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영 <조선어사전>(1938)이 재출간되었다!

문세영 <조선어사전> 재출간의 의미

검토 완료

박용규(hanbong)등록 2024.03.05 09:15
문세영 <조선어사전>(1938)이 발간된 지 86년이 되는 2024년 3월에 다시 지식공작소(출판사)가 그 사전을 영인본으로 재출간을 하였다. 일전에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을 다각도로 연구한 바가 있는 역사학자인 필자는 재출간 소식을 듣고 감개무량하였다. 재출간할 필요가 있는 우리말사전이라고 단언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우리말사전은 펴내지 못하였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도 우리말사전을 발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어학자인 문세영은 1938년 최초로 제대로 된 우리말사전을 편찬하였다.
 

문세영 선생 (1895∼1952) ⓒ 박용규

  문세영(文世榮, 1895∼1952, 호는 청람(靑嵐))은 1917년 동양대학에 입학한 이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이 우리말 사전이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 일본인이 만든 일본어 대역체로 된 <조선어사전>(1920)만 있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우리말 어휘를 수집하여 카드에 기입하기 시작하였다. 기입된 카드를 뜻풀이하고자 192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전 편찬을 시작하여 10년간 원고 정리와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여 44세가 된 1938년 7월에 10만 어휘에 달하는 <조선어사전>을 발행하였다. <조선어사전>은 박문서관 발행으로 본문이 1,634쪽에 달하였고, 책 길이가 가로 140mm・세로 216mm였으며, 4단 내리짜기로 중사전 규모였다.
 

문세영, <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 겉표지) ⓒ 지식공작소

   

문세영, <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 속표지) ⓒ 박용규

  조선말사전이 없는 것을 방관하거나 비판만 난무하던 현실에서 그는 1917년에서 1938년까지 묵묵히 22년간에 걸쳐 어휘를 수집·주해·교정을 완료하여 간행해 내었다.
<조선어사전>에 수록된 어휘의 뜻풀이 가운데 몇 개만 살펴보겠다. 우선 독립운동과 연관된 어휘를 표제어로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민족주의(民族主義) : 같은 민족으로 국가를 조직하고자 하는 주의. 민족의 향상을 꾀하여 그 조직한 국가의 발달을 도모하는 주의. 삼민주의의 하나.(540쪽)
독립국(獨立國) : 어떠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치・외교를 처리하는 권리를 가진 나라.(380쪽)
독립군(獨立軍) :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군사.(380쪽)
자주독립(自主獨立) : 자기의 힘으로 일을 처리하고 남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것.(1178쪽)
자주적 외교(自主的 外交) : 국가가 자주권을 행사하고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외교.(1178쪽)"
  

문세영, <조선어사전>의 ‘독립국’과 ‘독립군’ 뜻풀이(380쪽) (문세영, <조선어사전>) ⓒ 박용규

  다음으로 조선말과 조선문, 한자와 한문을 명확히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조선말을 "우리가 늘 쓰는 한글로 된 말"로, 우리나라의 고유글자를 '한글'로 뜻풀이하였고, 한자를 '중국의 글자'로, 한문을 '중국의 글'로 뜻풀이하였다.

"조선말 : 우리가 늘 쓰는 한글로 된 말. 朝鮮語.(1266쪽)
조선문(朝鮮文) : 한글.(1266쪽)
한글 : 조선에 고유한 알파베트 문자. 세종이 이십 팔년 병인(1446) 구월 그믐날 곧 이십 구일에 훈민정음으로 반포한 것.(중략). 朝鮮文. 韓文.(1533쪽)
한자(漢字) : 지나의 글자. 한문 글자.(1536쪽)
한문(漢文) : 지나의 글.(1534쪽)"

이상을 통해 우리는 문세영이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어휘를 <조선어사전>에 집어넣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세영 <조선어사전>의 국어사전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제식민지 시기에 조선총독부가 만든 58,639어의 <조선어사전>을 능가한 10만 어휘의 우리말사전을 편찬하였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이 제대로 만든 조선어사전이 없는 부끄러움을 해소시켜 준 것이다. 그의 사전은 우리 민족이 문화민족임을 자부하게 하였다.
둘째로, 민족어 규범에 의거하여 최초로 편찬한 우리말사전이었다. 이 사전은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을 토대로 하여 편찬하였다.
셋째로, 조선어사전사(朝鮮語辭典史)에서 한글전용을 실천하였다는 점이다. 일제시기 일한혼용체의 일어 문장과 국한문혼용체의 조선어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어 현실에서 이 사전이 국문전용을 실천하였다는 데서 그 선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로, 단독 저술이었다는 데에 있다. 이 점에서 집단적 성과물로 이루어진 여타의 사전들과 그 차별성이 드러난다. 사전을 단독으로 저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문세영은 그 일을 해냈다.
다섯째로, 해방 뒤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가 편찬하고 있던 <조선말 큰사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1938년 7월 10일 초판 1천부를 발행하였다. 초판은 수일 만에 매진되었다. 1938년 12월 15일 다시 재판 2천부를 찍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이 사전은 조국을 일제침략자의 손아귀에서 해방하고자, 중국 관내의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하는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는 빛나는 역할을 하였다. 1941년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김학철(1916~2001)은 <격정시대>3에서, '<문세영사전>이 우리들의 사기를 활화산같이 북돋워 주웠다.'라고 기술하였다.
해방 뒤 그는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의 한 분으로 선정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46년 7월 8일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를 발표하였다. <조선문자급어학사>의 저자 김윤경, <우리말본>의 저자 최현배, 그리고 <조선어사전>의 저자 문세영이 3대 저술가로 뽑혔다. 또 1949년 10월 25일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국어학 4대 저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와 같이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언에 의하면 6・25전쟁 중인 1951년에, 그는 북한 정권이 행한 유명인사 모시기 작전의 대상이 되어 납북되었고, 1952년에 별세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상을 하나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였다. 2012년 7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글발전유공자 포상 후보자로 문세영을 추천하였다. 관련 서류와 증빙 자료를 상세히 첨부하였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문세영의 납북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문세영 사망에 대한 의견서'만 제출하였다. 불행하게도 인터넷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납북자 명단에는 문세영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그의 납북을 입증할 방도가 없었다. 이 자료가 없어 포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분단의 비극이었다. 담당 공무원도 문세영 선생이 최고의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는 말을 필자에게 하였다. 문세영은 국보급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은 특별조치를 단행해서라도 그에게 포상을 하여 주기를 바란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조선말글 말살 정책에 광분한 일제말기에 민족어가 말살됨을 막아 민족어를 보전, 유지시킨 역할을 해내었다. 따라서 그의 우리말사전 편찬은 문화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의 <조선어사전>은 해방된 뒤에도 1950년대 말까지 다른 사전들이 나오기 이전까지 거의 유일한 국어사전의 역할을 하였다.
2024년 3월에 재출간이 되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통해, 그의 우리말과 한글 사랑에 대한 끈질긴 투지와 진면목을 확인하여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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