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베트남 국경 마을 디엔비엔푸로 넘어온다. 5월 초여름을 앞두어 베트남에 가득 펼쳐진 푸른 논을 보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디엔비엔푸에 오후 6시 쯤 도착하자마자 사파로 가는 버스가 곧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허겁지겁 사파로 가는 슬리핑버스에 갈아타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어스름지는 새벽과 함께 사파의 계단식 논이 나를 맞이한다.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Xjooy(아래 샤오즈)는 나를 데리러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맞이한다.
▲ 베트남 사파 트레킹 가이드 샤오즈(Xyooj Povhaudej)의 모습 샤오즈는 사파에서 태어나 판시판 산과 언제나 함께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판시판은 언제나 그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온다. ⓒ 신예진
중국 남부,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지에 분포한 블랙흐몽 족(Black H'mong)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소수 민족 중 하나다. 사파 근교로 작은 마을이 분포하는데, 샤오즈도 그중 한 곳에 지내는 블랙흐몽 민족이다. 어두운 밤의 반딧불이와 마을 어귀를 구불구불 흐르는 물소리 사이를 운전하며 그는 말한다.
"데이지, 나는 아침에 바로 판시판 등산에 가야해."
판시판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고도 3,147m로 베트남 라오까이성과 라이쩌우성에 걸쳐있다. 베트남 쩐 왕조 시절인 800여 년 전, 건축양식의 사원과 석탑은 정상에 건재해 판시판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트레킹 가이드로 일하는 샤오즈는 예약이 있을 때마다 1박 2일 등반을 간다. 등산이라면 빠질 수 없는 나. 밤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한다.
"나도 너와 함께 판시판에 갈래!"
예정에 없는 등반이 더 재밌는 법이지
사파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시설관리 및 예매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판시판 역시 케이블카가 2016년 설립되어 하루 만에 판시판 정상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케이블카로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지만, 직접 오르는 인도차이나반도 지붕을 느끼고 싶었다. 새벽 늦게 도착해 눈 붙일 새도 없이, 아침 해를 맞이하며 샤오즈와 함께 등반을 준비한다.
▲ 판시판 등반 첫째날 야영장에 도착한 뒤 남긴 인증샷 데이지와 트레킹 가이드 샤오즈, 다른 등산객과 함께 첫 번째 야영장에서 사진을 남긴다. 아침 8시쯤 시작한 등반은 여유롭게 올라 오후 3시에 마무리되었다. ⓒ 신예진
샤오즈는 1999년 사파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에 결혼해 아들 3명을 둔 아버지이다. 샤오즈가 태어난 마을은 매년 한 번씩 동반자를 고르는 행사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부모님의 말씀 따라 결혼하게 되었지만, 일찍 결혼한 것을 조금 후회하면서도 아버지가 된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묵직한 책임감을 보여준다.
"어릴 적에는 나만의 사업으로 식당을 열고 싶었어."
음식점을 열고 싶다는 꿈 때문인가, 산행 후 먹는 그의 요리는 근사했다. 우린 오후 3시쯤 첫째 날 산행을 마쳐 야영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첫날 판시판은 초록색으로 무성한 나무와 인사하느라 바빴다. 샤오즈는 등산객 짐 일부와 우리의 식량을 모두 짊어지고 오르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이렇게 땀 흘려 일하지만, 나는 내 직업이 좋아. 시간이 유동적이니 부모님을 도와야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거든. 판시판을 매번 오르다 보면 운동도 저절로 되고 말이야."
샤오즈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대신 그가 농사 돕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훗날 샤오즈는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한다. 그는 배우는 삶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배워 마을 투어 가이드도 할 계획을 밝힌다.
▲ 판시판 등반 둘째날 이른 새벽 정상을 출발하면서 남긴 사진 판시판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등산객은 보통 새벽 6시 출발을 준비한다. 산을 오르며 조금씩 날이 밝아오지만, 그전에는 헤드랜턴과 가이드에 의지해 정상을 향해 오른다. ⓒ 신예진
다음날, 판시판 정상에서 일출과 인사하기 위해 새벽 일찍 발걸음을 옮긴다. 껌껌한 앞을 헤치고 경사 높은 돌멩이를 오르는 샤오즈를 따라간다. 빨간 불빛은 저 멀리 깜박이며 정상에 다 와 간다는 신호를 보여준다.
인도차이나 반도 지붕 위에서 삶의 이유를 묻다
언제나 위에서 바라본 구름은 자욱하게 판시판 정상 아래에 깔려있다. 정상에 당당히 서있는 사원과 석탑은 높은 고도 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한다. 대형 불상은 판시판의 웅장함에 일조한다. 뿌옇게 펼쳐진 구름을 뚫고 조금씩 떠오르는 태양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글거리며 판시판 일대를 붉게 물들이는 순간. 자연의 우람함과 종교를 향한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진다.
▲ 판시판 정상을 오르는 계단 위에서 트레킹가이드 샤오즈와 함께 찍은 사진 구름이 걷힌 뒤 얕은안개가 자리하지만, 일출은 그사이를 비집고 올라온다. 판시판 정상에서 만난 인간 건축물은 정상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 신예진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내려오니, 샤오즈는 웃으며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함께 구름 위를 내려오며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가 일찍 결혼을 한 걸 후회한다고 했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판시판을 오르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야. 나의 자식을 키우며 오래도록 살고 싶어. 그것이 내 삶의 이유지."
일출을 보고 홀가분히 내려오니 뿌연 구름이 판시판 정상을 둘러싼다. 음산한 분위기는 판시판 정상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인류의 경외감을 더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 샤오미가 흘린 땀방울에서 느낀 것처럼. 그 땀방울은, 오늘도 판시판을 향해 뜨겁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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