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전, 나를 위로한 질문 하나 퇴직을 10여 년 남겨둔 시점부터 그 후의 내 삶을 생각하곤 했다. 어떤 일이든 미리미리 준비해야 안심이 되는 나의 성향에, 가까운 선배님들의 조언이 더해지면서 생각의 빈도는 많아졌다. 남은 기간이 한 자리 숫자가 되면서 세월은 급물살을 탄 듯 흘러갔다. 한 학교나 기관의 근무 기간을 마치고 나면 퇴직이 불쑥불쑥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세월의 속도만큼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은 가중되었다. 그러나 생각을 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건강이 제일이라든지, 일정하게 할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등 원론적인 생각들만 들락거리며 머리를 헤집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또 하루를 보내나?' 혹여 이런 생각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게 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일었다. 즈음에 갓 출간된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다. 작가는, 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기 결정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몇 가지가 떠 올랐다. 그중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집중하여 오랜 시간을 보내는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있긴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의 흡연과 오랜 교사(수업) 생활이 습관이 되어 집중하는 시간이 1시간을 넘지 못했다. 유독 그 일만은 예외였다. 어떤 경우는 3시간 이상을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했다. 그 시간이 행복했다. 퇴직을 하면 그 일을 주로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을 다른 사람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얄팍한 재주들 중에 내가 선정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주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나니 그 동안 가졌던 퇴직 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여백을 메우는 일이 되었다. 그 일은 퇴직 후의 직업이 되기도 했다. 퇴직 후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국외 여행을 했다. 대상 나라의 착륙을 앞두고 입국 카드를 써야 했다. 직업을 적어야 할 메모란에서 내 펜은 한참을 방황했다. 교사(teacher)'라고 쉽게 적은 아내가 부러웠다. '무직'(inoccupation)' 이라는 영어 단어를 겨우 생각해 낼 즈음,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teacher 보다 쉽고 간단한 그 단어를 일러 주었다. 픽 웃었다. 그 일은 자녀들이 아버지를 새롭게 인식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는 무엇이기도 하다. 40여년 동안 교직이라는 한 가지 일만 하다가 퇴직한 현재의 아버지를 자녀들은 어떻게 인식할까. 자녀들에게 누군가가 "너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니?"하고 물었을 때 내 자녀들은 무엇이라 답하고 소개할 수 있을까. 나의 퇴직 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하나는 내 아이들에게 명쾌한 답을 주었다. 평균 수명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는 우리의 미래이다. 언제까지나 '전직'으로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