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5년 개봉해 신선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끈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아래 <매드맥스>)의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아래 <퓨리오사>)가 지난 22일 개봉했다. <매드 맥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의 과거 이야기이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는 여성 서사 영화라는 게 영화계의 주된 목소리다. <퓨리오사>의 액션신은 신선하다. 격투가 아닌 전장을 보여주지만, 그러면서도 개체의 움직임이 죽지 않는다. 오토바이나 차, 행글라이더 등을 이용해 개체의 움직임을 시원시원하게 표현했다. 그 결과 큼직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투신이 상영시간을 채운다.
그러나 '여성 서사'에 대한 찬사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화려한 액션에 눈이 바쁘다가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마음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퓨리오사>는 여성 영화일까? 퓨리오사가 여성이기 때문에, 대중은 별다른 의구심 없이 이 영화를 여성 영화로 받아들인 것일까. 그러나 이 영화의 전반적인 맥락을 짚어보자. 이 영화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퓨리오사와 명예 남성
영화의 주인공인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 분)는 어린 시절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에게 납치를 당한다. 퓨리오사를 구하러 온 엄마(찰리 프레이저 분)는 디멘투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디멘투스라는 적을 갖게 된다. 디멘투스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퓨리오사에게 투영하며, 퓨리오사를 자신의 딸처럼 대한다. 퓨리오사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겨우 10살의 자신을 아내로 삼겠다는 임모탄 조(휴키스 번 분)에게로 가게 된다. 그리고 임모탄의 동생이 퓨리오사를 겁탈하려고 몰래 빼내는데, 이 틈을 타 퓨리오사는 도망을 나와 노예병이 되어 살아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자. 퓨리오사는 작은 어린 아이다. 폭력적인 (자칭) 아버지에게서, 어린 여자애를 아내 삼겠다는 늙은 아저씨에게로, 거기서 또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에게로, 퓨리오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진다. 여자가 아버지에게 종속되었다가 성인인 다른 남성에게로 전해지는 남성 사회를 고스란히 담은 모습이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들을 영화는 관조하고 있고, 퓨리오사는 담담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강인하게 자란다.
<퓨리오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퓨리오사는 강인하게 자라지만, 그래봤자 스스로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전략을 짜고 전장을 움직일 때, 퓨리오사는 하나의 말일뿐이다. 퓨리오사는 잘 싸운다. 그렇지만 전장을 주도하지는 못한다. 단지 남성 사회에 잘 적응한 인물일 뿐이다.
영화에는 퓨리오사가 남성주의 사회에 저항하거나 부조리를 느끼는듯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를 잃은 것에 대한 개인적 분노만이 퓨리오사의 동력이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성폭력들을 여성 문제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남성적인 시선에 가깝다. 그들은 퓨리오사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성적인 폭력 따위에 무감한, 예외적이고 특별한, 그러니까 남자같은 여자로 만들었다. 퓨리오사는 명예 남성, 남성들이 수용가능한 '여'전사로 그곳에 존재한다.
여성 서사, 여성의 이야기
▲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서사란 이야기이고, 이야기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킨다고 한들, 거기에 여성의 시선과 여성의 목소리가 없다면 여성 서사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성 서사란 무엇일까. <퓨리오사>처럼 전장에 선 여자들을 비춘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정말 미소 짓고 있었을까>는 이스라엘의 여성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여성도 징집하는 이스라엘이 성적으로 평등한 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곳에 있던 여성들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 특히 격전지에 배치될수록 남성 군인의 비중이 높은데,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 군인들은 자신이 가진 '여성처럼 보이는' 성향을 모두 감춰야 했다.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들이 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에 함께 웃는다. 전쟁과 폭력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망가뜨리지만, 여성은 그곳에서 '여성'이라는 자아를 하나 더 죽이는 경험을 한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명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은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여성주의라는 건 결국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해도, 동등한 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장 약한 사람, 남성이 아닌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가난한 사람도 부유하고 강인한 비장애인 남성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텅 빈 말일까. 인권이라는 건 나의 가치를 증명해 내겠다고 말하는 투쟁이 아니다. 내 나약함도 여기에 존재한다는 투쟁이어야 한다.
영화로 돌아가자. 퓨리오사는 어머니의 원수 디멘투스를 죽인다. 자신의 세대가 구원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좌절스럽다는 걸 깨달은 퓨리오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세대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퓨리오사는 어린 시절 임모탄의 아이를 낳는 수단으로 쓰일 뻔했던 인물이다. 그가 결국 젊은 여자들을 다음 세대를 낳을 수단으로 여기는 게 이 영화의 결말일까. 여기엔 여성의 궁극적인 기능을 출산으로 여기는 남성주의적인 시각과 완벽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 오늘의 불완전한 문제를 덮어버리는 게으른 낙관주의가 묻어있다.
화를 내지 못하는 퓨리오사
영화가 개봉된 후 일각에서는 조지 밀러 감독과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 사이에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간) 공개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테일러조이는 "그 영화를 촬영할 때만큼 혼자였던 적이 없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어떤 점이 힘들었고, 그를 외롭게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안야는 대답을 피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앞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배우 샤를리즈 테론과 톰 하디가 불화를 겪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안야와 조지 밀러 감독 사이에 불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이후 안야는 영화에서 퓨리오사가 소리를 지르는 신을 넣기 위해 조지 밀러 감독과 3개월 동안이나 싸워야 했다고 털어놨다. 조지 밀러 감독에게 어쩌면 퓨리오사는 자신이 겪은 문제에 무감한 기존 남성 캐릭터들과 같은 인물이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야 테일러조이에게 퓨리오사는 분노를 아는 인물, 부조리를 아는 인물이어야 했을 것이다. 해당 장면은 촬영되었지만 결국 최종 편집본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영국 GQ>와의 인터뷰에서도 안야는 "나는 강력한 여성 분노 (장면의) 옹호자"라며 "나는 여성의 분노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이건 이상한 일이다. 나는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가, 여성 배우가 액션 영화의 주인공인 것만으로 우리는 이 영화를 여성 서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퓨리오사가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어린 여자애를 아내 삼으려는 아저씨를, 자신을 겁탈하려는 강간범을 관조하는 영화에 여성주의라는 찬사를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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