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고통받는 일 없는 생명안전사회 열겠다" [다른 참사를 만나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발족하다 홍세미 오늘 처음 만났어도 마치 오래 안 것처럼 서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 바로 한국 사회에서 재난참사를 온몸으로 겪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 사회에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만큼 깊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난피해자연대'를 만들었다. 개별 참사의 틀을 넘어 서로 힘을 모을 상설 연대기구다. 슬픔으로 길을 낼 재난피해자들의 연대는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역 공간모아 6홀에서 그 첫발을 뗐다. 권리의 주체로 함께 서다 "화재 참사가 일어나고 시에서는 '일선 공무원이 유가족을 설득해서 장례 보상 업무를 신속히 진행하라' 이런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걸 저희가 가지고 있어요. 그 당시 인천 시장은 몇 월 며칠까지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 걸어서 해결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어요."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17세 아들 현민씨를 잃은 이재현씨의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난참사는 오랫동안 '보상금을 지급하면 끝나는 일'로 인식되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부나 기업의 뜻에 따라 모든 수습이 이루어졌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이 부당한 관행에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피해자가 불운하고 불쌍한 사람이 아닌 '권리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바꾸어가기로 한 것이다. 특히 눈여겨볼 변화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개별 사건을 넘어 연대의 틀을 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작은 2014년 여름이다. 과거의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세월호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에 함께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참사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간절함에서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재난참사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함께 모여 활동할 기반이 갖추어지기 힘들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 '펜박(FENVAC)'과 영국의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으로 이뤄진 비영리단체 '디에이(Disaster Action) 등을 만나며 피해자연대의 구상을 구체화해나갔다. 4·16재단은 피해자들이 지속해서 연대의 장을 만들 수 있게 지원했다. 재난피해자연대의 발족으로 그 열매가 맺어졌다. 국가의 부재, 그 증거가 여기 있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에는 8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참여한다. 삼풍백화점붕괴참사, 씨랜드청소년수련원화재참사, 인천인현동화재참사,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7·18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구 태안사설해병대캠프 참사), 4·16세월호참사, 스텔라데이지호침몰참사다. 발족식에서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가족들이 대책위를 만들고 활동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자 참여했습니다." (고석,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하나뿐인 딸이 졸업하고 6개월 동안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금도 그 이름 석 자만 불러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재난피해자연대가 저희와 같이 늘 그리움과 슬픔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김덕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가족) "저희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재수가 없거나 불운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무섭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남들보다 빨리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함께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말아 주십시오."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가족) "재난참사의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국가가 사과하고 반성하고 바꿔나가야 할 문제인데, 그걸 피해자가 대신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재난피해자들과 그 곁의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꿈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윤석기 2.18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대표는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이런 단체를 만든다는 자체가 공적 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피해자중심 접근에 기초해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조력하고 연대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재난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개소 4·16재단 부설, 국내 최초 재난피해자 권리옹호 전문기관 재난피해자 연대의 활동을 든든히 뒷받침할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도 문을 열었다. 국내 처음으로 설립된 재난피해자 권리옹호 전문기관이다. 4·16재단 부설로 지난해 말 준비해 올해 1월 31일 정식 개소했다. 개소식에는 여러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참석해 축하와 기대의 말을 전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가족 민동일 씨는 "재난피해자'지원'센터가 아니라 '권리'센터라는 말에 감동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에 근거해 활동할 전문기관을 반겼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가족 허영주 씨는 "저희가 참사를 겪은 2017년에 이런 센터가 있었다면 시행착오와 혼선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함께의 설립이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첫 센터장은 인권활동가이자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재난피해자들의 곁에서 활동해온 유해정 씨가 맡았다. 우리함께는 흩어져 있는 사회적 자원들을 엮어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허브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피해자연대와 함께 재난피해자들에게 전문적 조력을 제공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를 찾아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우선 추진할 사업은 '피해자 권리 매뉴얼' 제작이다. 추상적인 권리 항목을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의 경험을 충실히 반영해 구성한다. 가령 10.29이태원참사가 일어나고 사망자가 어떤 경로로 병원에 가게 됐는지 가족이 알려면 '구조 수습일지'를 요청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 자체를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어디에 가서 어떻게 청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알권리라는 말은 그저 선언에 그칠 뿐이다. '애도할 권리'의 경우도 기존에는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왔다. 유가족들에게는 사적인 애도 역시 당면한 문제다. 아이의 첫 번째 기일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족 관계가 나빠졌을 때는 어디에서 어떤 조력을 요청해야 하는지 등 어디에도 묻기 어려운 질문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피해자가 직접 답을 쓴다. "피해자들이 겪었던 경험 하나하나를 모아서 안전한 사회로 갈 데이터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는 이후식 씨(7·18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유가족)의 말처럼 우리함께는 재난피해자들의 권리가 실제로 보장되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세월호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