 주고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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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키신저 전 국무장관 대통령 재임시절 김대중이 키신저와 만났을 때의 사진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김대중은 1980년 9월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사형선고을 받았다. 또다시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김대중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구명운동에 힘입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2년 7개월여 동안 수감 중이던 1982년 12월 23일에 형집행정지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하여 또다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미국 도착 직후 건강회복에 주력한 김대중은 1983년 초부터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대중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구명을 위해서 노력한 주요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키신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김대중은 1983년 2월 15일 키신저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박사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저는 형집행정지 기간 중인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희 가족과 함께 워싱턴D.C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서 저희 가족의 생활이 안정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를 대신해서 당신이 많은 노력을 해주신 것에 대해서 저는 지체없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활동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이는 제게 큰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박사님께서 1973년 8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제가 대사관으로 망명을 원한다면 저를 보호하라고 지시했다는 1974년 일본 언론 보도를 봤습니다. 당시에 이미 한미관계에 있어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박사님께서 이러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시 체포된 1980년 5월 이후, 특히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제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께서 저의 안위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하시고 저에 대해서 강력한 지지를 해주신 덕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동안 박사님께서는 저를 강하게 지지해 주셨으며 저는 이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사님을 뵙고 직접 감사인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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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김대중이 키신저에게 보낸편지 1983년 2월, 김대중이 키신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이 편지를 받은 키신저는 2월 24일 김대중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회신했다.
 
"1983년 2월 15일 당신이 저에게 사려깊은 말씀과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이 나라에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명을 구한 노력은 오직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노력이 성공한 것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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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키신저가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1983년 2월 키신저가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980년에 키신저는 미국 정부가 김대중구명에 나서도록 노력했다. 다만 이때 그는 민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실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1973년 8월 김대중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키신저가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미국 외교정책 수립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때 키신저는 김대중의 구명에 관여하게 되었다. 

김대중납치사건 당시 구명에 나선 키신저 


김대중 구명을 위해 미국 정부가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납치 범행 순간이 외부에 노출되어 사건 발생 1시간여 뒤에 미국 정부가 정보를 입수하고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미국 정부 차원에서 확보한 정보 외에도 하버드대학 재직 당시의 인연으로 알고 있던 김대중의 미국 내 후원자인 에드윈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 제롬 코헨 하버드대 교수 등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기도 했다.

당시 코헨 교수는 키신저와 통화하면서 "김대중씨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예스'와 '노' 하나로만 대답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고 키신저는 김대중을 살리겠다는 뜻에서 '예스'라고 대답을 했다.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와 국무부 한국과장 레너드가 김대중의 구명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고 미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키신저가 이에 동의를 하면서 김대중구명활동은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 미국 국무부는 8월 8일 12시 30분(일본 시간 9일 오전 1시 30분)에 '미국은 김대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이 순간 김대중의 상태는 어땠을까? 9일 새벽 1시 경에 큰 배로 옮겨진 김대중의 몸에는 50kg 이상의 큰 돌이 매달렸고 물에 떠오르지 않도록 솜을 붙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듣는 등 수장(水葬)의 공포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4~5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새벽 5~6시 정도에 갑자기 비행기 소리와 함께 소란이 발생했고 그 이후 김대중에 대한 수장위협이 사라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것이다. 

김대중의 국제적인 영향력과 위상을 보여주는 키신저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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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김대중과 키신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김대중과 키신저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두 사람의 편지를 보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김대중과 키신저의 인연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두 인물은 여러 번 만남을 이어가면서 한반도 및 국제정세 전반에 관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김대중은 키신저를 '세계적인 대석학'이라고 평가했으며 키신저는 김대중을 '훌륭한 비전과 정책을 갖춘 정치가'로서 평가할 정도도 두 인물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우정을 이어갔다.

김대중은 키신저를 만나기 전부터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많은 공부를 했었다. 김대중이 1982년 6월에 쓴 옥중서신을 보면 그는 옥중에서 1979년에 나온 키신저의 회고록 <WHITE HOUSE YEARS(백악관 시절)>를 영어 원서로 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이 이 책을 읽을 때 훗날 키신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이 키신저와의 우정을 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김대중은 2차 미국 망명 기간 중에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을 만나서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가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했다. 키신저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이와 같은 김대중의 노력은 성과를 내어 이 사안에 대한 미국 사회 내의 인식 제고와 전환에 도움이 되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사료는 이에 관한 김대중의 노력과 활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 <김대중 1차망명과 반유신민주화운동>(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이며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김대중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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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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