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았던 아이가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살 만합니다.

검토 완료

권민지(omymj)등록 2024.04.09 09:47


  고등학교 때 한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너무 열심히 해서 공부 잘하는 줄 알았어.' 대체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했을까. 악의가 없는 말로 내뱉은 철없는 친구의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가 보기에는 내가 너무 열심히는 하는데 그만큼의 공부는 못한다는 말을 내 면전에 대고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로 나는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우리 반에서 1등을 하는 친구가 하는 공부하는 방법을 무작정 따라 했다. 우리 반 1등은 특이하게도 교과서를 아주 지저분하게 사용했다. 나도 똑같이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면서 나의 뇌를 쥐어짜듯이 교과서를 들여다 보았다. 그 뒤로 나는 결국 성적이 올랐을까? 'YES'라고 환호성을 지르고 싶지만 나의 성적은 여전히 그대로 중간쯤이었다. 공개적으로 교실 앞에 붙은 성적표가 나올 때면 혹시나 하위권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내 마음 속의 열정만큼 성적은 잘 오르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을 바꿔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나만의 공부 방식을 찾아갔다.

  한 날은 수학 선생님께 질문을 하러 교무실로 들어갔다. 그 선생님은 평소에도 눈에 띄게 예쁘고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을 유독 챙기셨던 분 이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이 선생님에게 나도 그냥 눈에 띄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질문을 하러 온 나를 앞에 두고 한 손으로는 이면지에 내가 질문한 풀이를 써 내려가시고, 다른 손으로는 통화를 하셨다. 눈썹을 한번 들썩거리면서 지금부터 설명을 할 테니 알아들으라는 듯이 표현했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없이 '이해 됐지?'라는 한 마디를 하면서 나를 내보내려고 하셨다. 그냥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풀이가 적혀있는 이면지를 받아들면서 순간 내 자신이 화가 났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저음의 '네'라는 대답을 하는 것 뿐 이었다. 돌아서 나오면서도 '네'라는 대답은 왜 했냐면서 내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렇게 나는 더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가 되었다.
 
  19살 수능을 치르고 나서 내 성적에 맞는 대학을 들어갔다. 일명 서울에서는 서울대가 가장 좋은 학교니 대구에서 가장 좋은 학교 아니야? 하며 대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되묻기도 한다는 그 학교다. 나에게 이 학교를 다니면서 내 삶의 180도가 바뀌었으니 내 인생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는 나에게 가장 좋은 학교가 분명하다. 대학이라는 곳에서 내 인생이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독한 마음을 먹었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삶을 살겠다. 그리고 행정학과에 들어온 만큼 공무원이 반드시 되리라. 일찍이 꿈을 정했기에 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도 아주 수월했다. 열심히 하는 내 모습에 교수님들의 칭찬은 일상이었고,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상당했다.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대학을 다닐 줄이야. 나는 이 학교에 와서 언제나 1등이었다. 칭찬과 더불어 시기와 질투도 늘 따라다녔지만 나는 오직 내 꿈을 향해서만 직진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는 다시 뒤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열심히 달려온 순간에 역경은 찾아왔다. 시험일이 가까워지니 갑자기 부모님의 수술도 잡히고 반복되는 낙방에 시험지만 보면 울렁거리는 겁보가 되었다.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냥 놀다가도 붙은 사람, 운으로 붙은 사람, 하지만 성실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지 않으면 붙는 사람이 되려고 매일 강박적으로 공부했다.
 
  새벽 5시에 기상을 하고 독서실로 가서 밤에는 막차를 놓치지 않을 22시 때의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모든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에 집중했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조차도 나의 손에는 작은 노트가 항상 들려있었다. 그 노트에는 영어단어가 적혀 있을 때도 있었고, 한자, 행정법의 지문 등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누가 봐도 금방 수험생활을 정리하고 공무원이 될 것 같다는 그 달콤한 말들을 수없이 들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꿈을 이뤘나? 아니, 그 당시에는 절망적이게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 시험은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되는 시험이 맞을까? 매일을 10시간씩 공부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은 정말 현재 모두 공무원이 되었을까? 아직도 수험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를 실패자로 생각되게 한다. 왜 나는 실패했을까. 나는 왜 공무원이 되지 못했을까. 공무원 시험지는 왜 나를 그토록 울렁거리게 했을까.
 

  수험생활로 보낸 나의 20대. 지금의 나는 대학 때 다행히 학점이 좋았던 것으로 학원가에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취업이 되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부모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다시 공무원을 도전해봐.' 나는 "내가 지금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데 다시 동굴 속으로요?" 하면서 웃고 넘긴다. 공무원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 마음에서 두려움이라는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온다.
 
  물론 외로웠던 수험생활이 나에게 좋게 남겨진 것도 있다. 일테면 나 자신을 많은 시간동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나는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 그리고 너무나도 지엽적인 것까지 달달 외웠던 그 잡다한 수험의 지식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어서 평소에도 내 아이에게 어디서든지 지식들을 쉽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문득 길거리의 간판을 보며 한자를 읽어준다거나 한국사 그림책을 실감 나게 읽어준다거나 이렇게 입에서 툭 하고 나오니 반갑기는 하다. 그 당시에 다른 도전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에 나는 이제라도 다양한 것들을 즐겨보려고 한다. 그 시절 나와 함께 공부했지만 공무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전국의 과거 수험생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나처럼 다들 평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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