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리는 다른 방법들

: 문경 화재 소방관 순직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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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성(antier)등록 2024.02.05 09:44
지난 1월 31일 경북 문경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인해 소방관 2명이 순직하였습니다. 해당 순직 사건과 이어진 영결식에 대해서는 관련 보도가 나왔으며, 최근 며칠 사이에는 소방관들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고, 정부 예산이 줄어들면서 영결식 예산도 줄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건을 바라보면서 늘 잊고 넘어가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소방관이든 경찰이든 군인이든, 순직한 이들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자녀이며, 기혼자라면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자녀가 있었다면 그 자신이 부모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난 분의 죽음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녀이자 남편이나 아내이자 부모를 잃은 유가족의 고통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사건에서 소방관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안타깝기는 하지만, 종종 발생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혹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금이 지원되는지 궁금해졌습니까? 아니면 소방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면서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해 보셨습니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자동적으로 '보상'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집단무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자동 사고는 상식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가 죽으면 먼저 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공감하고, 이후 그들이 슬픔을 극복해 갈 수 있도록 도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회적 참사들을 겪으면서 그 순서가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하간에 우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희생된 '국가유공자'의 순직 사건을 대할 때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재 기사에서는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이 처하는 곤경을 탐색하고, 우리 사회가 유가족의 적응을 돕고 국가유공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국가유공자의 희생 이면에 있는 유가족의 삶을 헤아려야 합니다 ⓒ 권지성

 

이럴 때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결혼하고 2세와 4세의 두 자녀를 둔 만 36세의 남성 소방관이 순직하였다면, 그로 인해 가장 고통스러워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를 낳아 기르고 몇 년 전에 독립시킨 부모님일까요? 결혼한 지 5년 만에 남편을 잃은 배우자일까요? 이제 말을 배우고 놀기 좋아하는 자녀들일까요? 대부분의 경우 배우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그 부모일 것 같습니다. 국가유공자의 배우자에게는 시부모님이 되겠죠. 두 살배기와 네 살짜리 아이는 머지않아 떠난 부모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겠지만, 당분간 그것을 고통으로까지 느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는 곤경의 일부분을 경제적 궁핍이 차지할 수 있습니다. 늘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기사의 순서도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국가유공자의 배우자가 경험하는 곤경, 둘째, 국가유공자의 부모가 겪는 고통, 셋째, 국가유공자의 자녀가 겪을 어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다루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2023년에 국가보훈부와 함께 '히어로즈패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발주한 연구용역의 책임을 맡아 국가유공자인 <전몰순직군경 유가족 지원방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전몰순직군경'이란 '군인이나 경찰, 소방공무원으로서 각각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같이 전투에 준하는 사건으로 사망하는 군인도 있고, 전투기 조종사가 일상 훈련을 수행하다가 추락하거나 구조헬기 추락으로 해경이 사망하는 경우, 화재진압 중 소방관이 사망하는 경우, 범죄 진압 중에 경찰관이 사망하는 경우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군 장교 3명, 부사관 3명, 경찰관 3명, 소방관 3명의 배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의 보고서는 2월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이 연구에서 위 네 가지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모두 탐색되었기 때문에 차례대로 풀어가 보겠습니다. 다만, 연구보고서가 아직 발간되지 않았고, 연구윤리 이슈를 고려하여 연구보고서와 그 안에 담긴 인터뷰 녹취록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첫 번째 주제인 국가유공자의 배우자가 경험하는 곤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사례를 다루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 배우자의 예를 들고, 거기에 다른 분들의 경험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5년 전에 결혼해서 2세와 4세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다가 어느 날 화재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남성 소방관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 배우자인 여성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소득을 공유하면서 전업주부로 지낸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편의 직장인 소방서에서 전화가 왔고, 사고로 남편이 위중한 상태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결국 남편이 사망했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후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방당국(그리고 경찰관은 경찰당국, 군인은 군 당국)은 프로토콜에 따라 사건 수습과 원인 규명을 한 뒤 사망과 순직 처리절차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 중에 영결식이나 장례식도 치러집니다. 그리고 관련 당국은 역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배우자의 동의 및 서류처리 작업 등을 돕습니다.
 
이제 배우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은 배우자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다수의 배우자들이 진술한 말을 종합하면, '그저 멍해졌습니다'. 남편의 사망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뿐더러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다수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 것은 언제쯤이었을까요? 어떤 이는 장례를 치른 후에 실감하게 되었다고 했고,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해경의 배우자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투기를 몰고 나갔다가 사망한 공군 조종사의 아내는 7년이 지나서야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장례식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어쩌면 배우자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냈을 동료 소방관들과 경찰관, 군인들은 배우자만큼이나 큰 슬픔을 느끼며 장례식에 와서 배우자를 위로해 줍니다. 예상하다시피 상관들이나 높으신 분들의 방문과 위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아파하고 위로하는 동료들도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거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안전장비를 꼭 챙겨서' 또는 '지원인력이 오면 들어가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은 오히려 원망의 꼬투리가 되었습니다. 다수의 배우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직장 동료와 상사들을 한동안 원망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회적 관계망의 구성원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들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거나 '죽음에는 뜻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유가족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지?'라고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배우자들의 다수가 공통적으로 한 말은 이런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하고 있는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특별한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다가와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들으면서 마음을 헤아려주고,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것을 챙겨주면 된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배우자들에게는 그런 사람이 1명씩은 있었습니다. 친정엄마인 경우도 있고, 친언니도 있었으며, 아주 오래된 친구, 교회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모든 배우자에게는 이런 사람이 꼭 한 명 이상 필요합니다.
 
장례가 끝나고 순직 처리가 된 이후에는 행정절차에 의해 보상금과 유가족 연금수당 등이 지급되기 시작합니다. 이밖에 군과 경찰, 소방당국이 특별히 더 해주는 일은 없습니다. 이 사안은 네 번째 꼭지로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사망 사건과 장례 절차, 이후 짧으면 4주, 보통 3개월 정도의 위기국면이 지나고 나면, 배우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친정이나 시댁, 형제, 친구 등이 어떻게 해서든 돌봐주던 자녀들을 다시 수습해서 양육해야 합니다. 주된 또는 유일한 소득원이었던 남편이 사라졌으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이 필요합니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에서 유족연금이 제공되고 국가유공자 보상금과 유족연금, 그리고 위험직무수당까지 추가되면, 남편이 벌어오던 만큼의 수입은 아니지만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며 살기에 아주 어려운 형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 배우자들은 개인적인 상황들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렵다고 토로했지만, 다수의 배우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크지 않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국면에서 실제로 배우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계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압도하는 슬픔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다수의 배우자들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에 갇힌 채' 오랫동안 깊은 우울감을 느꼈으며, 차량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어떤 배우자는 한동안 운전조차 할 수 없었고, 한 달이 넘도록 매일 눈물을 쏟은 배우자도 있으며, 공황 상태에 빠졌던 배우자도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로 느낀 배우자들은 주위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회적 고립 상태가 된 배우자도 많았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확산되어 몸의 질병으로 이어진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웅크려 지내다 보니 허리에 병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내장기관에 병이 생긴 경우들도 있습니다. 마음은 고통스럽고, 몸은 아프고, 사람들과 관계도 끊어지니 점점 더 힘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도 정신의학과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거나 심리치료상담을 받은 배우자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치료자들이 내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아이를 데리고 그럴 정신이 없어서'라는 답변이 다수였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배우자들은 혼자서 이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다시 '만약 믿을만한 정신의학과 의사나 심리치료사가 있다면 치료를 받겠는가?'라고 물었는데, 역시 대부분은 '그 당시에 필요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치료를 받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은, 앞서 언급한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 그리고 군, 경찰, 소방 영역에서 같은 고통을 겪는 유공자 배우자들의 자조모임 구성원들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치료와 개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슬픔과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구성원들은 현실적인 도움과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 주거와 직업을 연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갈까요? 연구 참여자들에게서 나타난 적응기간의 범위는 매우 넓었습니다. 어떤 이는 6개월 정도 걸렸다고 했고, 다수는 1년에서 3년 사이에 세상으로 다시 나오기 시작했으며, 어떤 이는 7년이 지나서야 혼자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적응이란 무엇일까요?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기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사회와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이슈가 하나 있었습니다. '밝게 웃어도 되는 타이밍'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의 장례식에서도 웃음을 띌 때가 있고, 적어도 장례식이 끝난 뒤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밝게 웃는데 거리낌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 참여한 일부 배우자들은 장례식에서도 그랬지만, 그후로도 한동안 '함부로 밝게 웃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어쩌면 이 '밝은 웃음'을 볼 수 있는 때가 적응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우자들이 공통적으로 진술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남편이 집 현관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 공통 경험은 대체로 3년 정도는 이어지는 것으로 보이며, 이미 7년이 지난 배우자 한 분은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배우자들에게 남편의 죽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 배우자 중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분이, 그리고 나머지 모든 배우자들이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가게 해준 가장 강력한 힘은 '자녀의 존재'였습니다. 연구 참여자들 중에는 남편이 사망했을 때 아기가 이제 막 돌이 된 경우가 2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참여자들에게는 미성년 자녀가 있었는데, 이 자녀들 때문에 지금까지 힘든 적도 많았지만, 모든 배우자들은 '자녀 덕분에'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과 관련된 경험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봐야합니다. 다음 기사에서 부모들의 경험을 탐색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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