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고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은 꽤 오랜 기간 에버랜드 연간 회원이었다. 키즈카페 대신, 공원 대신 별다른 계획이 없는 주말엔 무조건 에버랜드 행이었다. 6년의 기간 동안 연간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시설도 서비스도 만족감이 컸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연간 회원등록을 그만둔 건 코로나가 유행하던 2020년부터였다.
▲ 에버랜드 인기스타 푸바오 2024년 4월 푸바오는 중국 쓰촨성으로 이동한다 ⓒ 구혜은
에버랜드 출입을 중단했을 무렵부터 푸바오가 인기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튜브, 서적, 각종 매체를 통해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받는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우리가 한창 출근 도장을 찍던 그 시절에는 푸바오는 에버랜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판다였다. 아직도 우리 집에는 '새끼 판다(푸바오) 탄생 기념' 팝콘 통이 남아있다.
아이들은 '스타'가 된 푸바오를 만나고 싶어 했다.
"너희 자주 봤잖아. 맨날 보던 판다가 바로 푸바오야."
"알아, 엄마 아는데, 그때 그 푸바오는 지금 푸바오가 아니야! 난 지금의 푸바오를 만나고 싶다고!"
큰맘 먹고 자유이용권 입장료를 구매했다. 중국 반환 결정이 된 푸바오는 올 3월까지만 대중 앞에 선다고 했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남매는 신났다. 입춘을 넘긴 2월의 햇살은 따뜻했다. 다소 찬 바람이 불긴 했지만 봄의 바람은 달랐다. 먼지 쌓인 팝콘 통을 찾아 씻어두는 준비까지 완벽했다. 큰아이는 푸바오 팝콘 통을 목에 걸었다.
▲ 매직트리 대신 대형 푸바오 23년 5월 화재로 전소된 매직트리 자리에 대형 푸바오 인형이 섰다. ⓒ 구혜은
매직 트리가 있던 자리엔 대형 푸바오가 섰다. 큰아이 말에 의하면 화재로 트리가 전소되어 교체된 거라 했다. (역시 에버랜드 소식통이다. 푸바오로 시작한 판다 앓이는 에버랜드 실시간 뉴스와 소식을 찾아보게 만들고 각종 쇼츠와 홍보 영상까지 모조리 섭렵한 그녀다.)
에버랜드 지리엔 훤한 우리다. 넷의 발걸음은 판다 월드로 향한다. 그런데 웬걸 줄이 끝이 없다. 느린 걸음으로 줄의 꼬리를 찾던 나는 어느새 뛰기 시작한다. 시크릿 쥬쥬를 지나 대관람차를 지나고 지나서 롤링 엑스트레인까지 줄의 행렬은 끝이 없다.
'대체 이 줄의 끝이 어디란 말이냐?'
줄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오기도 생겼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아쉽지만 판다 월드는 포기하기로…. 푸바오를 포기하니 썰렁한 에버랜드가 보인다. 그 많은 인파는 모두 판다 줄이다. 거리가 휑하다. 문 닫은 식당도 상점도 심심찮게 보인다. 운행하지 않는 놀이기구도 상당수다. 비수기라서 그럴까? 폐장 앞둔 직전 같다. 놀이동산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푸바오를 포기하고 간 곳은 로스트밸리였다. 초식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코스에 물속과 육지를 동시에 오가는 수륙양용차 타는 재미가 쏠쏠했던 코스였는데 이제 더 이상 수륙양용차는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이라 일시 중단인가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2020년부터 운행 중단되었다고 한다. 겹겹이 아쉬움이 쌓인다.
▲ 조도를 낮춘 조명 조도를 낮춘 조명탓에 야간개장의 신남이 사라졌다 ⓒ 구혜은
어둠이 내렸다. 이날은 7시 폐장이라고 했다. 이른 시각이다. 퍼레이드도 불꽃놀이도 없었다. 에버랜드 불꽃놀이 덕에 서울시에서 해마다 열리는 한강 불꽃축제를 보지 못해도 아쉬움이 없던 나다. 해가 지고 들어온 조명도 조도를 낮춰 생기가 없다. 야간 놀이동산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이 시간만큼은 '환상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해준다. 기분을 높여주는 일등 공신인데 조명마저 생기가 없다.
"에버랜드가 아니고 판다 월드네."
"판다 말고는 다 예전 같지 않아. "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놀이동산은 사라지고 푸바오만 있구나."
평일 연차를 통으로 바친 에버랜드 행은 아쉬움만 가득했다. 4월이면 중국 쓰촨성으로 이동하는 푸바오, 다시는 한국에서 보지 못할 푸바오다. 하지만 판다에게만 집중된 에버랜드의 영업은 오랜 기간 애용했던 소비자로서 실망스러웠다.
푸바오가 떠난 에버랜드의 봄을 기대해도 될까? 판다를 빼도 여전히 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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