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학교들의 방학이 다가오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적과 생활을 정리하며 가장 분주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는 순간부터 결석계 제출, 생활기록부 입력에 관한 안내, 방학생활 관련한 교육청 지시, 학생들에게 안내해야하는 일들과 제출해야하는 중요한 일들이 매일 매일 산더미처럼 쌓이기 마련이라 한 켠에 할일을 적어두면서 신경을 집중하며 지내게 된다. 이런 많은 일들 중, 교육청에서 학교에 시한을 정해 입력을 요구하는 집계자료들과 한 해 동안 따로 받은 공모 사업 등의 예산에 따른 결산보고를 하는 일들은 기한이 정해져있기도 하고, 행정실과 교사들의 협조가 이루어져야하는 복잡한 일들인 경우가 많아 바쁜 학기말 상황에서는 담당 교사들의 큰 업무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우리학교는 겨울방학에 '석면공사'를 하게 되어 있어 여름방학을 줄여 겨울방학을 빨리 시행하는 바람에, 이 모든 보고서를 방학 중 학교에 출근해서 해야했다. 보고서를 쓰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들고, 행정실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며 두세 가지 일을 빨리 완료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 뿐이었다. 교사들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으니 일이 끝나지지 않는 상황이 더욱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온 공문 하나가 일을 하나 더 만들었다. 행정실에서 느닷없이 '성립전예산 요구'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당연히 차기년도 예산일 것이라 생각하고 내년 담당자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12월 28일에 학교로 넘어오는 예산 80만원은 2023년도의 예산이었다. 설상가상 1월 25일까지 사용을 완료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당구장 표시 옆 '잔액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면서.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2023 교육활동 보호 환경 조성' 사업에 의한 예산재배정이라는데, 2023 교육활동을 위한 예산이 12월 28일에 내려보내면서 '신속히 추진'하라고 하니, 이런 한심한 노릇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일선 교사로서의 비애가 몰려온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와 어떤 계획으로 이런 식의 사업이 집행되는 것일까. 9월 4일 교사들의 대규모 연가파업 이후, 여론에 밀려 앞다투어 교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던 와중에 뒤늦게 계획되고 집행되느라 예산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12월 28일에 줬어도 예산을 쓴 것이니, 2023년 사업 결과로 보고될 것이다. 한 학교에 80만원, 관내 전체 학교 208개면 1억 6천만원이 넘고, 여기에 면담조성을 해주기로 한 학교가 41개이니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지원규모는 관내 모든 학교이며, 지원내역은 녹음전화기, 호출장치 등을 구입하거나 교권관련 연수를 하라고 한다. 이미 방학을 한 상황에서 연수를? 어처구니 없지만 정신줄 잡고 일을 추진하려고 하니 막상 살 것이 별로 없었다. 전체 교사 50명에게 80만원으로 어떤 유의미한 지원을 할 수 있을까. 이미 학교 전화기는 외부전화에 대해 녹음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 핸드폰이나 학급에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개별적인 녹음기를 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지난 9월 4일 이후 경기도교육감의 한 언론사 인터뷰가 생각났다. 파이낸셜뉴스(2023.09.05) 인터뷰에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교사 동의 없는 녹취는 신뢰를 깨는 일'이라며,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통해 녹취한 내용이 재판과정에서 증거 채택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것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라고 했다. 거기에 '만약 녹취파일이 유죄증거로 채택되면 학교현장이 어떻게 되겠냐, 교사들에 대한 녹음이 횡행해진'다면서 '교육청은 녹취파일이 재판에서 유죄증거로 채택이 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동의 없는 메시지 녹음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교육부는 국가시책이라며 특별교부금을 올해 쓰라고 올해 말에 내려보내주고, 교육감은 녹취가 불법이고 메시지 녹음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데, 일선 교사들은 어느 장단에 어떤 춤을 추라는 것인가. #교권 #교권예산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