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새벽(왼쪽)과 님을 위한 행진곡 탄생(오른쪽) '5월 27일 새벽'은 재진압 작전에 나선 계엄군에 시민군이 맞선 장소인 광주 여자기독교청년회관(YWCA)을 그린 그림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 탄생'은 1982년 4월 임영희 작가가 이 노래를 녹음한 광주 운암동 소설가 황석영의 자택 평면도를 그린 그림이다. 평면도 뒤로 이 노래를 시작하는 첫 음표인 점4분음표가 초록색으로 그려져 있다.
양림동 소녀
광주는 열흘 만에 진압됐다. 5월 26일에서 27일을 넘어가는 새벽 3시였다. YWCA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그는 나무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계엄군의 재진압에 대비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나가서 대피하라'는 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끝내 두 여자와 건물을 나와 맞은편 책방 녹두서점으로 이동하는데, 뒤에서 굉음의 총소리가 들려 왔다. "30분 같았던 2시간"이 지나고 거리로 나오니 계엄군이 시신들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두 해가 지나도 오월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1982년 4월, 양림동에서 운암동으로 옮겨 간 소설가 황석영의 자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테이프 녹음이 시작됐다. 광주 문화운동가들이 5·18의 진실을 알리려 만든 노래극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된 곡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곡은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당시 이 노래를 함께 불렀던 전남대생 오정묵씨가 현재 그의 남편이다. 둘은 같은 해 결혼했다.
임씨 가족은 지난 2022년엔 영화를 제작했다. 책과 같은 제목의 30분짜리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이었다. 임영희가 그림을 그리고, 오정묵이 붓글씨로 제목을 옮겨쓰고, 아들이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딸이 번역을 담당했다. 가족이 함께 만든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광주여성영화제에 초청되고 청룡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았다. 화가와 작가에 이어 감독까지 임영희의 직함은 다양하게 달렸다.
몸을 잃고 붙든 이야기

▲병원 생활(왼쪽)과 짤뚝이 모임(오른쪽) '병원 생활'은 2011년 급성 뇌졸중으로 쓰러진 임영희 작가가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기립기에 묶여 서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짤둑이 모임'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쪽 반신마비가 온 그와 다른 뇌졸중 환자들이 절뚝절뚝거리며 커피 전문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양림동 소녀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몸 한쪽이 움직이지 않았다.
2011년 갑작스레 찾아온 급성 뇌졸중은 오른쪽 반신마비와 언어마비를 가져왔다.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왼손으로 젓가락질하고 글씨 쓰는 법부터 새로 익혔다.
쉰이 넘어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그는 세상의 공격적인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오른쪽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건 그의 장애였지만,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더욱 고립시킨 건 차별과 편견이었다.
"카페에 가면 손님들이 다 나가버리고, 계단이랑 에스컬레이터를 천천히 이용하면 빨리 가라고 밀어버리고. 그래서인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더 눈여겨보게 되더라고. 거기에 반대하는 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안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 임영희 작가가 전남 화순 수만리 자택에서 거실 바닥에 일렬로 정렬된 자신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80여 점의 그림들을 그렸고, 그중 60여 점이 최근 책 <양림동 소녀>로 출간됐다.
임영희
임영희는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는 대신, 장애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세상의 낮은 목소리들을 떠올리며 왼손으로 만들어 낸 그림은 몸과 마음을 나아지게 했고 그를 살게 했다. 수십 년 낙인에 숨어야 했던 시민군과 장애인과 노인의 삶은 그 시간들을 통과해 온 임영희만이 붙들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지난해 광주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연 이후 그는 새 그림을 그리진 못했다. 아직 몸이 의욕을 따라가지 못했고, 흥미가 아닌 의무감에만 얽매이는 건 아닐지 걱정이 들어서였다. 그는 대신 올가을 광주 충장축제에서 패션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장애를 갖고 난 뒤로 남편이 재봉 학원에 다니며 만들어 준 맞춤형 원피스, 재킷, 바지 스무여 벌을 영화와 노래와 함께 보여주는 전시회다.
"나의 오월이 시작되는 곳을 그림책으로 펴냈으니, 이젠 '옷으로 치유를 입다'라는 부제로 복합 전시회를 기획해 보려고요. 제 옷 안에는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도 있고 옛 세대와 소통할 수도 있는 요소들도 있으니까 재밌겠다 싶어요."

▲ 임영희 작가가 지난 15일 전남 화순 수만리 자택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 '문학소녀'가 든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책 <양림동 소녀> 겉표지에도 나오는 이 그림은 교내 문예 백일장에 시를 써서 당선된 그의 고등학생 시절을 담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릴케, 김동리, 도스토옙스키 등 당시 그가 읽었던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복건우
10대 소녀가 광주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60대 노인이 됐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오월 공동체가 몸에 깊게 새겨진 임영희는 남은 생이 다할 때까지 역사와 역사,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운동가로 역할을 하고자 했다. 대화의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젠 세대를 아우르는 5·18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화가이자 감독이자 작가 임영희의 역할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저는 싸목싸목(천천히) 늙어갔으면, 제 작품들은 오래오래 기억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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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목싸목 늙어간 양림동 소녀, 살아남은 왼손으로 그린 '44년 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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