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와 현진건 영전에 책 두 권을 봉정한 81주기

같은 날 세상 떠난 두 민족문학가를 기려 네 번째 합동 추념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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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daeguedu)등록 2024.04.26 17:28
 

이상화 현진건 81주기 함동 추념식 ⓒ 정만진


 
현진건은 1900년 9월 2일, 이상화는 1901년 4월 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주 친한 벗이었다. 현진건의 아버지 현경운과 이상화의 큰아버지 이일우가 함께 '대구 노동 야학'을 열어 운영했던 교육계몽운동 동지였기 때문이다.

현진건은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 '고향', '빈처'와 장편소설 '적도', '무영탑', '흑치상지' 등 식민지 치하 겨레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립의지를 고양한 민족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켜 투옥과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교육운동 동지였던 현진건의 아버지와 이상화의 큰아버지

이상화는 저항시이면서도 서정적 분위기가 빼어난 걸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사에 빛난 이름을 남긴 민족시인이다. 그 역시 기미독립만세운동과 'ㄱ당 사건' 등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유공자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백조' 동인이었다. 1921년 '빈처' 발표로 일약 문단의 총아가 된 현진건이 이상화를 '백조' 동인들에게 추천했다. 두 사람은 그 이전 10대 때 대구에서 프린트물 동인지 '거화'를 간행하기도 했다.

이상화와 현진건은 10대 때 '거화' 동인, 20대 때 '백조' 동인

이상화와 현진건은 1943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독립을 못 본 채 같은 날 타계한 두 분 민족문학가를 추념하는 행사가 지난 2021년부터 대구에서 열렸다. 한국문학 역사상 처음 마련된 이 합동 추념식은 상화기념관, '참작가' 현진건 현창회, 구구단 등이 힘을 합쳐 기획했다.

올해에도 네 번째 '이상화 현진건 합동 추념식'이 4월 25일 오후 4시 대구 달서구 대곡동 상화기념관에서 열렸다. 81주기 추념식이었다. 이날 추념식은 개식 선언, 국민 의례, 내빈 소개로 시작되었다.

3년 전 한국문학사 최초로 합동 추념식 개최

이어 경과 보고, 이상화 선생 약력 소개, 현진건 선생 약력 소개, 합동 추념 행사의 취지문 발표가 펼쳐졌다. 그 후 최영 시인의 장편 서사시 '나는 현진건이다' 일부와 김규원 시인의 '반성 : 이상화 현진건 81주기 합동 추념식에 바치는 시'가 낭독되었다. 아래는 '반성'의 전문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백아절현(伯牙絶絃)**
남들 얘기라서 참 부러웠던 고사
 
하지만 그대들은 벌써 알고 있다
우리 대구 땅에도 그 못지않은 자랑 있음을,
빙허(憑虛) 현진건과 무량(無量) 이상화 사이는
한국문학의 길, 소설과 시를 통해
빼앗긴 고향을 되찾고자
절치부심한 생애를 함께 걸어갔음을
 
오죽했으면 해방 못 보고 같은 날 운명했을까
이토록 빙허는 무량에게, 무량은 빙허에게
한평생 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눈빛만 봐도 뭘 원하지를 알 수 있는 사람
무뚝뚝하게 말해도 깊은 정을 느끼는 사람
가까이 있으면 말 건네고 손잡고 싶은 사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곁에 다가서고 싶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리움에 속 태우는 사람
 
오래 사귈수록 늘 향기로운 사람이 드문데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 있었던가

 

'빼앗긴고향' 동인들이 편집한 <이장가 시집>(왼쪽)과 김미경 번역 <현진건 중문 소설집>(오른쪽)이 이상화, 현진건 81주기를 맞아 상화기념관에 봉정되었다. ⓒ 정만진

   
그후 이번 추념식의 핵심 내용인 《이장가 시집》과 《현진건 중문 소설집》 봉정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동진(이상화의 할아버지)의 한시와 번역문, 이일우(이상화의 큰아버지)의 한시와 번역문,  이상정(이상화의 형)의 현대시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수록한 《이장가 시집》은 책을 만든 '빼앗긴 고향' 동인을 대표해 배정옥 시인이 봉정했다.

이장가(이상화 문중) 4인의 시를 한 책에 묶다

《현진건 중문 소설집》은 현진건의 등단작 '희생화'를 비롯해 대표 단편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고향',' 운수 좋은 날', '피아노', '핢머니의 죽음', 'B사감과 러브레터'를 우리글로 옮긴 김미경 역자가 봉정했다.

김미경 역자는 "서울 현진건기념도서관과 중국 여러 대학에 《현진건 중문 소설집》을 이미 기증했다. 이상화 시인과 현진건 소설가가 생애의 절칠한 벗이었던 만큼 《현진건 중문 소설집》이 상화문학관과 현씨문중에 잘 보관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오늘 졸저를 봉정했다"라고 봉정 의의를 밝혔다.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연 합동 추념식, 올해로 네 번쩨

이어서 손주희 소프라노가 '대구 행진곡(이상화 시, 서용덕 곡)'과 '친구야(최영 시, 서용덕 곡)' 두 곡을 독창했다. 그 중 '찬구야'는 생애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화와 현진건의 삶과 인연을 담은 최영 시인의 시에 서용덕 음악인이 곡을 붙인 노래로, 81주기 추념식을 통해 최초로 발표되었다.  

행사의 마지막은 네 번에 걸쳐 합동 추념식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자에 대한 표창 순서였다. 상화기념관 이원호 관장이 수여한 공로상은 김미경 박사와 서용덕 음악인이 받았다.   이원호 관장은 "《현진건 중문 소설집》을 발간한 김미경 박사와, 추념식 때마다 공연을 맡아 행사를 알차게 꾸며준 서용덕 음악인 같은 분들 덕분에 합동 추념식을 해마다 잘 거행해 왔다."면서 "우리를 본받아 다른 단체와 개인들도 두 분을 추념하는 행사를 열고 신문칼럼 등을 발표하고 있다. 보람을 느낀다. 두 분을 현창하는 일에 앞으로 더욱 진심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서용덕 음악인(사진 왼쪽)과 김미경 중국민간문학박사(오른쪽)가 이원호 상화기념관 관장(가운데)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고 있다. ⓒ 정만진

 
* 관포지교: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람 관중(管仲)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鮑叔)"이라 했다. 관포지교는 아주 돈독한 우정을 상징하는 관용적 사자성어이다.
** 백아절현: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는 벗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絃)을 끊고(絶) 연주를 그만두었다. 이제 내 음악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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