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 나라' 갈 수 있다는 이 책, 작은 사찰에서 나왔다니

경남 함양 금대산 안국사의 역사 문화 탐방

등록 2023.12.06 17:32수정 2023.12.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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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임천 풍경 ⓒ 이완우

 
절기로는 대설(大雪)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아침은 늦가을 같았다. 함양 마천면의 임천(瀶川)강 옆 도로에서 지리산 안국사로 올라가는 1.3km의 산길은 맑은 바람의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강 건너 도마 마을의 다랑논이 아침 안개 어린 풍경 속에 그윽하게 보였다.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851.5m) 자락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지리산을 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603~661) 때인 656년에 창건되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안정된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함양 안국사는 그 이름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무열왕의 의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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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안국사 ⓒ 이완우

 
함양 안국사는 조선 시대 후기에 어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한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保幼新編) 편찬하여 민간에 널리 보급한 의미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작은 사찰에 전해오는 이 소중한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보는 탐방을 하였다. 보유신편은 1843년에 성주 독용산성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에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곳 함양 안국사의 승려 정훈(正訓)이 1844년에 이 초간본 보유신편을 가져와서 이 지역 함양의 유학자인 노광리(盧光履, 1775~1856)에게 보여주며 말했단다. 
 
이 책을 세상의 의자(醫者)들이 실속 없는 책으로 보니 오래 지나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이에 재산을 털어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한마디 말씀을 적어주시어 책머리에 올리게 해 주십시오. 
집집이 이 책을 소장하고 활용한다면, 
어린이는 병을 고쳐서 자비의 배를 타고 장수(長壽)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곳 함양 안국사에서 1845년 칠석날에 노광리의 서문을 붙인 소아과 목판본 의서 보유신편(保幼新編)을 중간(重刊)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그런데 이 보유신편 책자는 성주와 함양의 안국사 두 사찰에서 간행되기 200년 전에 대전에서 신만(申曼, 1620~1669)이 써서 전해오던 책이었다. 

논문 '주촌 신만의 보유신편 편찬과 주촌신방'(양승률, 2012)에 보유신편의 저자인 신만과 이 책이 써진 과정이 잘 밝혀져 있다. 대전 지역에는 고려말부터 그 지역의 한 유력 가문에 의해 미륵원이 건립되어 여행자들의 숙식과 의료를 제공하였었다. 이런 적선 활동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서 백성을 위해 약방문과 우리말 약초 이름을 정리하고 복용법 등을 쉽게 제시하였다. 

외아들을 천연두로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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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안국사 전경 조망 ⓒ 이완우

 
신만은 병자호란 후 송시열 문하에서 학업 하였는데, 외아들이 천연두에 감염 사망하였다. 그는 향촌민의 질병과 고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용적인 의약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신만은 미륵원의 적선 전통이 의국(醫局)으로 운영되며 전해오는 대전 지역의 진잠 주촌(현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직접 약초 재배와 임상 등을 연구하고 소아의 질병 대처 방안을 많이 처방하여 보유신편을 저술했다.

이렇게 17세기 중반에 쓰인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을 200년 후인 19세기 중반에 상주의 안국사에서 간행하였고, 사찰 이름이 같은 함양의 안국사에서 지방의 유림과 사찰이 서로 소통하고 협조하여 백성들에게 필요한 의서를 간행하여 향촌에 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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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안국사 풍경 ⓒ 이완우

 
어른 열 명은 고칠지언정 소아 한 명은 고치기 어렵다. 소아는 오장 육부가 취약하고 기혈이 안정되지 않았다. 경락, 혈맥과 숨결이 가는 실과 같아서 허하기도 하며 실하기도 쉽고, 냉했다가 실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게다가 소아는 증상을 제대로 잘 설명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아픈 곳을 가리키지도 못한다. 이러한 동기로 17세기 후반에 신만이 보유신편을 집필하고, 19세기 중반에 상주 안국사와 함양 안국사에서 이 책자를 간행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소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우리나라에 안국사(寺)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사찰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들 사찰은 이름부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을 담고 있는데, 나라 국(國)은 왕조 시대에는 임금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발간한 함양 안국사에서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안국(安國)의 마음을 실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는 새롭게 전각을 건립하고 도량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찰 입구에 있는 고색창연한 4기의 부도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홍시가 매달린 낙엽 진 감나무와 색다른 대조를 이루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한 소중한 역사가 전해오는 함양의 안국사는, 지리산의 산줄기에 잘 어울리는 마음이 넉넉한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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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안국사 감나무 ⓒ 이완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지리산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함양금대산안국사 #소아과의서보유신편 #진잠주촌미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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