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익일특급 부활절 카드를 보냈습니다

'고난 주간'에 도착한 부활절 카드, 선거 개입 논란 자초한 대통령이다 보니 순수성 의심

검토 완료

정병진(naz77)등록 2024.03.28 16:09
 

윤 대통령이 보낸 '부활절 축하 카드' 윤 대통령이 '익일 특급'으로 보낸 부활절 축하 카드다. 날짜는 부활절인 3월 31일로 돼 있지만 발송일은 27일이다. ⓒ 정병진

  
오늘(28일) 오전 8시 23분경 우체국 알림톡으로 우체국 등기 배송이 있을 예정이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발송인이 (재)한국우편사업진흥원이라 '그런 곳에서 내게 무슨 등기를 보냈을까?' 내심 의아하였습니다.
 
오전 11시 50분경, 우체부가 등기를 가져왔습니다. 받고 보니 발송인란에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익일특급'이라 적혀 있습니다. 대체 얼마나 급하였으면 '특급'으로 보냈을까? 급히 뜯어 보고는 '뜨악'하였습니다. 겉장에는 대통령 봉황 표시가 돼 있고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통령 윤석열"
"예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고 실천하는 부활절이 되길 바랍니다. 2024년 3월 31일 대통령 윤석열"
 
진짜 대통령이 보낸 것 맞나 싶어 (재)한국우편사업진흥원에 전화를 해보니 "대통령실에서 보냈다"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대통령에게서 '부활절 카드'를 받아보긴 처음입니다. 목사인 제가 봐도 '부활절 카드'는 기독교인들조차 서로 잘 보내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간단한 인사말 정도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특급 등기'로 '부활절 카드'를 보낸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작년에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과거 박근혜씨가 대통령 재임하던 시절 천주교와 개신교 인사들에게 부활절 축하 카드를 보낸 것으로 나옵니다. 

문제는 대통령의 부활절 축하 카드를 받은 오늘(28일)이 기독교의 '고난주간' 막바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내일(29일)은 '성금요일'이라고 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신 날로 여깁니다. 고난의 주간, 더욱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신 날을 앞두고 "부활절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대통령의 카드가 도착한 것입니다. 

물론 카드에는 "2024년 3월 31일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써있어 부활절 당일인 31일에 맞춰 보내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익일특급'으로 보낼 것이었으면 부활절에 맞춰 도착하도록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왜 고난주간에 도착하도록 보냈는지 의아합니다.
 
공직선거법상 "설날·추석 등 명절 및 석가탄신일·기독탄신일 등에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문자메시지(그림말·음성·화상·동영상 등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로 전송하는 행위"(법 58조 제6항)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 도착한 대통령의 부활절 카드는 선거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라는 명분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측근이 출마한 지역에서는 후보에 맞는 공약을 발표하는 등 선거 개입 논란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도착한 부활절 축하 카드이다 보니 그저 순수하게 축하의 의미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보낸 부활절 카드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게 과민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카드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봅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선거 엄정 중립을 지켜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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