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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옆에 이승만 기념관? 시민들은 "시대착오적"

[현장] 송현광장 찾은 시민들 "이승만도 문제지만, 열린 공유지 일방적 사용 반대"

등록 2024.02.26 16:18수정 2024.02.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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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 왼쪽으로 경복궁과 청와대가 보인다. ⓒ 권우성

 
"시대착오적이죠. 정말 열받아요."

26일 오후 12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아래 송현광장)에서 만난 50대 직장인 여성 정아무개씨는 광장에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 동료와 서너 차례 광장을 돌았다'는 정씨는 "안 그래도 이승만 기념관 짓는다는 뉴스를 보고 와서 기분이 나빴다"며 "봄에는 꽃을 심어 (경관) 보기가 얼마나 좋은데 그만 손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씨의 직장 동료인 고아무개씨도 "밥 먹고 여기 산책하러 오는 게 하루일과인데 이 좋은 공간에 왜 건물을 또 짓겠다는 것이냐"며 "여기는 도심의 허파다.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재충전한다"고 지적했다.

시민 위해 "비우겠다"더니... '이승만 기념관' 제안한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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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2시께 방문한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의 모습. ⓒ 김화빈

 
경복궁 동편에 있는 송현광장은 부지 면적만 3만7117㎡로 서울광장의 약 3배에 이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송현광장 부지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은행 사택으로, 광복 후에는 미군·미 대사관 숙소로 활용되다가 1997년 정부에 반환됐다. 높이 4m 담장에 둘러싸인 채 방치됐던 송현광장은 서울시로 소유권이 넘어오며 돌담을 낮추고 야생화로 어우러진 녹지로 탈바꿈돼 2022년 7월 시민에게 개방됐다. 광장을 가로지르면 청와대, 광화문광장, 인사동, 북촌 골목길로 연결된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송현광장에 어떤 시설도 들이지 않겠다던 약속을 뒤집었다. 

오 시장은 지난 23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2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된 게 일종의 공론화와 공감대 형성 과정"이라며 "(이승만 기념관의) 입지가 어디가 바람직한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송현광장은)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곳"이라면서 "지난번에 건립추진위원회가 서울시를 방문해 논의할 때 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전제로 송현동도 검토하겠다고 결론이 났다"며 송현광장을 유력 후보지로 거론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지난해 5월 "(송현광장처럼)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비어있는 곳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완전히 비워놓고 싶은 게 바람"이라며 조성 중인 '이건희미술관' 외에 더는 시설물을 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여러 차례 (시청) 부서에서도 외부에서도 무엇은 여기 세우겠다고 하는데, 미리 원칙을 천명하는 만큼 어떤 시도도 없었으면 (한다)"이라며 "요청이 있을 때 거절하는 것도 큰일이라 미리 말씀드린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서울 어디든 5분 거리에 정원 만나게..." / 오세훈 시장, '정원도시 서울' 구상 발표 https://omn.kr/242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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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5월 24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정원도시 서울'기자설명회에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다수 시민들 "제발 내버려둬라"·"극우화 현상" 비판... 일부는 "무조건 찬성"

같은 날 오후 12시께 송현광장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시민이 한 손에 음료를 든 채 담소를 나누며 거닐고 있었다. 중년 남성은 이어폰을 꽂고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아이들은 습지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시민, 유아차를 끌고 나온 부모, 관광객까지 다양한 이들이 광장을 찾았다.

<오마이뉴스>와 광장에서 만난 10여 명의 시민들은 1년 전 오 시장의 말처럼 "도심에 이렇게 뻥 뚫린 개방감 있는 공간이 어딨냐"고 치켜세웠다. 동시에 "모두가 함께 쓰는 '공유지'에 영화 흥행을 이유로 평가가 엇갈린 이의 '기념관'을 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시민들의) 합의 없는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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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2시께 방문한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의 모습. ⓒ 김화빈

 
취재진이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송현광장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다.

이날 송현광장 초입 벤치에 앉아있던 50대 금융회사 종사자 조아무개씨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결사반대"라며 "이승만을 좋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이승만이 아니더라도 시민 쉼터에 불필요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면 공사하고 시끄러울 거다. 완공되면 시청 앞이나 탑골공원처럼 태극기 집회하는 사람들이 손팻말을 들고 몰려들어 스피커를 켜 시위할까 무섭다"며 "서울 같은 메가시티에 나무와 습지가 있고, 새소리가 가득한 곳이 어딨나. 우리에겐 돈을 내지 않더라도 편히 숨 한번 쉴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근에 경복궁도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는데 왜 굳이 이곳에 짓는지 모르겠다"며 "제발 좀 (송현광장을) 내버려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산책로를 거닐다 만난 60대 직장인 정아무개씨도 "합리적인 사람들은 요즘 정치에 실망스러워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뉴라이트' 같은 세력들은 목소리 크다고 과대 대표되지 않나"라며 "<건국전쟁>도, 도심 녹지 한복판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한다는 것도 (한국 사회) 극우화의 연장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린 딸과 함께 방문한 40대 김아무개씨는 "이승만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처럼 전국민에게 불호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한쪽 진영을 대변하는 정치인 아닌가"라며 "(건립추진위원회가) 사유지를 매입해 세우는 것도 아니고,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유지를 합의도 없이 쓴다는 건 반발만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오 시장이 '<건국전쟁>의 상영이 일종의 공론화'라고 주장한 데 대해 "영화가 천만 관객도 아니고, 흥행도 아니고, '화제' 정도 아닌가"라며 "영화가 화제가 됐다고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건 핑계 같다. 굳이 특정 집단을 위한 상징물을 들일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중이던 30대 여성 최아무개씨는 "정치에 관심은 없다"면서도 "(시야가) 탁 트여 매력적인 곳인데 이미 있는 건물을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 건립한다면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기는 시민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70대 남성 두 명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무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기념관 #시민공간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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