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성관념에서 비롯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교제폭력, 교제살인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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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훈(simpson123)등록 2024.05.29 11:32
지난 6일,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한 여성이 살해됐다. 전형적인 교제살인의 형태로, 지난달 거제도에서 남자친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숨진 여성 사건과 경기 화성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두른 남성이 구속되는 사건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해 교제살인 및 교제폭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3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38명의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됐다.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 3939명으로 2020년 대비 55.7%나 증가했다. 교제폭력 범죄는 급증하지만, 마땅히 보호받을 근거는 없다. 교제폭력은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의 대상이 아니어서 접근금지 및 분리조치가 불가능하고,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관계였던만큼 가해자의 회유나 협박 등으로 인해 범행이 은폐될 여지가 많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만성적 위협과 상해를 통해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방지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교제폭력을 범죄의 구성요소로 인정하는 제도는 미비한 상태인데, 이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대한 국가의 편견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성 남녀간의 사적인 일이자,  연인 간 화해나 용서로 해결함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거나, 그리고 연인의 이상행동이 큰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교제폭력의 대다수가 피해자의 집 등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기에 경찰 등 행정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일관된 정부 당국의 변명이다. '사건이 일어나야 개입할 수 있다'는 경찰의 업무지침하에서, 많은 피해 여성들이 자신 또는 가족들이 범죄에 희생될것을 예견함에도 이를 피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인 간 사적인 일이고, 사건이 일어나야 개입할 수 있다' 는 사고를 견지한 상태에선 교제폭력과 교제살인을 막을 방법을 찾을리가 만무하다. 교제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미국 마약범죄수사국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세계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82%는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에 의해 사망한 것이었다. 이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친밀한관계에서의 폭력이 명백히 성별화 되어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문제에 접근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위의 조사에선 교제살인의 가해자들의 공통점으로 여성에 대한 질투와 소유욕, 결별 과정에서의 살해,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의 부재를 언급했다. 또한 교제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이 발견되는데, 이는 개인적인 성향이나 인내심 부족의 문제가 아닌, 상대를 통제할 권한과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과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믿음은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사회적 지지에 의해 학습되고 강화된 것이라 말한다. 요컨대, 남성이 암묵적으로 가지는 여성에 대한 주인의식, 상대를 훈육과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우월감이 통제 행위의 기저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우월감 및 주인의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사무관은 "이런 사건의 가해 남성들에게서 '맨박스(man box: 가부장제 아래서 나타나는 강요된 남성성)에 갇힌 유형이 많이 보인다는 게 최근의 연구결과" 라고 말했다. '남자다움'에 대한 오해에 빠진 가해자들은 공격적인 남성성을 지향하는데 스스로가 꿈꾸는 남성성과 현실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그 간극의 해소를 위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여성에게 모든 공격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성차별문화도 이에 기여한다. 남성지배를 정당화하는 은밀하고 집요한 성차별 문화는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여성 정체성을 정상화하고 미화시킨다. 남성에 의한 강압적 통제는 여성을 지배하고 복종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가부장적 성차별문화의 직접적인 실천행위이며, 가부장적 젠더 규범을 위배하는(먼저 이별을 통보하는) 여성을 처벌하려는 의도와 피해자를 의존적,종속적으로 만들어 영구적으로 지배하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교제폭력을 사전에 예방하고 교제살인을 막기 위해선 두 가지 방향으로 정책이 작동해야 한다. 먼저,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포괄하는 '강압적 통제'를 법적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강압적 통제는 피해자를 의존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관계로부터 고립시키고 일상 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박탈하는 등의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지금껏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영역을 비추고 개입한 것이다. 다음으로, 가부장적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을 교육할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사회가 그릇되었음을 인지시킴과 동시에, 그것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강하게 주입시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성평등 및 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친밀한 관계의 폭력'을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6가지 전략을 수립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를 마련한다고 해서 교제폭력과 교제살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적어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통제와 지배로부터 고통을 호소하는 자가 두려움으로 인해 상대의 통제에 순응하고 있을 때, 그것이 사생활이 아니라명백한 폭력행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누릴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이를 위해선 시각의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안전함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현실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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