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를 때려죽여도 절대 남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가지게 된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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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기(safariboy)등록 2023.12.11 10:00
요즘따라 영화 '서울의 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의 봄' 개봉 3주차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코로나 시국으로 침체됐던 영화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소식이 군 인사들에 전해지는 것부터, 전두환과 그가 이끄는 하나회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작중에서 나오는 정치인 및 군인 이름들은 가명을 사용했지만, 영화는 그 인물들이 대략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새심한 배려를 해준다.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다. 배우 황정민과 정우성이 대치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 다음영화

 
예를 들어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의 경우, 이름과 걷모습에서 전두환을 연상시키고,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이름에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장태완을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박해준이 연기한 노태건은 노태우를 연상시키며, 정동환이 연기한 최한규는 최규하를 연상시킨다.

황정민이나 정우성이 연기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훌륭했으며, 대다수 조연들의 연기도 부족함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 보니, 영화는 신속한 전개와 더불어 중간에 빠져나오기 힘든 몰입력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중에서 언급 및 묘사되는 북한의 남침에 대한 것이다.

1. 김일성이 절대로 남침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 전두광

영화 상에서 북한의 남침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 나온 것은 크게 두번 있었다. 첫 번째는 김의성이 연기한 국방장관 오국상이 쿠데타 발발 직후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친 다음 미국 대사관 인사들에게 "북한이 침공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전두광이 원래 계획했던 대통령 재가 요청이 실패하고 난 이후 본부로 귀환하여 전방부대를 빼겠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하나회 인사들끼리의 대화 장면이다.

하나회 장선들은 전방에 있는 부대를 투입하겠다는 전두광의 계획에 대해, "북한괴뢰의 침공이 있으면 어쩔 것"이냐고 말한다. 여기서 전두광은 "김일성이를 때려죽여도 절대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발언을 한다. 즉, 자신들이 쿠데타를 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남침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알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발언일 것이다.

영화 상에서 전두광이 이런 발언을 하고난 이후에도 다시 한번 이 대사가 등장했다. 전두광을 포함한 하나회 장성급 인사들이 제2차 대통령 재가를 받으러가자 전두광의 친구인 노태건은 전방에 있는 병력을 빼서 서울에 투입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부대이동을 명령받은 전방부대 지휘관이 걱정하자, 노태건 또한 "김일성이가 절대 내려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설득시킨다.

영화 상에서 나온 이와 같은 발언은 아무리 봐도 북한에 대한 침공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로 그런 의문을 가졌을 만한 실제 역사적 근거가 있을지 한번 얘기해보도록 하자.

2. 실제로도 이런 확신이 있었을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

영화 상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실제로 12.12 쿠데타 전개과정에서 하나회 인사들은 전방에 있는 부대를 쿠데타에 동원했다.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제9사단을 동원했고, 이들은 서울 중앙청(과거 조선 총독부 건물)에 배치됐다.

사실 이 전방부대를 배치한 것은 노태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당시 동원된 제9사단의 사단장이 바로 노태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회가 쿠데타 과정에서 전방에 있는 부대를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방에 있는 부대는 북한과의 전쟁시 가장 먼저 동원되는 병력이고, 기본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대비하기 위한 병력이다. 즉, 그런 병력을 쿠데타에 동원했다는 것은 당시 신군부 세력들이 북한이 남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만약 북한이 침공할 위협이 당시 있었다면 전방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12.12 당시 미국 CIA 보고서 1979년 발생한 12.12 사태 직후 2-3개월내에 북한의 대규모 도발가능성을 예상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남한내 불안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는 특별 상황판단 보고서다. ⓒ 연합뉴스

 
거기다 1979년 당시의 한국과 1950년 당시 한국의 상황이 다른 점도 있다. 1950년 6월 25일 이른바 북한이 남침을 한 것은 힘의 균형에 있어서 북한이 남한보다 우세했기 때문이다. 장비나 무기 면에서도 한국이 우세했고, 미군 병력도 소수의 고문단수백 명을 제외하고선 거의 다 철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한국에는 수만 명의 미 지상군이 있었고, 이 병력은 최신식 미군 항공모함과 전투기의 화력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한반도에는 수백 개의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 북한이 남한을 대상으로 군사적인 침공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해볼 수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은 전제를 놓고 보자면, 당시 신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하면서 전방에 있는 병력을 동원한 것이 아주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걸리는 한 부분이 있다. 바로 미국의 움직임이다. 

당시 미국은 12.12 쿠데타 이후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50% 정도로 판단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고 한다. 이는 12.12가 끝난 지 8일 후 CIA가 작서한 "남한내 불안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는 특별 상황판단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다.(연합뉴스, 美, 12.12 당시 北 군사행동 가능성 `50%' 판단, 2009년 12월 9일.)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신군부가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 아주 배재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선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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