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정없는 정부의 박절한 경찰이라니...

검토 완료

손병일(koka99)등록 2024.03.02 19:53
  아내와 함께 이태원 희생자 시청 분향소에 가서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9시 3분 전 도착해 보니, 수녀님 한 분과 유가족 어머니 한 분이 나와 계셨다.
분향소 앞에서 묵념을 하는 동안 묵묵히 기다리던 어머니가 뒤편 천막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가방을 놓고 천막을 나와 어머니가 타 주신 따끈한 믹스커피를 들고 지킴이 봉사대 앞에 아내와 나란히 섰다. 어머니가 커다란 네모 박스 안에 가스난로가 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가스를 올리고 난로를 켰다.
아쉽게도 가스통이 비어 있어서 난로는 곧 꺼졌다. 기온이 영상이라 그리 춥진 않았다.

  분향소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내와 보라색 리본에 고리를 끼우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분향소 주변을 서성이던 노부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곱게 나이 든 노부인이 손짓으로 리본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 가져가셔도 되요."
노부부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노신사가 번역기로 "메모지로 글을 남기고 싶다"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탁자에 있던 포스트잇을 두 분께 나눠드렸다. 그분들의 글씨는 외모만큼 단아하고 정숙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쓴 글을 아내가 핸드폰으로 찍어 번역한 글을 보여주었다. 노신사와 노부인의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태어나
다시 한국에 올 수 있기를
그때까지 이 나라에…'

  나는 노부부의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면서도 절제된 슬픔을 보여주었다. 그분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간 뒤에도 깊은 여운이 남았다.

  맥없이 서 있던 아내와 나는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본드로 리본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몰입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분향소 옆 찻길에 가스통을 가득 채운 트럭 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경찰이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지시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거 여기로 배달하려고 온 거 아냐? 경찰이 왜 못 옮기게 하지?"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유가족이 주문한 가스통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잠시 뒤 천막으로 들어가려던 유가족 어머니에게 트럭 기사와 경찰을 가리키며 "저 가스통 여기서 주문한 거 같은데요"라며 넌지시 알려드렸다. 어머니가 트럭 쪽으로 다가가는 사이에 경찰에게 쫓기던 기사가 트럭을 몰고 떠나버렸다.
  젊은 경찰에게 항의를 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법이 저렇게 중요하다고? 그렇게 법을 잘 지켰으면 우리 애들도 지켰어야지!"
  유가족 어머니는 한을 가슴에 삭이면서도 따뜻한 자스민차를 우리에게 타 주었고, 잠시 뒤 작은 기름난로까기 갖다주셨다.

  경찰은 경찰의 일을 한 것일까…?
너무도 씁쓸한 장면을 보면서 얼마 전 대통령이 표현한 '박절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인정이 없고 쌀쌀하다'였다. 유독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인정이 없는 정부이기에 분향소 옆을 지키던 경찰도 알아서 박절해진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너무도 서글퍼졌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어느덧 12시가 되어 인사를 드리고 분향소를 떠났다. 유가족 어머니는 과분할 정도로 감사를 표시며 우리를 배웅해주셨다. 그분의 미소엔 어찌할 수 없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겨우 세 시간 동안 유가족의 슬픔에 살짝 손만 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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