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비치는 거실 소파에서 나른한 오수를 즐기는데 휴대전화가 짤막한 알람 소리를 냈다. [충성!! 전투 지원중대 대위 000입니다.] 비몽사몽 같았던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혹시 아들 녀석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걸까? 이제 군대 간지 겨우 6개월 된 아들이 떠올랐다. 긴장된 눈으로 세심하게 훑어 읽었다. [밤이 길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초겨울 우리 전투 지원중대 장병 부모님들을 부대에 초청하려고 합니다.] 라는 문자로 아들의 군대 생활을 보여주기 위한 부대개방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취지였다. 참석을 위한 인적 사항은 00일까지 보내달라는 것으로 문자는 끝났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 면회를 언제 갈까, 생각했는데 부대에서 초청 이벤트를 연다고 하니 잘됐다고 여겨 인적 사항을 보냈다. 주요 이벤트는 생활관 견학, 중식 및 PX체험, 장갑차 시승이 있고, 점심 이후엔 가족과 외출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저녁 8시까지 부대 복귀를 해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지만. 아들이 있는 부대는 전남 순천으로 우리가 사는 경기도 안양하곤 꽤 거리가 있었다. 훈련은 충북 증평에서 받았기에 자대배치도 충청도로 받지 않을까 했는데 순천으로 떨어졌다. 생각보다 너무 먼 곳으로 갔기에 아들은 휴가받아 갈 테니 힘들게 면회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부대개방행사 문자가 온 거다. 아들 볼 생각을 하니 괜스레 마음과 기분이 들떴다. 하루하루 손꼽아 날을 새며 드디어 순천으로 가는 당일이 됐다. 그날은 딸아이도 재량수업으로 대체하고 함께 갔다. 딸도 오빠 볼 생각에 기대감이 잔뜩 서렸는지 고속도로 체증에도 짜증 내지 않고 조잘조잘 엄마·아빠에게 수다를 떨었다. 늦게 순천에 도착해 예약한 숙소에서 설레고 들뜬 밤을 지새운 후, 조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아들이 있는 부대로 9시 30분 약속한 시각에 도착했다. 우리뿐 아니라 꽤 많은 가족이 대기 된 장소에 와 있었다. 따뜻한 커피와 과자들이 놓인 테이블을 가리키며 드시라고 권하는 군인들이 유난히 살갑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우리의 도착을 알렸는지 아들이 대기 장소로 들어왔다. 고작 반년 만에 보는 데도 꼭 6년 만에 보는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군에서도 휴대전화가 가능해, 가끔 카톡이나 문자 혹은 짧은 통화를 간간이 했지만 직접 얼굴 보는 건은 또 다른 의미였다. 코끝이 찡해지고 울컥하는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올라왔다. 이건 새끼를 가진 어미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파릇하게 잘려진 짧은 머리, 집에선 결코 보지 못했던 아들의 긴장감 흐르는 눈빛과 절도 있는 자세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짠했다. 정식 행사 진행을 알리며 부대 인사와 함께 TV 모니터엔 아들이 몸담은 부대에 대한 자료화면이 흘러나왔다. 보던 남편이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자신이 경험했던 30년 전 군생활하고 비교하려니 그야말로 '최첨단'과 '최신식'이었나 보다. 요즘 'MZ' 세대를 겨냥한 군대라는 게 실감 난다고 내게 작게 귀띔하여 줬다. 오프닝 행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아들들이 지내는 생활관 견학을 위해 모인 가족들이 이동했다. 우리도 그 틈에 끼여 아들이 있다는 생활관 3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여자이고 군대 경험은 친정 오빠 면회가 전부여서 군대 내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간접적인 체험은 TV나 영화,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진이 다였기에 실제 내무반이 너무도 궁금했다. 기다란 평상 같은 마루에 카키색 모포를 일렬로 쭉 덮고 자는 모습만 생각했던 내게 아들이 지내는 생활관 내무반은 뜻밖의 반전이었다. 개인별 침상을 물론이고 그것도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가늠해 개인공간 노출을 상대에게 최소화하게끔 배치가 되어 있었다. 침대와 작은 협탁이 한 세트로 된 내무반을 보고 내 머릿속에 박힌 이미지가 얼마나 '구닥다리'였는지 알게 됐다. 쉬는 시간엔 자기 공간에서 책이나 휴대전화를 보는 군인을 보며 경직된 규율이 아닌 규칙 속에서 자율을 누리는 그들이 오히려 듬직해 보였다. 아들을 군에 보내놓고 잠자리는 불편할까, 먹는 건 괜찮을까, 생활은 힘들지 않을까 온갖 걱정을 했는데 부대개방 행사 참여로 그런 걱정 절반 이상이 없어졌다. 중식 체험에서 먹은 식단도 짬밥이라는 게 옛말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밥이 찰졌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 먹은 점심보다 군대 밥이 더 괜찮고 맛있다고 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브런치 타임이 있어 파스타나 샌드위치, 시리얼이 나와 각자 취향에 따라 먹게끔 되어 있다고도 했다. 이벤트 마지막인 PX 체험 땐 부대 방문한 모든 부모가 플렉스로 변신했다. 저렴한 상품을 구경하고 사면서 즐거워했다. 나 또한 아들 입대를 함께 챙겨준 지인들에게 선물할 그 유명한 '군대표 달팽이 크림'을 사느라 손이 바빴다. 잔뜩 산 제품들을 트렁크에 챙기는 다른 가족들과 마주 보며 함께 웃었다. PX 체험을 끝으로 아들과 외출해 순천만 갈대숲을 구경하고 먹고 싶다던 초밥을 저녁으로 사주곤 부대로 되돌아갔다. 저녁 8시가 복귀 시간이지만 혹시 늦어 탈영병으로 오해 살까 1시간 정도 빨리 부대 앞에 도착하니 부모 마음이 모두 같은지 속속 군인 아들 태운 차들이 부대로 들어왔다.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웬일로 아들을 힘껏 껴안아 줬다. 말로 표현하는 게 어색하고 힘들었는지 포옹하는 것으로 아들을 향한 마음을 꺼냈다. 나와 딸도 차례로 아들을 안아줬다. 대견하고 늠름해서, 또 건강하게 잘 지내는 아들이 자랑스러워서 말이다. 아들이 증평 훈련소 입대할 때 사단장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성스럽고 건강하게 키워 나라를 지키는 군대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에 처음으로 내가 부모인 것에 우쭐대고 싶었다. 물론 남들도 다 가는 군대, 뭐가 그리 특별해 우쭐대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남들도 다 하는걸' 하는 것이다. 가장 보통적이고 가장 평범한 것이 실은 엄청난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걸 난 경험했고 아직도 경험하는 중이다. 남들도 다 하는 18개월 군대 생활을 무난하게 별 탈 없이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오늘은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야겠다. "아들, 사랑해. 씩씩하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제대하는 날이 올 거야. 그때까지 파이팅!" 덧붙이는 글 없음 #군대체험 #군대개방행사사 #전남순천 #군대견학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