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갑종 출신이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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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섭(hansop5)등록 2023.12.13 13:02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금년 76세, 57년 동안 가수 활동을 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나훈아씨는 '테스형'이란 노래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세상이 왜 이리 힘드냐?'고 반문한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기득권층은 신을 믿지 않는 불경죄와 청소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사형을 선고하고 독배를 마시게 했다.

두 번의 성공한 쿠데타에는 육군참모총장 체포라는 거사가 가장 큰 변수였다. 1961.5.16 박정희 쿠데타에는 장도영 육참총장이 체포되었고, 1979.12.12 전두환 쿠데타에는 정승화 육참총장이 체포되었다. 장도영은 2군사령관 시절부터 이미 박정희의 거사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육참총장이 되어 장면 총리가 쿠데타 음모에 대해서 묻자 그럴리 없다며 부인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조선대에서 촬영했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장태완 수방사령관은 조선대 법대 58학번이고,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에 사망한 조민범 병장은 당시 조선대 전자공학과 77학번 정선엽이다. 조선대는 정선엽에 명예졸업장을 추진 중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출신이 어디냐'와 '우유부단하고 판단력이 없어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지도자는 악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본 필자는 2회에 걸쳐 칼럼을 게재하고자 한다.

장기집권하던 박정희 군부독재가 전두환 신군부로의 교체가 동시에 이뤄어 졌다. 첫 4년제교육으로 엘리트 의식이 강했던 전두환 등 육사 11기는 영남과 육사 출신들로만 구성된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1963년 결성한다. 동년 7월 박정희와 함께 반란의 주역인 육사 8기 때문에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선배 김종필 라인을 몰아내기 위해서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방첩대장은 정승화였다. 그러나 동향 출신 세력을 키우고팠던 박정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회 세력은 박정희와 나이 차이가 많아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종필이 장도영 육참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을 제거할 때 노태우 대위가 체포한다. 사석에서 '박 대통령은 노쇠했다. 형님(김종필)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윤필용 수경사령관을 보안사령관 강창성이 수사했다. 그리고 윤필용과 가까운 육사 11기 손영길을 통해 하나회를 파헤치려 했다. 하지만 박정희와 경호실장 박종규의 비호로 수사를 중단한다. 박정권 내내 영남 출신은 급부상했다. 이후 출신 지역은 인맥과 파벌 형성에 가장 큰 변수가 되었다. 그 후 강창성은 전두환 정권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반면 갑종 출신은 군부 내에서 육사 출신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갑종이란 초급장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1950년 개설된 6개월간의 군사교육과정으로 고졸이 지원할 수 있는 '갑종간부후보생' 들이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에 많이 참전했지만 12.12 군사반란 후에는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했다.

갑종 출신 장태완 소장이 전두환의 친척이며 하나회원인 부하 김상구 중령을 꾸짖자 '내가 당신보다 군사학을 더 공부하고 장교로 임관했다'며 장 소장에게 대든다. 완전 상명하복이다. 분노한 장 소장은 김 중령을 영창에 보내고 전역시킨다. 전두환이 장태완에게 악감정을 갖게 된 동기이다.

또한 정승화 육참총장이 장태완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하겠다고 하자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이 장군이 육사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고, 갑종 출신이라 그런지 답답한 느낌이라서, 조금 더 세련된 사람이 수경사에 맞지 않나'라며 불만을 나타낸다.

한때 전두환이 하나회 영관급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령 이하 잘 들어라. 느그들 서울대 갈 만큼 공부 잘했잖아, 근데 집구석에 돈 없고 빽 없어서 맥이주고 재워주는 육사 왔잖아. 근데, 조또 시험도 안 보고 들어온 노땅 똥차들(육사 8기 김종필 동기) 줄 서가 있으니까 아직 별도 못 달고 있잖아. 느그들 억울해 안 해!' 이처럼 전두환은 전쟁으로 인해 교육 기간이 짧았던 육사 선배들까지 깔보고 무시했다.

박정희는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앉혔다. 그리고 전시나 계엄 하에서는 보안사가 중앙정보부와 검찰, 경찰 등 모든 수사 권력을 통제하도록 했다. 보안사령관이 된 전두환은 갑자기 경제 공부를 한다.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이발료와 대중목욕탕 값을 단일 요금으로 물가를 잡으며, 통화를 안정적으로 이끌던 박정희의 국가개입주의보다 미국의 레이건 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에 힘입어 신자유주의를 도입한다.

전두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포병학교 출신으로 권력 서열 위인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정부장 김재규가 동시에 사라진다. 전두환은 비공식 권력 서열 넘버 1이 되었다. 그리고 무소불위의 폭군이 되어 거칠 것 없는 행보를 이어 간다. 시민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잔인한 군홧발 밑에서 폭력과 감금으로 고통의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리고 광주민중학살이 정점을 이룬다. 서울의 봄은 잔인했다. 미국은 흐뭇한 시선으로 전두환 일당을 다독인다.

출처 : 우리뉴스(민영뉴스통신사)(http://www.woor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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