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으로 얼룩진 위구르 인권운동의 현주소

WUC 의장 돌쿤 이사 등 걸출한 위구르 지도자들 줄줄이 '성추문' 휘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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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림(uyghurshunos)등록 2024.05.19 10:45
지난 10일 NOTUS라는 독립언론사에 의해 폭로된 세계위구르대회(WUC) 의장 돌쿤 이사와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UHRP)의 최고위 간부 누리 투르켈의 성추문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7일 밤 10시 경 UHRP는 긴급성명을 내고 투르켈의 간부직 전격 사임과 함께 새 단체장 저스틴 루델슨(Justin Rudelson)의 취임을 발표했다.

이번 성추문의 핵심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WUC의장 돌쿤 이사가 터키인 여대생 자원봉사자 에스마 귄(Esma Gün, 당시 22세)에게 노골적으로 키스와 같은 수위 높은 애정행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귄은 지속적으로 은밀한 만남을 요구하는 돌쿤 이사의 추태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못했다. 자신의 폭로가 위구르 인권운동의 당위성에 해를 끼치고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악용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귄 외에도 돌쿤 이사에게 비슷한 요구를 받은 다른 여성 피해자들이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돌쿤 이사와 함꼐 재외 위구르 단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위구르계 미국인 인권 변호사 누리 투르켈의 섹스 스캔들도 문제가 됐다. 투르켈은 그동안 유수의 서구 언론에 출연해 중국 공산당이 저지르는 인권탄압 정책에 날선 비판을 쏟아내 왔다. 그는 '변호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재외 위구르인들 사이에선 레비야 카디르, 돌쿤 이사 못지않게 두터운 권위와 신망을 확보한 망명 지도자였다. 또 그는 재미 위구르인 연맹의 회장을 지냈을 뿐 아니라, 2020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인권운동가 줄리 밀삽(Julie Millsap)의 포스터 과거 중국에 10년 이상 체류했다는 그녀의 과거 행보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중국 정부의 사주를 받아 이중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의심을 하지만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 Julie Millsap

  
UHRP에서 여성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줄리 밀삽(Julie Millsap)에 따르면, 그녀는 2021년 5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합의 하에' 투르켈과 성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관계가 틀어진 이후 그녀는 UHRP 내에서 다양한 인사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투르켈이 2022년 8월 개최된 오슬로 인권단체 행사에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참석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사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돌쿤 이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자원봉사자 여성들과 성적 관계를 유지했거나 또는 시도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위구르계 미국인 인권변호사 누리 투르켈 누리 투르켈은 202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명단에 포함됐으며, 최초의 위구르계 미국 변호사이자 낸시 펠로시와 같은 미국 제도권 정치인들과도 가장 가까운 위구르인으로 꼽힌다. ⓒ Nury Turkel

 

이번 사태를 두고 '신장 수용소 희생자 데이터베이스(Xinjiang Victims Database)'의 운영자 진 부닌(Gene Bunin)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남겼다. "인권운동은 권력의 중심(워싱턴 D.C. 혹은 베를린)을 떠나 피해자 주변에 머물러야 한다. 과거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오늘날 권력의 달콤함으로 인해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알아서 무너지는 위구르 인권운동, 손뼉치는 중국 공산당
 
WUC와 UHRP은 현재 중국 외부에서 위구르인의 권리를 대변하고 옹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단체로 꼽힌다. 그러나 실상 이들 내부에서 활동하는 위구르 인사들의 자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다. 필자가 보건대 돌쿤 이사나 누리 투르켈의 사례는 할리우드 미투 사태와 같은 심각한 '성범죄' 스캔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피해자임을 호소하는 줄리 밀삽이나 에스마 귄이 중국 공산당 요원일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위구르 문제를 이용하면서 WUC와 UHRP를 주로 '얼굴마담'으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서방 언론들 역시 WUC와 UHRP 인사들을 주로 매스컴에 띄우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WUC와 UHRP만을 홍보해 준다. 결국 위기 속의 풍요를 누리는 소수의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올랐다는 착각을 하면서 경솔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중국이 진정 두려워하는 위구르 운동가는 따로 있다
 
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위구르 문제를 분석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WUC와 UHRP 같은 국제 인권단체들의 행보를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중국 입장에선 이런 단체들을 그저 '테러리스트' 혹은 '서방의 꼭두각시' 정도로 낙인만 찍어 놓아도 아무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진정으로 경계하는 상대는 국제인권단체가 아닌 일개 개인으로서, 과거 필자의 기사(위구르 독립운동가는 왜 야스쿠니를 참배했나)에서도 한차례 소개한 바 있는 신장 수용소 희생자 데이터베이스(shahit.biz)의 큐레이터 진 부닌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수용소 피해자들을 면담하는 진 부닌 진 부닌은 카자흐스탄의 인권운동단체 아따쥬르트(Atajurt)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무슬림 소수민족 인권탄압에 대항했으나 결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당하고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로 수년쨰 유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 Gene Bunin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EPFL)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촉망 받는 통계학자였던  진 부닌은 혈혈단신으로 중국 공산당의 신장 소수민족 인권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는 이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중앙아 회원국들 모두에서 입국금지를 당했으며, 오랜 유랑생활 탓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궁핍한 처지에 놓여 있다. 
 

Shahit.biz에 정리돼 있는 신장 수용소 피해자의 신원정보 신장 희생자 데이터베이스에는 현재 135,948명의 신장 소수민족 피해자들의 성명, 성별, 나이, 주소, 주민번호 등의 신상정보와 함께 형량 및 생사여부, 친족들의 증언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과거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 학살,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보상 청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줄곧 ‘서면증거’를 요구해온 점을 상기하면, 해당 데이터베이스는 먼 미래의 위구르족에게 천금만금보다 더 값진 사료로 활용될 것이다.? ⓒ Gene Bunin

 
놀라운 점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WUC, UHRP처럼 서방 국가들로부터 넉넉한 재정지원을 받으며 수십, 수백 명이 운집한 단체가 아닌, 진 부닌 개인이 홀로 떠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해 불어, 중국어, 위구르어까지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평시엔 프리랜서 통역가로 일하며 근근히 사이트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또 WUC와 UHRP에서 일하는 인권운동가들은 사실상 어떤 신변의 위협조차 받지 않지만, 진 부닌 같은 경우 수차례의 암살시도 탓에 현재 외출도 마음껏 못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곤경에 처한 위구르족을 돕는 최선의 방책은 이름만 그럴듯한 어용단체를 후원하는 일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피해자와 함께하는 인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게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위구르족을 포함한 신장 무슬림 소수민족을 돕고 싶은 독자들은 Xinjiang Victims Database에 작은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는 것이 Gene Bunin 같은 자발적인 인권운동가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해당 웹사이트 주소는 https://shahit.biz/eng/ 이며 소액 정기후원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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