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 늘어선 야자수, 덜덜거리는 오토바이의 엔진소리, 빵빵 울리는 경적, 조금 허물어진 건물을 감싸는 약간의 습기와 뜨거운 태양. 자바섬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바탐으로 돌아왔다. 바탐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비물질을 흡수하며 고향에 온 기분을 느낀다. 나를 가족처럼 대해준 나빌라 덕분이다. 나빌라는 바탐에 머물 동안 자기 친구를 소개했다. Rezeki Manik(이하 제키)는 내가 바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온다. 인도네시아에 온 지 2주가 넘어 달력은 3월의 끝을 달리고 있다. 정든 인도네시아와 작별을 하고 바탐 선착장에서 싱가포르로 향한다.
선착장 안까지 따라와 다음에 만나자며 손을 흔드는 제키. 그의 순박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살짝 묻어난 웃음을 보니 함께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바탐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키는 내게 여러 관광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서투른 영어지만 말씨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았다. 우리는 조그만 섬 위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할리우드 저리 가는 바탐우드 앞에서 함께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호수를 걷고, 두리안을 먹으며 서로의 삶을 공유했다. 서로에 대해 일부분만 이해하더라도 웃음을 짓고,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 제키와 데이지 제키와 함께 바탐의 관광지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신예진
올해로 32살을 맞이한 이 청년에게 어린 소년의 웃음이 엿보인다. 자국 인도네시아를 사랑하고, 지금 살고 있는 섬 바탐을 사랑하는 그의 순수하고 앳된 미소는 내게 의문을 남긴다. 청년은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여전히 소년의 모습이 있을까. 그의 소년 시절을 꺼내고자 슬쩍 삶에 관해 묻는다.
활주로를 딛는 비행기는 소년의 마음 속으로
Tbing tinggi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제키는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는 마을 근처 공항의 비행장에서 활주로를 딛고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곤 했기 때문이다. 소년 제키는 하늘을 비행하는 동체를 동경했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가정아래 자라며 자신이 기계를 다루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깨닫는다. 자연스레 기술자를 꿈꾸며 대학에서 항공 기술을 공부한다.
▲ 항공기기술자 제키 제키는 승객이 안전하게 비행하는 걸 상상하며 항공기 정비를 한다. ⓒ Rezeki Manik
그는 최근 정비 작업을 마친 엔진 앞에서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준다. 항공기의 심장인 엔진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던 소년을 동력 삼아 수많은 이들이 하늘을 날게 해준다. 그의 웃음이 순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질주하는 소년이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는 항공기 기술자가 되어 사람들이 하늘을 날도록 도와주고 있다. 자신이 정비한 항공기가 곧 활주로에 오를 거라는 그의 들뜸은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짐을 싸는 소년의 들뜸과 겹치게 보인다.
항공기 기술자로 지내며 취미로 시작한 제빵은 그의 부업이 되었다. Krips Yummy라는 제과점 운영을 시작하며 그는 인도네시아 종합식품 기업을 차리는 새로운 비행을 꿈꾸고 있다. 바탐에 머물며 제키가 내게 준 따끈한 브라우니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먹은 브라우니 중 단연 최고의 맛이다. 그는 조금씩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이를 구상한다. 비상하는 동체에 압도된 듯,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다.
당신의 삶의 이유, 당신의 데이지는 무엇인가요?
▲ 제키의 모습 제키는 데이지 꽃과 함께 미소를 짓고있다. ⓒ 신예진
"내가 만나는 많은 이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어. 오래 살며 사람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그들을 돕고 싶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소년은 항공기를 정비하며 행복을 전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창공을 누비는 여러 항공기 사이로, 어린 소년의 꿈이 보인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품은 청년은 여전히 스스러운 웃음으로 새로운 꿈을 비행한다. 삶을 비행하는 그의 비상을 응원한다. 제키의 손짓을 끝으로 바탐을 떠나는 페리에 몸을 싣는다. 다음 목적지는 싱가포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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