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걷다

[안나푸르나 푼힐/베이스캠프 도보여행 6]

검토 완료

최성(choisung)등록 2024.02.07 12:41
  2024년 1월 10일부터 19일까지 10일 동안 '혜초여행'이 주관하는 '[안나푸르나] 푼힐/베이스캠프'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10회에 걸쳐 날짜에 따라 여행기를 쓴다.
 
흐리고 비, 눈(1월 15일)
 
시누와(2,360m) - 밤부(2,360m) - 도반(2,600m) - 히말라아(2,920m) - 데우랄리(3,200m)
 
  새벽에 별을 보려고 롯지 마당에 나왔다. 하늘이 깜깜했다. 바람이 조금 불었다. 공기에서 눅눅한 물기운이 느껴졌다. 앞으로 날씨가 맑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날씨는 언제나 원망의 대상이다. 흐리면 밝기를, 비가 오면 날이 개기를, 너무 맑은 날이 계속되면 비가 오기를 사람들이 바란다. 언제부턴가 비가 오면, 눈이 오면, 맑으면, 흐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대책을 준비할 일이지 날씨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밤부 가는 길에서 본 폭포 히말리아에서 폭포는 언제나 우리 상상을 뛰어 넘는다. ⓒ 최성

 
  시누와부터 데우랄리까지 11km를 걷고 해발고도 800m를 올라야 해서 3일 연속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시누와에서 출발하여 판석으로 깔아 계단으로 정비된 산길을 계속 올랐다. 길 곳곳에서 바위에 정을 끼우고 망치로 때려 판석으로 떼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길을 걷는 내내 많은 물이 급하게 흐르면서 내는 큰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지름이 1~2cm 정도 되는 대나무가 대부분이고 나무들이 우거진 밀림 같은 길을 오르내리며 밤부에 도착했다.
 

밤부로 가는 길 대나무와 나무, 이끼가 우거진 밀림 ⓒ 최성

 
  밤부에서 점심으로 수제비가 나왔다. 계속 움직여 시장기가 있는 상태라 모든 음식이 달게 느껴지겠지만 산행 중에 요리되어 나오는 음식이 절대적으로 맛있다. 네팔에서 '한식요리대회'가 열리는데, 우리 일행의 요리를 책임지는 수석요리사는 그 대회에서 준우승했다고 한다. 요리부는 수석요리사를 포함해서 5명이다. 모든 요리 기구와 그릇, 열기구까지 계속 운반하면서 모든 요리를 책임진다. 열기구 담당은 연료까지 전담하고, 요리 기구, 그릇, 음식 재료 등이 철저하게 분담되어 있다. 이들로 인해 걷는 여행이 지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런 내색 없이 묵묵하게 자기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그들의 태도가 고맙다.

  구름이 낮게 내려와 멀리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도반에 도착했다. 쉬었다 출발하려는데 낮게 깔린 구름은 비로 변했다. 짐가방과 배낭에 짐을 비닐봉투에 넣은 것밖에 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나는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겨울 산에서 비에 대한 대책이 없음은 치명적이다. 비가 많이 오지 않고 눈으로 바뀌기 바랬다. 해발고도가 오르니 기온이 떨어져 추워졌다.

  히말라야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비가 왔다. 다른 사람들은 비옷이나 방수용 옷으로 비를 대비하는데 나는 대책이 없었다. 2014년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베이스캠프 도보여행' 15일 동안 비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비에 대한 대책 없이 그냥 왔다. 오래전에 입었던 얇은 방수용 옷을 겨울 외투 위에 입었다. 비를 많이 맞으면 속에 있는 옷도 젖을 것이 분명했다. 롯지 상점에 비옷이 있냐고 물으니 비닐봉투를 300루피라며 내밀었다. 그냥 견디기로 했다.
 

폭포와 불탑 도반 가는 길에 본 풍경 ⓒ 최성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길이 거대한 폭포가 되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폭포 앞에는 불탑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안전을 빌고,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경외감을 갖는 마음이 불탑을 정성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해발고도를 올리자 비는 점점 눈으로 변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은 수시로 털어버리면 된다.

  산사태로 한국 사람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지점을 지났다. 흙과 바위가 쓸려가서 계곡으로 변한 곳이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한국 중학생들을 만났다. 비닐봉지를 비옷 대용으로 쓰며 걷는 학생들에게 외쳤다.
  "힘내!"
  "고맙습니다!"
  비가 오는 궂은날에 이들의 존재만으로 공기가 밝아졌다. 해발고도를 올리자 비는 완전히 눈으로 바뀌었다. 나에게는 크게 다행이다.
 

히말라야 가는 길 시누와에서 데우랄리 가는 길은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이다. ⓒ 최성

 
  데우랄리에 있는 드림롯지(Dream Lodge)에 도착했다. 서둘러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해발고도 3,200m이고 바로 옆에서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서 공기가 대단히 차갑다.

  '하루 내내 힘들게 걸어야 하고, 추위에 고생해야 하는 일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참가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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